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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칼럼] 서로 함께

▲ 출처: chang doung on unsplash

10년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하나님의 요새’라 불렸던 중산동 교회가 이제 성석동에서 새롭게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의 정중앙에 있는 단어가 ‘임마누엘’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화해시키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해야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본질 사역입니다. 마태복음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말씀의 뜻을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시원해질 것입니다. “함께해주세요 하나님!” 하고 불렀던 우리의 기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임마누엘은 예수님의 본질 사역 

죄는 원어로 ‘하마르티아’입니다. 허물은 원어로 ‘파람토마’입니다. 하마르티아는 과녁인 예수님으로부터 화살이 빗나가는 것입니다. 파람토마는 본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상태입니다. 그래서 죄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인생이 하나님과 다시 연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참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의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반드시 처녀가 잉태해야 합니다. 지구상에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한다는 신학적 관점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녀가 잉태한다는 의미가 깨달아질 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말씀의 뜻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저는 철이 들고 싶습니다. 믿음 안으로 들어가 철이 들고 싶습니다. 주님을 닮은 나의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을 더 알아갈까, 그래서 주님을 듬성듬성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매일 정해진 시간에 주 앞에 있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5일 정도는 매일 오전에 주님 앞에 있습니다 묵상하는 시간이 없으면 영혼이 힘들어집니다. 무언가 다른 생각에 골똘하면 마음이 상쾌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주님 앞에 있었는 데 지금은 몸이 못 따라갑니다. 지난주에는 3, 4일 동안이나 묵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상쾌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주님 앞에서 묵상해야 하는 토요일에는 몸이 피곤해 곯아떨어졌습니다. 정신을 차리려고 밖으로 나가 가볍게 점심을 먹으러 라면집에 갔습니다. 문전성시여서 불가피하게 모르는 분들과 합석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라면을 먹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개념이 무엇일까요? 기차여행을 할 때 모르는 사람과 마주 앉아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될까요? 몸만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함께하는 것일까요? 함께한다는 것은 마음도 서로 나누며 깊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것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이 복일까요, 아니면 끔찍한 일일까요? 성도들에게 물으면 복이라고 대답하는데 저는 그 대답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믿음은 그 말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 

요한복음 2장에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참이시다!’라는 진리를 증거 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 인생이 꼬이고 믿음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신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고 가끔 착한 일 하면 내려오셔서 칭찬해 주시거나 상 주시거나 하면 되는데, 그 신이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사사건건 간섭하십니다. 누가 참인지 물어보십니다. 자녀들 생각으로 꽉 차서 명문대 보내야 한다며 기도하고 헌금하고 착한 일 하고 봉사하는데, 하나님께서 오셔서 네 자식이 참인지 하나님이 참인지 물어 보십니다. 돈 좋아하시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돈이 참인지 하나님이 참인지 물어보십니다. 우리의 인정욕구, 선한 영향력, 그것이 참인지 하나님이 참인지 물어보십니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염려가 가득할 때, 건강이 참인지 하나님이 참인지를 물어보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계속 그렇게 물어보시면 그게 복입니까, 아니면 끔찍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한다는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묻기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묻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질투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뒤늦게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너무 좋아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일평생 함께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정말 복입니까? 억지로 복이라고 말하시면 안됩니다. 그것이 복이 되려면 먼저 갖춰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함께하는 것은 마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한 것처럼 나도 하나님을 선택할 때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의미가 선명해집니다.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져야 합니다. 믿음은 실재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만큼 더 실재적인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선택한 것만 실재가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사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이 선택한 사실만 현실로 다가옵니다. 논리적으로 인정하더라도, 마음이 그 사실을 택하지 않으면 그 사실은 현실 되지 않습니다.

함께하는 것은 마주하는 것 

입시는 한국 사회에서 큰 화두입니다. 고3 학부모이든 아니든, 입시라는 사실을 우리 마음이 선택할 때만 현실 됩니다. 아무리 고3의 때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부모 마음이 입시를 선택하지 않으면 입시는 현실 되지 않고, 이슈가 되지도 않습니다 돈 문제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리 마음이 돈이라는 사실을 선택했기 때문에 돈 문제는 현실이 됩니다. 

제가 자주 가는 미용실에 가면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다 아시죠? 이 사람이 지옥 갈지 천국 갈지 다 아시죠?”  

제가 이렇게 대답해 드렸습니다  

“네 맞아요.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 한 사람도 천국 가기로 되어 있는 사람은 없답니다. 우리는 모두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다 망한 거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천국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답니다. 그 사실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왜 그런 질문이 나올까요? 그분이 부드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공감을 잘하시는 목사님이세요.〜” 

저는 날마다 평화로 마침표 찍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다음날, 교회 건축과 관련된 사용승인을 받으려면 그 집 합의서가 필요했습니다. 그분은 흔쾌히 합의서를 써주셨습니다. 

일이 잘 풀렸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평소에 교회 건축에 마음 빼앗기는 것이 싫었습니다. 분쟁이 생길 때 무엇을 제시해서 타협하고 선을 이루고 덕을 이룰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이런 것으로 내 마음 채우기 싫어요. 주님이 내 마음에 1등 되어서 임마누엘이 무엇인지 보고 싶어요. 제가 가만히 있을 때 행하시는 주님을 보고 싶어요!”

뒤에는 바로 군대. 앞에는 홍해 바다!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전전긍긍할 때 주님께서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내 마음에 주님이 1등 될 때만 주님의 손길이 현실 됩니다 의지로도 안 되고 결단으로도 안 됩니다. 

내 마음에서 주님이 1등 될 때 현실 되는 주님 손길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4) 

처녀가 자식을 낳을 때만 임마누엘이 됩니다. 죄 있는 인생을 통해 잉태되면 안 되기 때문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는 신학적 설명이 맞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합니다! 주님을 선택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처녀가 아들을 낳는 징조가 있어야 합니다. 처녀가 아들을 낳는 것은 세상의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즉,임마누엘은 세상에 원인이 있거나 이유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대안을 찾습니다. 회사가 부도가 날 것 같고, 몸이 아프고,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면 즉시 원인을 찾고 대안을 찾습니다. 현명한 사람이겠지요? 그러나 처녀가 잉태하는 것은 세상에서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겼을 때 대안을 찾아 해결하면 기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해결되고 채워지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논리는 우리의 논리입니다. 처녀가 잉태한다는 것은 세상의 논리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들의 기쁨 에덴, 너희들의 생명 예수, 너희들의 지향점 진리! 그것은 무엇을 채우고 보충해서 되는 것이 아니란다! 그것은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논리란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기 전에는 다른 답이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과 연합해 자아가 죽을 때만 문제에 전전 긍긍하지 않고 주님을 마음에 채웁니다. 해결이 먼저가 아닙니다! 근심이 먼저가 아닙니다! 대안이 먼저가 아닙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마음은 오직 주님께 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주님 것입니다!

주님이 마음에 채워지지 않아 애통해 하는 시간도 있게 됩니다. 문제가 떠나간 것도, 문제가 여전하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고 지금 마음에 주님 계시지 않은 것을 견딜 수 없는 마음! 그것이 임마누엘이요 평강이요 기쁨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는 원인과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여 죽고, 연합하여 온전하게 살 때 찾게 됩니다. 함께한다는 개념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간절한 마음도 헛믿음입니다. 임마누엘은 문제보다 하나님이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임마누엘 

임마누엘은 우리 필요를 채우기 위해 주님을 끌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세상이기에,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과 가치는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에는 하나님의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셔야 할 정도로 하나님의 진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이 유혹하는 그때에도 혼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돌이키고 또 돌이켜 십자가에서 세상에 대해 죽고 세상이 나에 대해 죽는 것! 어떤 문제보다 주님이 제 1현실 되는 인생 되고 싶다고 기도하는 것!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우리 마음에 채워지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에는 오직 주님이 왕 되셔야 한다는 것! 주님을 마음에 채우고 싶다고 부르짖는 삶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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