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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이후 한국 첫 선교사, 최찬영 선교사 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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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건국 이후 한국교회가 처음 파송한 선교사인 최찬영 선교사가 10월 19일 오후 6시 50분(미국 시간, 한국 시간 20일 오전 10시 50분) 미국 LA에서 소천했다. 향년 96세.

1955년 4월 영락교회의 파송예배를 받고 이듬해 1956년 6월 태국에 부임 최찬영 선교사는 당시 가장 가난한 나라의 선교사였지만, 성실하고 헌신적인 삶으로 수십년간 세계성서공회의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총무로 섬기며,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시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GDP)는 66달러인데 비해 태국은 한국의 두 배가 넘는 138달러였다.

최 선교사는 1926년 평양에서 태어난 뒤 부모를 따라 만주 연길로 이주했다. 1945년 간도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해방을 맞이한 후 서울로 옮겼다. 남산에 있던 장로회신학교에 재학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여 공산군에 여러 번 잡혀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 9.28 수복 후 미군 통신정보대 통역관, 육군 군목으로 활동했고, 1954년 독립운동가로 순교한 김예진 목사의 딸인 김광명 사모와 결혼했다.

최 선교사는 태국 부임 초기 태국교회가 제공하는 주택에서 거주하고 미국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언어공부를 하며 정착했다. 처음 몇 달간 태국 에서 BIT신학교 교수로 활동하다 그의 역량을 인정한 미국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례적으로 태국 현지인을 위한 방콕 제2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이후 방콕 기독교병원 원목, 태국성서공회 총무로 섬겼다. 특히 1962년 6월 아시아인 최초로 태국·라오스 성서공회 총무로 취임했고, 1978년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무로 취임해 1992년까지 성서공회를 통해 성경 번역, 인쇄, 반포에 주력했다.

최 선교사는 1983년 중국을 처음 방문했고, 1985년 1월 중국교회 지도자와 만나 성경 10만 부를 찍을 성경 용지 100톤을 요청받고 지원을 도왔다. 이후 애덕기금회를 설립해 1987년 12월 난징에 최신식 인쇄공장을 세워 중국 본토에서 성경을 발행했다. 이 인쇄공장에서는 지금까지 1억 권이 넘는 다양한 언어의 성경이 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선교사는 은퇴 후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에서 5년간 교수로 활동하고, 선교단체 GEDA(Global Evangelization & Development Agency) 인터내셔널 총재 등으로 섬겼다.

최근까지 최 선교사를 만나 본지에 그의 삶을 소개한 오영철 선교사는 “정말 가난한 나라의 선교사였지만, 초기에 미국 장로교선교사들의 다양한 도움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최 선교사는 성실한 삶과 헌신적인 태도로 존경을 받으며, 아시아지역은 물론 세계 선교에 큰 역할을 감당했다”고 회고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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