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마 1:19)
성경에서 요셉에 관한 평가는 짧 은 이 한 줄 뿐이다. 예수님의 육신 의 아버지 치고는 대접이 소홀하 다.
성경에서 뿐아니라, 미술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알리는 수태고지에 등장하는 요셉은 보통 졸고 있거나, 수태고지 장면에 눈 길조차 주지 못하는 모습으로 나온다.
요셉이 예수님의 탄생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시각적으로 보이기 위해 취한 미술사적 전통 때문이다. 지금의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의 경계인 플랑드르의 대가라고만 알려졌던 로베르 캉팽이 그린 <메로드 제단화>에서도 수태고지 장면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 서도 요셉은 마리 아와 천사의 대화 에 눈길도 주지 않 은 채 목공일에만 집중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중세 까지만 해도 ‘성가족’이라는 타이틀 아래 마리아와 한 화면에는 그려질 수 있었지만, 이 그림에서는 아예 제단화의 중앙 패널에서 쫓겨나 오 른쪽 날개 패널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처럼 요셉을 소홀히 하는 경향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더 심해졌는데, 다빈치는 ‘이집트로의 피 신’과 같이 요셉이 등장하는 주제 에서 조차 아예 요셉을 그리지 않았다. 이 쯤 되니 역사에서 요셉을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이처럼 무명(無 名)한 자가 또 있을까? 한 편으로 드는 생각은 내가 만약 요셉이었다 면 어떠했을까 싶다. 결혼 뿐 아니라 삶을 다 바쳐 그렇게 신실하게 예수님을 섬기고도 결국 무명한채로 사라져버리는, 아니 무명해야만 하는 그 삶을 우리는 정말 감사할 수 있을까?
이런 우리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히 일만 하는 그림 속의 요셉을 보면서, 왜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하셨는지, 그리고 이 말씀 을 하실 때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는지 짐작이 된다.
[GNPNEWS] 그림설명: 로베르 캉팽, <메로드 제 단화>, 1425년 추정, 나무 패널에 유화, 펼친 크기 64.5 x117.8cm
글. 이상윤(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