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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식 칼럼] 하나님 아니었으면 벌써 한 줌의 재가 되었을 인생

▲ 프레이포유 사역자들이 제공하는 음식을 받아든 한 노숙인의 손. 출처: 프레이포유 제공

저는 전라도 영광군 염산면에서 네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저희 가족은 제가 태어날 때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네 형제가 살았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놀고 교회 가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더욱이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의 아들이 저와 친구여서 학교도 같이 다니고 정말 재미있게 지내며 교회가 하나의 놀이터였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술에만 의존하면서 지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술에 의존한 이유는 군인 시절 다리를 다치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서 다리가 불구가 되셨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서 가족들을 부양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아 술을 드셨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교회 집사님 이셨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다니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기에 돈이 되는 일이면 가리지 않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저와 셋째형님은 할머니 손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정이 많이 그리웠습니다. 한창 어머니의 손길이 그리운 시절에 할머니 손에서 자랐기에 저는 어머니의 품이 그리웠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1년 뒤에 저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길에서 오토바이와 부딪히는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가족들에게 가망이 없다고 장례를 치르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교회 장로님이셨던 의사 선생님께 깨어날 때까지 기도를 하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을 해주셨는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 기적처럼 깨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받아주시고 도와주셨다고 생각하시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병원 생활 3개월 후에 퇴원하여 집에서 통원 치료를 하여 6개월 후에 완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또다시 불행이 찾아 왔습니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전학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폭력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자해도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 때마다 제게 힘이 돠었던 것은 찬송가를 부르고, 교회 가서 기도 하는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중학교 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시골에 모임이 있으셔서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갑자기 어떤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버스 손잡이를 꽉 잡으라고 하셨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버스 손잡이를 꽉 잡으셨는데 잡고 2~3분 뒤에 갑자기 버스가 뒤집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 사고로 인해 사망자가 나오고 중상자가 나왔는데 저희 어머니는 다친 곳도 없었습니다. 단지 타박상 정도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저도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이 사고로 인해 어머니는 믿음생활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에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전 어릴 때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면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어머니께 받아 쓰곤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돈이 없다고 하시면 저는 어머니 몰래 집에 있는 가전 제품을 밖에다 팔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보니 형들에게 적발되어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집이 싫어 가출을 밥먹듯이 했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지고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2년 정도 직장을 다니다 그곳을 나온 이후, 집에 가는 것도 싫고 노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숙을 하게 된지 10여년이 되어 갑니다. 노숙을 하면서 먹지도 못하고 배가 고파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것이 있으면 먹고 그런 생활을 하다 청주에서 수원으로 갔다가 서울역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울역에서 또 남대문 지하도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고 시민청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그곳에서 프레이포유를 만났습니다.

프레이포유를 통해서 조금은 더 하나님께 다가갈려고 노력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형제님들과의 관계도 뜻대로 되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과 결정으로 전 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또 거리에서 방황하고 술마시며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제게는 희망도 없고 살고 싶은 의지도 사라저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하나님이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아니였다면 전 벌써 한줌의 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저의 길잡이가 되어주신 하나님을 배신했던 제 자신에게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건 필요 없다는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잡고 살아가야 할 분은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이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저와 어머니 할머니를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저희 가정을 살리시고 또 은혜를 배푸신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이런 큰 사랑을 받으면서도 아직까지 믿음이 부족한 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어려서부터 믿음 생활을 해왔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저 하나님께 죄송할 뿐입니다.

겉으로만 모태신앙이지 지금까지 저의 신앙 생활은 빵점이였습니다. 그러나 빵점짜리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인도해주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전 앞으로 제가 쓰러지고 넘어질 때 마지막이라고 생각 할 때 손잡아주셔서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저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이지만, 그렇다고 교만 하지않고 늘 배려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실천하며 사역하는 사역자가 되고 싶습니다. <문영균>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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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식 목사 | 2013년 말부터 서울 시내의 노숙자와 홀로 사는 어르신을 돕고 기도하는 프레이포유 사역으로 이 땅을 섬기고 있다.
이 칼럼은 손은식 목사와 프레이포유 사역을 섬기는 사역자들의 사역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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