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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칼럼] 청교도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남긴 신학적 유산 6

▲제임스 패커. 사진 biblestudymagazine.com 캡처

기독교학술원장이자 샬롬나비 상임대표인 김영한 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가 지난 7월에 소천한 금세기 최고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현대판 청교도’로 불리는 제임스 패커의 신학과 그의 신학적 유산에 관해 정리한 기고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XIII. 성결을 그리스도인 삶의 주제로 부각: 성령의 인격적 사역과 그리스도인의 성화 강조

1.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패커는 성령의 사역과 그리스도인의 성화를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저작들을 남겼다.

20세기에 흥왕한 오순절 운동(Pentecostal movement)과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이 성령 본연의 사역을 은사의 나타남으로 왜곡하고 있었다. 이 때, 패커는 성령 사역의 본질이 바로 그리스도인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것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성화 과정에서 성령과 협력하는 거룩한 책임을 다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패커는 1967년의 저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에서 성령님의 내주하심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야말로 복음이 제시하는 가장 크고 으뜸 되는 선물이시다.” 신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이미 부족한 것이 없으신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성령 세례’를 그리스도께서 소유로 삼아 인치신 사람들이 거듭나 구원을 받는 순간에 받는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동일시한다.”(James Innell Packer & Alan Marshall Stibbs, The Spirit Within You: The Church’s Neglected Possession, Hodder and Stoughton, 1967; 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생명의말씀사, 2010. 27). 이러한 저자의 견해는 로이드 존스의 후기 성령론과 다른 입장에 서 있으며 전형적인 개혁주의적 성령론의 입장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패커는 성령의 사역을 성경 완성과 연결시키고 성경완성 후에는 특별 사역이 필요 없게 되었다고 본다: “사도들의 특별한 사역이 끝나고 신약 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그런 현상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James Innell Packer & Alan Marshall Stibbs,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60.)패커는 “그런 현상들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했다는 사실을 초자연적으로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예언의 은사는 신약성경이 완성된 이후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패커는 다른 은사들 역시 신약성경의 완성 이후에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패커의 은사 중지론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커는 전도나 성화를 위해 성령 안에서 신자의 능동적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신자들이 흔히 범하는 또 다른 잘못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행동을 취하실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들은 인간이 먼저 행동을 개시할 경우에는 자칫 자아를 의지하려는 육신의 욕구에 치우치기 쉽다고 믿는다. 하지만 신약 서신은 우리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새로운 행동을 취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거듭 강조한다. 하나님은 수동적인 태도를 버리고 성령님을 따라 행하라고 명령하신다. 우리가 행동해야만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이 우리의 경험 속에서 온전히 실현된다.”(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31)

패커는 성령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참 자유를 강조한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참 자유는 육신의 정욕을 극복하고 거룩한 삶을 향해 매진하는 자유를 뜻한다. 이 자유는 우리의 협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자동차를 모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자 책임이다. 자동차를 우리를 향해 모는 것은 우리의 의도적이고 지속적인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 전에는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덕분에 가능해졌다.”(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94)

패커는 성령 안에서 죄를 극복하기 위하여 내주하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죄를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는 신자들 가운데 이 문제와 관련해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자신의 본성이 연약한 탓에 넘어지고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려는 의지를 무가치한 육신에서 나오는 힘으로 여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어 마음을 움직여 주시기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올바른 길을 향해 나아가려면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존재와 능력을 온전히 의식하고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해야 한다.”(정다올 역,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95.)

패커는 오늘날 개혁교회가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소홀히 여기는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 성령은 이미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는 또 다른 성령님을 구한다. 성령 체험을 일부 교회들이 추구하는 단순한 광적인 현상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이런저런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는 오순절 은사 운동은 부분적으로는 제도화된 20세기 교회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했다. 패커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성령 사역의 역동적 개념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패커는 성령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오늘날의 상황과 밀접하게 관련짓는 한편, 오순절 은사 운동이 야기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명확히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패커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을 자신 특유의 균형 잡힌 시각으로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잘못 오해되고 있는 성령 사역의 문제점을 파헤치며, 그에 대한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패커는 성령의 임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시된 복음의 핵심이자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공통으로 주어지는 기업(基業)임을 힘주어 강조한다.

2. 성령의 인도함을 받음

패커의 초기 논문은 케직 사경회가 지향하는 성령세례와 소위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주제에 대해 성경적인 입장을 잘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는 후에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 더 폭 넓게 아주 잘 정리되어 있다. 『성령을 아는 지식』(Keeping in step with the Spirit)은 은사주의 운동에 대한 패커의 독특한 견해와 함께 케직(Keswick) 사경회의 성화론에 대한 논쟁을 심도 깊게 다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패커 자신의 회심 이후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 케직 사경회의 성화론은 지속적으로 죄에 대하여 승리하는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그리스도에게 전적으로 헌신할 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케직의 가르침은 패커에게 깊은 고뇌와 좌절을 경험하게 하였다. 패커는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John Owen)의 『죄 죽이기』(The Mortification of Sin)라는 책을 읽으면서 케직의 수동적 성화론에서 벗어난다.

패커는 케직의 가르침이 수동성을 명하는 정적주의(靜寂主義)로서 성결을 성취하는 문제를 정신적이고 영적인 테크닉의 문제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패커가 1955년 성화에 관한 케직의 견해를 신랄하게 공격하였던 논조와 30여년의 세월이 지나 쓴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 보인 케직에 대한 논조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패커는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 케직의 가르침에 대하여 좀더 협조적이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즉 그 운동이 가졌던 의도들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여러 가지 점에서 그 가르침을 교정하는 방식으로 평가를 제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패커는 성령을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알고자 한다. 철저히 성경말씀을 근거로 시종일관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하여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믿음으로 칭의를 받은 우리는 성령 안에서 계속되는 성화를 추구하지만, 이 세상에서 완전에 이를 수 없음을 성경이 증거하며 역사가 증거한다는 것을 잘 제시한다. 그리하여 패커는 소위 완전주의(perfectionism)에 대한 성경적 비판을 잘 제시하여 가장 온전한 성경적 성령론을 잘 드러내고 있다.

패커는 2000년도 인터뷰에서 1960년대 영국의 오순절 운동을 복음주의의 한 특징으로 보았다고 피력하고 있다: “은사주의 운동이 1963년 영국의 복음주의 계열을 휩쓸고 있었다. 은사운동 스타일의 찬양대, 기타로 반주하는 복음성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역자라고 강조하는 것이 은사운동의 특징이었다. 어딜가나 이런 것들이 당시 영국 복음주의 계의 특징이었다. 영국 전역에서 복음주의자들이 방언을 말하거나 신유를 행하려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것들이 당시 영국 복음주의계의 특징이었고 나는 그것이 옳다고 본다.”(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패커는 영국 IVP로부터 은사운동(charismatic movement)에 관해 삶과 성령이라는 주제로 책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는 은사운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싶어 집필을 하고자 하였다. 패커는 특히 ‘존 스토트’나 ‘딕 루카스’처럼 은사운동을 아주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피력하고 있다: “영국의 복음주의자들 중 일부인 존 스토트와 딕 루카스는 오순절 운동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나는 저들처럼 매우 부정적이지 않았다. 나는 오순절 운동이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오순절 운동에는 잘못된 점들도 있다고 생각한다. 즉 표적과 기적이 도를 넘어서서 비성경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곧 방언, 방언 해석, 신유와 예언 등에 대해 그렇다. 그래서 오순절 운동의 본질을 지지하면서도 후자에 대한 것은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오순절 은사운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시하기 위하여 『성령을 아는 지식』(Keeping in Step with the Spirit)을 썼다.”(제임스 패커 인터뷰 1, 「소금과 빛」, 2000년 7월호 특집. 두란노서원) 다른 개혁신학자들과는 다르게 패커는 하나님이 오순절 내지 은사운동을 현대적 상황 속에서 사용하시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것의 결점과 약점 그리고 방향을 지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패커는 성령님 안에서의 삶(Life in the Spirit)을 강조하며 결국 성경을 중심으로 사는 삶을 보이면서, 특히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삶의 실제를 잘 제시하고 가르쳐 준다.

패커는 복음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영성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작업을 수행했다. 패커는 참되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철저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 즉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주 강조했다. 패커가 은사운동의 지나친 표적 추구를 비판한 것은 올바른 태도이며, 그렇다고 그가 성령의 은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성령과의 교통 가운데서 성결의 삶을 강조한 것은 성령 사역에 대한 그의 균형잡힌 태도를 보여준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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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 |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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