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희, 하헌미 집사 부부에게는 꿈이 있었다. 성전을 짓고 싶은 꿈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꿈은 희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잘 알고 지내던 교회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고아와 과부, 세상에서 소외되고 약한 이들이 함께 사는 곳을 설계해달라는 것이었다. 조영희 집사는 충남 서산에 위치한 긍휼선교단체 전능자의그늘미니스트리(Shadow of the Lord God Almighty Ministry, SHam. 쉠)의 생활공간 건축을 시작하고 나서 꿈이 생각났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고아의 아버지, 과부의 재판장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시는 그곳이 바로 성전이었고, 비로소 주님이 우리의 꿈을 이뤄가고 계심을 깨달았다.
– 오랜 꿈이 쉠이란 선교단체를 통해 이뤄지게 된 것이군요.
조영희(이하 조): “오랜만에 교회에서 만난 동생에게 전화가 걸려왔어요. 건축 얘기를 하면서 맡아서 해줄 수 있겠냐고요. 자세한 얘기를 듣지 않았지만 동생이 얘기했다면 무조건 오케이였죠. 믿었으니까요. 건축주를 처음 만나러 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폐교 운동장에 컨테이너가 달랑 있었어요. 그곳에서 만남을 가졌어요. 생각해보니 개척교회를 열심히 섬기면서 그게 믿음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이 만남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열어주신 것 같아요. 쉠을 설계하기로 하고 회사 사장님에게 고아와 과부를 위해 선교사님들이 좋은 일 한다는데 우리가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나보다 더 기쁜 얼굴로 좋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어서 설계는 우리가 좋은 뜻으로 한번 무료로 섬기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바로 그렇게 하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1년이 좀 넘게 일을 했어요.”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을 경험하다
하헌미(이하 하): “사장님이 이렇게 허락하셨다는 것은 정말 주님이 인도하신 일이에요. 더욱이 그 건물에 들어간 벽돌도 주님이 갑작스럽게 주셨어요.”
– 벽돌에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조: “설계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된 어느 날, 아는 분의 연락을 받았어요. 처음 다녔던 회사에서 제가 기술적인 것을 배웠던 분이었어요. 저를 동생처럼 생각하는 분인데 벽돌회사 부사장으로 직장을 옮기셨다고 하셔서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쉠 건축을 기쁨으로 섬기고 있다고 얘기했어요. 그분이 먼저 벽돌이 있는데 쓰겠냐고 물어봤어요. ‘이건 뭐지?’ 놀랐죠. 그 무렵 건물 외장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 중이었어요. 대뜸 “벽돌로 디자인하면 좋죠.”라고 대답했어요. 물량이 어느 정도 나오는지 뽑아 달라 길래 알려드렸더니 그 회사에서 기부를 했어요. 마침 그 공장이 쉠 근처였어요. 산 너머에 있더군요. 그 회사에서도 벽돌을 처분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놀랍죠?”
하: “더욱이 그 벽돌의 통로가 됐던 그분은 공사가 끝난 다음에 회사를 그만두셨다는 거예요.”
조: “그분도 교회 집사님인데, 그 일로 인해서 믿음 안에서 교제하게 됐어요.”
– 그런데 아까 쉠을 건축하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열렸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요?
조: “설계하고 공사하면서 1년 가까이를 매달 두 번은 서산에 와서 선교사님과 교제를 했어요. 복음도 나눠주시고 일상의 이야기들을 나눠주셨는데 편안하게 대화하면서 가랑비에 옷 젖듯이 믿음의 삶에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설계와 감리를 하다보면 집을 하나 짓더라도 별일이 다 일어납니다.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고요. 아무리 좋은 것을 해도 건축주가 맘에 안 들면 문제가 생기죠. 작은 주택에서 큰 건물을 공사하는 것까지 관여하면서 그런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고 해결하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쉠을 지으면서 특이한 걸 발견했어요. 두 가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듣게 됐어요. ‘주님이 하셨습니다.’ ‘허락하심이 최선입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못 알아들었어요. 문제가 여러 번 있었어요. 설계가 미진해서 중간에 보완하는 일도 생겼어요. 한번은 운전하고 가면서 ‘한소리 듣겠다. 잘 넘겨야지.’ 생각하고 갔는데 “허락하신만큼 해야죠.”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지금까지 대하던 분들하고 달랐어요. 시시비비를 따져서 ‘뭐가 잘됐고, 잘못됐고, 선은 이렇고 후는 이래서 이런 일이 생겼다. 그래서 이렇게 하겠다.’ 이런 결론이 나와야 되는데 ‘(주님이) 허락하신만큼 한다.’고 하셔서, 저는 답을 못 들은 것이 됐어요.(웃음)”
‘주님이 하셨습니다’ 무슨 말이지?
– 해결은 잘 됐나요?
조: “처음 솔직한 심정은 어려움이 없었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이렇게 사는 삶도 있구나. 저로서는 의아하고 굉장히 궁금했어요. 끝까지 이러실까? 근데 정말 끝까지 그러시더군요.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집을 한 채, 두 채를 지으면서 옆에서 본 것이 큰 은혜였어요. 내 직업관이나 세계관이 많이 흔들렸어요. 저는 제 자신을 설명할 때 못을 자루에 담아놓은 사람이라고 표현을 해요. 송곳 같은 사람이요.”
– 표현이 재밌네요.
조: “설계의 주인은 따로 있어요. 내가 주인이 아니죠. 건축주의 필요를 파악하고, 땅을 파악해서 가장 훌륭한 것을 만들고 주인이 만족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 주장이 강했어요. 내 힘으로 하려고 했죠. 설계를 하면서 함께 일을 하다보면 날카로워지고 제 의견을 주장하던 편이었어요. 경력이 쌓이고 이런 것이 더 심해지다 보니 흉기가 되더군요. 결국 건축주 관계자하고도 시시비비를 가리려 하고 여러 사람에게 상처도 주고 귀 기울여 듣는 척 해도 결국은 내 주장을 하기 위해 들었어요. 일을 할 때는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쉠을 건축하면서는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어졌어요. 대항해야 할 상대가 없어진 거죠. 그냥 다 받아주시니까요. 제안을 하면 거꾸로 물어보세요. 뭐가 좋으냐고요. 들으시고 그럼 의견대로 하겠다고, 허락하신대로 하라고 하세요. 일이 물 흐르듯 진행되면서 너무 편했어요.”
– 쉠 옆에 있는 헤브론선교대학교 건물도 역시 설계와 감리를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조: “네. 그때는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골조가 마무리 됐을 때 건축을 의뢰한 선교사님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어요. 아무 말 없이 이것저것 확인하며 둘러보고 있었는데 3층에 올라갔을 때 한 선교사님이 물어보셨어요. “설계하신 분이 보기에 설계한 의도대로 나온 것 같습니까?” 그분은 그런 생각이 늘 있으신 거 같아요. 저는 그 질문을 받고 심장이 뛰었어요. 제가 설계를 시작한 이후로 건축주에게 그런 질문은 처음으로 받아보았기 때문이에요. 이후에 동료 건축가들에게 이걸 자랑도 했어요. 그런데 자랑으로만 맴돌던 이 질문이 어느 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게 했어요.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나를 계획하시고 지으신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고 있는가? 일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게 하시는 질문이었어요. 그렇게 선교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됐어요.”
– 앞서 직업관이나 세계관이 바뀌셨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 직장생활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조: “복음의 가치대로 사는 게 쉽지 않더군요. 어떻게 사는 건지는 결론은 잘 알죠. 내가 손해 보는 거죠. 다른 방법은 없어요. 기도하고 내가 손해 보는 것을 매순간 선택해야 했어요. 사업이라는 것이 잘못 선택했을 때,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고 한 번에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선택이 중요해요. 그러나 지금은 선택의 기준이 바뀐 거 같아요. 지금까지는 회사를 위해서나 건축주를 위한 선택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선택이었어요. 예를 들어 설계는 팀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감이 들어왔을 때, 팀원을 배치할 때는 불꽃 튀는 경쟁이 있어요. 당연히 일을 잘하는 사람과 팀을 하고 싶죠. 그러나 내가 원하는 사람이 다른 팀으로 배정되고 저는 경력이 짧은 사람들과 일을 할 때가 있어요. 아쉽고 부족한 부분은 알지만 더 이상 송곳 같이 내 주장만 내세울 수가 없어서 그렇게 결정해요.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어도 주저하게 돼요. 처음에는 무조건 내가 손해 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기도하며 지혜를 구합니다. 그렇게 부족한 상황인데도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주님이 하셨다는 것을 보게 돼요. 그래서 감사하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설계대로 사는가?
하: “옆에서 보면 속상할 때가 있어요. 늘 손해만 보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아침마다 같이 묵상하고 기도하고 출근해요. 직장이 선교지라고 생각하고 파송하죠. 그래서 예전처럼 살 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만나면 복음을 전하는데, 그래서 더 사람들이 싫어해요.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어요. 함께 성경을 통독하는 동료도 생겼어요. 잃어버린 것도 많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을 얻게 되어서 너무 기뻐요.”
조: “주님이 저를 많이 훈련시키시는 것 같아요. 그동안 성공과 성과를 위해 일했는데 지금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 팀원, 협력업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고 있어요. 효율과 성공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게 하세요. 그러다보니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있어요. 이전 같았으면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조치를 취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받아들이고 지내요. 덕분에 일하면서 하지 않던 기도를 하게 되었고, 자리 옆에 성경도 두게 되고, 더 믿음을 써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요. 믿음을 어떻게 써야 하나? 생각하다보면 선교사님들이 생각나죠. ‘허락하신 만큼 해야지.̓ 정말 내 마음이 더 낮아져서 송곳 같은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섬기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해요.”
<이상 231호에 게재>
하: “옆에서 보면 일을 하면서 성공만을 목표로 할 때 불법적인 일도 눈감고 마다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 그럴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복음을 만나지 않았을 때는 실패하는 게 두려운 일이었는데 이제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님이 하시는 일이니까 평안을 주세요. 진리가 자유케 하신 놀라운 변화에요.”
– 믿음의 걸음이 너무 놀랍네요. 두 분 다 모태신앙이신가요?
하: “남편은 대학교 4학년 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가족이 모두 가톨릭 신자였어요. 하지만 남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없었어요. 저는 모태신앙이었는데도 그런 남편과 결혼을 했어요. 대학교 때 미팅을 나간 자리에서 만나 일찍 결혼하게 됐어요. 저도 그때는 믿음이 없어서 성당도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결혼했는데 너무 달랐어요. 견딜 수가 없었죠. 결혼하고 3년 정도 됐는데, 남편은 일도 바쁘고 술을 먹고 들어오기 일쑤였어요. 아이도 생기지 않으면서 점점 우울해졌어요. 외롭고 결혼생활이 힘들었어요. 이러다가 이혼도 하겠구나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극적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어요.”
– 어떻게 회복이 되신 건가요?
조: “아내가 너무 힘들어하고 옆에서 봐도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어요. 그때 아내와 일본 여행을 갔어요. 그곳에서 만난 선교사님이 당시 아내의 상태를 보고는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고 권면을 해주셨어요. 그분은 아내가 학생부 때 주일학교 교사였던 분이었죠. 그래서 부모님께 설명을 드리고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아내가 회복됐어요. 이후 결혼 8년 만에 자녀도 낳게 되면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시간들을 보냈어요.”
– 네. 감사하네요. 그 이후의 시간도 이야기해주세요.
조: “막내 혜원이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첫째와 둘째를 키우면서는 일반 학교에 보냈지만 막내는 고민이 생겼어요. 첫째와 둘째를 키우며 세상 학교의 문제점들을 보았고 막내를 그렇게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쉠 일을 돕다가 동역하는 선교단체에서 운영하는 헤브론원형학교 아이들을 봤어요. 쉠을 소개해준 교회 동생 자녀들도 원형학교에 다녔는데 믿음의 길을 걷는 아이들을 보면서 많이 부러웠어요. 그 학교는 교과서가 성경이라는 말을 듣고 혜원이를 그곳에 보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지금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첫 번째 지원에서 아이는 떨어졌어요. 나의 믿음 없음 때문에 아이가 떨어진 것 같아 잠시 고민하다가 선교관학교 훈련을 받았어요. 그때 훈련과정 끝으로 해외 아웃리치를 가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경험했어요. 제가 간 선교지는 이슬람 국가였는데 현지 기독교 리더가 마을들을 소개해주면서 각 마을마다 크리스천이 한 명씩 있다고 했어요.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믿음을 잃지 않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어요. 이 어려운 환경에서 한 사람이 믿음 위에 서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으니까 주일에 많은 가족들이 모여 예배를 세 시간 씩 드릴 수 있음을 보게 됐어요.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니까 정말 가족이 구원을 다 받는구나. 처음 깨달아졌어요.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이 척박한 땅 안에 이 한 사람을 두었구나. 증인을 직접 제 눈으로 본 것이죠. 다 갖춰진 우리나라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제게 충격적인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훈련을 계속 받았어요. 그렇게 아웃리치에서 돌아왔는데 문제가 생겼어요.”
– 어떤 문제였나요?
하: “남편과 같이 훈련을 받으면서 비슷한 시기에 둘 다 해외로 아웃리치를 다녀오는 바람에 3주 동안 집을 비웠어요. 그때가 쌍둥이로 두 아들 상민이와 민기가 고 1이었고 혜원이가 중 2였는데 돌아와 보니 우리가 없는 동안 쌍둥이 아들이 교회를 안 나가기 시작했더군요. 아이들은 4~5살부터 교회에서 커왔어요. 제가 늘 교회에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를 저희가 섬겼기 때문에 아이들도 그곳에서 자랐어요. 교회에서 모든 사교육을 하고 그곳에서 재능도 발견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도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결국 속마음이 드러났죠. 하나님이 있는 것은 알겠는데, 교회는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교회에 나가진 않지만 상민이와 민기도 청소년 복음캠프에서 복음을 들었으니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겠죠.”
– 많이 속상하시겠네요.
하: “쉠을 건축 하면서 “우리가 왜 여기 왔지?”라는 질문을 계속 했어요. 그 선교단체에는 이미 건축가 대선배도 계시고 아는 사람이 많을 텐데, 남편이 이름난 건축가도 아닌데, 이게 늘 궁금했어요. 그런데 혜원이가 원형학교 원서를 쓰고 떨어지고 다시 부르심을 받아 지원하는 모든 과정을 보면서 혜원이를 이곳으로 보내시려고 이 일을 하게 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주님이 다음세대를 믿음의 세대로 세우는 일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 섬기는 교회에서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과정으로 10주간 진행하는 ‘여호와의 군사학교’를 시작하게 됐어요.”
– 여호와의 군사학교는 어떤 훈련이죠?
하: “초 1부터 고 1까지 아이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와서 강의도 듣고, 모임도 하고, 아웃치리를 하는 과정이에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아무 표정이 없고 눈도 맞추지 않았어요. 식사시간에는 밥을 잘 안 먹는 아이들도 있고요. 오기 싫은 게 표정에서 나타났는데, 한 주 한 주 시간이 지나면서 눈을 맞추고 말도 하고, 웃기 시작하고, 말씀 묵상도 하고, 밥도 점점 많이 먹었어요. 결국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아이들이 고백하더군요. 아이들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보는 일이 정말 큰 감격이었고, 영광이었어요. 주님이 이 영광의 잔치에 끼워준 게 은혜였고 감격이었어요.”
조: “여호와의 군사학교를 섬기면서 저는 교사를 처음 해봤어요. 새로운 인류를 만난 것 같았죠. 그런데 영적으로 죽은 것 같았던 아이들 안에서 생명이 살아나는 걸 10주 만에 보여주셨어요. 아이들이 기도하는 것이나 말씀 묵상 하는 것을 보면서 복음이면 이렇게 한 아이가 예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됐어요. 이 학교를 통해 다음세대 아이들을 하나의 성전으로 세워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됐어요.”
하: “성전을 짓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제는 건물 성전이 아니라 사람을 성전으로 세워가는 일을 하게 하시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만나면 힘들어하더라도 복음을 전해요. 복음은 반드시 들어야하는 거니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을 짓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앞으로 계획이나 기도제목을 나눠주세요.
하: “이전에 고난이 축복이라는 설교를 들었을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의 고난의 시간과 아픔들이 통로가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도움이 되게 하시는 게 감사해요. 8년 만에 자녀를 얻은 일, 우울증으로 고통 하던 일, 갑상선 암에 걸렸던 일, 너무 달랐던 우리 부부가 하나로 연합 되는 이런 일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해요. 그렇게 성전을 세우며 하나님 앞에서 살고 싶어요.”
조: “저는 일을 사랑했어요. 일에 사로잡혀 지내던 사람이었는데,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복음으로 구원 받는 은혜를 입었어요. 게다가 성전을 건축하는 꿈도 이루어 주셨고, 다음세대를 향한 꿈도 주셨지요. 우리 부부가 더욱 겸손히 주님 앞에서 하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나라에 쓰일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복음기도신문]
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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