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중국 추방기(3)
이 글은 중국에서 추방된 조용선 선교사가 2018년 1월 5일부터 18일까지 중국 ‘구어바오’(国保) 요원에 의하여 체포되어 추방된 과정의 자전적 기록이다. 중국 공산정권의 극심한 종교탄압으로 2020년 2월초 현재 중국의 거의 모든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이는 예배가 사라지기 직전 단행된 중국의 선교사 추방과정을 담았다. 현재 중국교회 성도들은 정부의 불허로 함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대부분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편집자>
간절히 기적을 기대했지만…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새벽에 주님께 기도를 한 후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나는 다시 울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고 눈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주님께서 나의 중국에서의 삶을 정리시키며 ‘잘 했다. 수고했다.’ 하시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탔다. 경찰청은 청(淸)나라 초대 황제인 누르하치의 황릉(皇陵) 부근에 있었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하철 정류장에서 목적지까지는 황릉의 담 벽을 타고 약 200미터를 걸어야 했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다시 울었다. 왜냐하면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는 길 위에 내가 걷는 것은 마치 걸을 때마다 한 움큼의 피가 내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피가 내가 걷는 발자국마다 하얀 눈 위에 빛을 받아 붉게 피어나는 장미가 되는 것 같은 환상을 느꼈다. 그 때에 나는 골고다 언덕길을 올라가시는 나의 주 예수님을 묵상했다.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 스스로 작정하고 올라가시는 그 길의 발걸음이 어떠하셨을까? 나는 아주 조금 주님의 골고다 길을 공감(共感)할 수 있었다.
경찰청 홀에서는 ‘구어바오’(国保) 사람과 두 명의 젊은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목례를 하고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 순간에 하나의 계산된 기적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것은 왜냐하면 내가 가르친 중국인 기독교인 형제 가운데 한 사람은 사회의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어서 만일 나를 잡은 사람이 ‘구어바오’ 사람만 아니면 손을 써서 모든 일을 없던 일로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까지 나는 나를 잡은 사람이 ‘구어바오’ 요원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형제에게 작은 그러나 아주 간절한 기대와 희망을 걸고 있었다. 나는 상상했다. 내가 그 사람과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나더러 그냥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본관 건물로 올라가자고 하면서 에스컬레이터로 안내했다. 나는 그와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나의 몸은 위로 올라가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은 저 아래 지하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
정리할 시간 ‘열흘을 주겠다’
나는 이미 체포되어 조사를 받아본 선교사들에게 어떻게 조사를 받는 지를 들어서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아마도 책상이 있고 나에 대한 문건이 쌓여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어바오’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물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여러 경찰들이 있는 사무실 같은 곳으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를 소파에 앉게 했다. 이어서 그들은 나에 관한 조서(調書)를 작성했다. 그런데 그들이 나에게 직접 묻는 것은 많이 없었다. 그저 금요일 날 ‘구어바오’ 요원이 나에게 들은 것을 컴퓨터를 통해 서류로 만들 뿐이었다. 그는 가끔 금요일에 조사한 것에서 정확하게 기입해야 할 부분만 내게 다시 물었다. 얼마 후에 조서가 다 작성되었다. ‘구어바오’ 요원은 나에게 조서 내용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오른쪽 두 번 째 손가락으로 지장(指章)을 찍게 했다. 조서의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내가 중국의 종교법을 어기고 중국인에게 설교했기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고 중국의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나에 대한 조서는 그것으로 다 끝났다. ‘구어바오’ 요원은 내게 정리하도록 열흘의 시간을 준다고 했다. 그때였다. 그 사무실에서 제일 높아 보이는 사람이 ‘구어바오’ 요원에게 출국 전까지 나를 구류(拘留)시켜 놓아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자 ‘구어바오’ 요원은 나에 대해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구류(拘留) 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까딱 잘못했으면 중국 경찰청에서 열흘 동안 철장 생활을 할 뻔 했다.
나에 대한 모든 조사와 행정처리는 그렇게 아주 간단하게 끝났다. 나는 ‘구어바오’ 요원 일행과 함께 경찰청을 나왔다. ‘구어바오’ 요원은 나에게 지하철을 타는 곳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들과 악수를 했다. 그러면서 ‘짜이찌엔’(再见) 이라는 중국식 인사를 했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들에게 ‘짜이찌엔’이라는 인사를 했다. 비록 5년 후에 내가 다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중국에서 표면적으로 선교 활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나에 대해서 중국 안전국(安全局) 소속의 ‘구어바오’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고 주시(注視)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내가 중국 본토에서 선교를 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다시 돌아와 나의 중국 교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제자들을 볼 것이다.<계속>
조용선 선교사 | GMS(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선교회) 소속으로 중국에서 사역 중 추방된 이후 인터넷을 활용한 중국 선교를 계속 감당하고 있으며 세계선교신학원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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