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호 / 기획 _ 시리아 난민사태 (3) ]
오늘날 본격적인 난민문제의 시발점으로 여겨지는 시리아 난민사태에 관한 현장 저널리스트의 기고문을 게재한다. 본지 객원 김시므온 기자는 시리아, 오스트리아 빈에서 거주하며 유럽으로 온 아랍난민을 도왔으며, 현재 요르단에서 난민을 섬기며 그들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편집자>
시리아 내전은 끝나고 있는가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IS)의 패퇴, 그리고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에 힘입은 아사드 정권의 국토 3분의 2 이상 통제권 탈환으로 지난 8년간의 시리아 내전이 종식되어 가는 듯했다. 그러나 10월 9일 터키는 시리아 북동부의 쿠르드족을 몰아내기 위한 대대적인 침공을 감행함으로, 죽음의 위협을 피해 수많은 쿠르드족들이 피난길에 오르며 시리아는 또다시 혼란과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한때 ISIS 세력이 시리아를 장악했을 때 미국은 시리아 반군이 ISIS를 막아주기를 원했지만, 반군은 아사드 정권 붕괴에만 집중한 탓에 여력이 없었다. 이에 미국은 쿠르드족 민병대(YPG)를 ISIS 퇴치를 위한 대안세력으로 세우고 군사지원과 공동 작전을 통해 ISIS 패퇴에 큰 공을 세우게 했다. 그 보상으로 쿠르드족은 독립국가 건설 내지는 민족적 자치권 부여를 꿈꿨다.
한편 터키 정부는 쿠르드족 민병대를 자국 내에서 반정부 무장투쟁을 벌이는 쿠르드 노동자당(PKK)과 연계된 게릴라 부대로 간주하여, 자국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제거하겠다 공언해 왔다. 그동안 시리아 주둔 미군이 방패막이 역할을 해 주었는데 10월 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군의 시리아 철군을 전격적으로 발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터키는 지난 9일 시리아 북동부에 대규모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이에 쿠르드족의 요청으로 시리아 정부군이 이 지역에 투입됨으로 터키군과의 전장 확대 우려가 고조되었다.
터키뿐만 아니라 미국을 향한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 속에 다행히 지난 17일 미국 펜스 부통령의 중재하에 터키는 시리아 침공 8일 만에 5일간의 ‘조건부 휴전’에 미국과 합의했다. 시리아와 터키 국경 사이 안전지대를 설치하여 터키는 안전지대를 관리하고 미국은 쿠르드 민병대를 120시간 안에 안전지대 밖으로 철수시키고, 이후에는 모든 군사작전이 완전히 종료될 것이라고 펜스 부통령은 발표했다.
터키는 안전지대에 주택을 건설해 자국 내 300만 명의 시리아 난민 다수를 그곳으로 이주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대부분이 아랍계인 시리아 난민이, 안전지대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쿠르드족과 갈등을 겪게 되어 아랍과 쿠르드 간의 또 다른 인종 충돌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까 극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귀국을 못하는 난민들
요르단, 레바논, 터키에 있는 난민들의 생활은 유럽으로 밀입국해 간 난민에 비교해 아주 열악한 형편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난민들이 정부로부터 4인 가족 기준으로 대략 1500달러의 현금을 지원 받는 데 반해 요르단에 와 있는 시리아 난민은 유엔난민기구(UNHCR)로부터 120~140달러의 물품 구입용 쿠폰을 받을 뿐이다.
유럽 난민의 경우, 지원금 외에도 다양한 복지 혜택이 있지만, 요르단의 난민들은 다수가 캠프 외의 지역에서 집을 빌려 거주하고 있는데 주택 임차료와 전기세 등 기본 세금을 감당하기에도 버겁다.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하지만, 20% 이상의 높은 실업률의 요르단에서 시리아 난민들이 취업하기란 쉽지 않다. 요르단 국민은, 백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들의 체류로 물가는 폭등하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노동 임금은 낮아짐으로 생활이 더욱 어려워진다며 불편해한다. 여기에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세계 각지로 흩어진 난민들에게 고국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어, 시리아 국내 상황이 안정화되면 난민들의 대거 귀국이 예상된다.
그러나 2019년 7월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내전이 어느 정도 안정된 2016년 이후 시리아로 돌아온 난민은 약 17만 명, 즉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 562만 명 중 3%만이 귀국했을 뿐이다. 폐허가 된 사회기반시설, 거의 빈사 상태의 경제 상황, 정부에 반대하는 정서를 가진 난민들에 대한 군 징집 이후의 보복 우려, 귀국 난민에 대한 무작위적인 체포, 권위주의 정권의 공포 분위기 등이 시리아 난민들의 귀국을 가로막고 있다.
시리아 남부지역과 맞닿은 요르단의 자브르(Jaber) 국경이 작년 10월에 재개방된 지 1년이 되었다. 현재 요르단에는 유엔난민기구에 등록된 67만 명과 미등록자를 합치면 100만 명을 웃도는 시리아 난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에 시리아로 돌아간 난민은 지난 1년간 2만 명 이하에 불과하다.
시리아 난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꺼리자 이들을 대거 수용했던 터키·레바논·요르단 또한 몸살을 치르고 있다. 유럽은 2015~2016년 대규모 난민유입 사태를 겪으며 사회 불안이 가중되고 반(反)난민 정서가 기승을 부리자 이를 막기 위해 터키 등 3개국 지원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이런 지원에도 이들 3개국 내의 반난민 정서는 갈수록 팽창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당국이 앞장서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적대심을 표출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압박하는 등, 난민들은 이 같은 나라 없는 설움을 겪고 있음에도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강도 만난 자의 따뜻한 이웃으로
난민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시리아를 바라보는 세계의 관심과 지원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그 말씀의 빛 아래서 볼 때, 난민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함은 바로 주님을 섬기는 고귀한 일이다.
과거 6․25 남북 전쟁으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망자와 국내 난민이 발생했고 국가 기반 자체가 무너진 불행했던 우리의 역사를 난민들에게 이야기해 주면, 그들은 큰 관심을 보이며 위로를 받는다. 국제사회의 참전과 도움 속에 오늘 이렇게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은혜 받은 우리 한국과 교회들이 난민을 위해 마음을 나누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유엔과 정부가 규정하는 난민의 정의와는 별도로, 한국 교회가 난민에 대한 교회만의 정의를 갖게 되길 제안한다. 성경이 말하는 난민은 누구이며, 교회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 말이다. 평소에 자신을 무시하며 살던 강도 만난 유대인을 치료해 주고 보호했던 사마리아 사람처럼, 난민에게도 자비롭고 선한 이웃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예멘 난민 수용에 대한 논란은 교회에도 이슈였다. 대부분이 무슬림인 중동 난민들을 받아주었을 때 한국도 급격히 이슬람화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이슬람 포비아)과 우려, 생면부지의 난민을 도울 재정이 있으면 노인 문제 등 우리 사회의 긴급히 구제해야 할 곳에 우선 집행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현실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 대한한국은 난민신청자 1000명당 허가비율이 0.04%다. 세계 10위권이라는 국력에 비추어볼 때 세계 139위라는 난민 인정률은 극히 저조하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난민 지위를 신청한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쉽게 허가해 주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난민에 대한 논의는 정부에 맡기고, 교회는 이미 들어온 난민을 지극히 작은 자로 알고 사랑과 긍휼로 다가가고 섬겨야 한다.
난민의 필요를 채워주는 맞춤형 섬김
요르단, 터키, 레바논에 있는 난민들의 체류가 장기화됨에 따라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도움이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먼저는 난민 자녀교육 지원을 들 수 있다.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들 가운데 어린이, 청소년 비율이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 열악한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노동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는 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교육 사역이 너무나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 교회 성도들이 여름이나 겨울 방학, 혹은 휴가를 이용해 중동의 난민 사역 현장에 와서 단 며칠만이라도 이 어린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도 중요한 섬김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관심과 존중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이 아이들에게, 비록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까지 자기를 찾아온 낯선 방문객의 따스한 그 눈길만으로 이 아이들은 자기 존재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구호에 의존해 온 요르단 등 중동에 있는 난민들의 삶은 매우 열악하며 적게 받더라도 구호에 기대어 살아온 탓에 가난한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 이런 악순환을 깨고 그들 스스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재능과 형편에 맞는 직업을 찾게 하는 도움도 필요하다.
폭력과 전쟁이라는 인간의 야만적 범죄를, 오히려 난민구원의 길로 바꾸어 가시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 현장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나님의 이 영혼 구원을 향한 선하신 역사에 방관자가 아니라 감사와 감격으로 기꺼이 동참하는 자가 많아지길 소망한다. <끝> [복음기도신문]
김시므온 본지 객원 기자
필자는 2015년 가을, 이중덕 포토저널리스트, 최서우 PD(CGN)와 함께 터키에서 출발하여 그리스-마케도니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독일로 이어지는 3000㎞의 난민 행렬을 따라가며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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