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베네수엘라는 한때 남미의 경제부국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가 빈곤에 시달리며, 경제불황으로 자국을 떠나려고 하는 난민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경제위기에 빠지기 전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석유매장량을 가진 석유부국으로 석유 생산량은 세계의 10%에 달할 정도였다. 이에 따라 1970년대 베네수엘라의 1인당 GDP는 1100달러로 320달러 수준의 브라질, 콜롬비아에 비해 훨씬 많았으며, 미국 5240달러 수준에 비해 1/5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석유로 인한 부패…부유층에 대한 원망
그러나 유가인상으로 석유산업이 성장하면서 동시에 부패가 본격화하고 권력 계급이 생겨났고 빈부격차가 심해졌다. 이에 경제적 약자인 하층국민들이 부유층에 대한 원망이 일어났다. 이때 등장한 사람은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우고 차베스라는 인물이다.
하층민 출신의 차베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았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그는 국민들에게 좌편향과 표퓰리즘 정책으로 화답했다. 최상의 복지를 약속하고 사회주의식 복지 정책을 제시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갔다.
차베스, 반미와 민족 포퓰리즘으로 인기
차베스는 대외적으로는 반미 깃발을, 내부적으로는 민족 포퓰리즘을 내세웠다. 그는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제공하고, 200만 채의 집을 지어 무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살게 해줄 뿐 아니라 심지어 석유까지도 거의 공짜로 쓸 수 있는 ‘21세기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정책들이 민생을 개선하고 빈곤율을 낮춘 것은 사실이다. 얼마나 오래갔을까?
이러한 차베스의 정책이 한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집권했던 시절에 유가인상으로 석유시장이 황금알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그의 취임이후 10년 동안 유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1998년 배럴당 10달러 수준이었던 석유가는 2008년에는 무려 150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그때까지였다. 그해 말 석유가격은 1배럴당 40달러(약 5만원) 아래로 떨어졌고, 이듬해인 2009년 1월 33달러까지 떨어졌다.
유가 하락 이후, 베네수엘라 경기 곤두박질
그러자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곧바로 어려움에 직면했고 석유로 인한 수입을 전제로 가동되던 베네수엘라의 복지 시스템을 지탱할 수 없게 됐다. 약속한 복지비용 부담을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끝없는 화폐 발행이었다. 결국 베네수엘라의 사회와 경제상황은 치솟는 인플레이션(돈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 민심은 극도로 분열됐다.
석유판매를 통한 수입을 전제를 유지돼온 베네수엘라의 일장춘몽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인간의 탐욕과 시장경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지도자의 선택은 베네수엘라를 수렁텅이로 이끌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