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바울은 로마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며 동시에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롬 1:1, 4, 7). 필자는 신학교에서 로마서를 강의하면서 주와 종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종의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역설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신학교 교수사역 중은 물론, 신학교 퇴직 후 몇 년이 지난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의 종으로 살고 있다고 자부하며 입버릇처럼 고백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이 터졌습니다. 그 날도 나는 입버릇처럼 주님은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때까지 수십 년 동안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던 주님이 나에게 주신 영적 깨달음은 “내가 어떻게 너의 주인이냐? 네가 너의 주인이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마음으로 깨닫게 해주시는 것은 네가 나를 너의 주인이라고 입으로는 고백하면서도 네가 진정으로 나의 종으로 살아왔느냐고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도바울 당시 종에 대한 일반적 개념은 종은 소유권이 없으며 주인을 의존하며 그 주인에게 목숨 바쳐 충성하여야 하는 자일 뿐 아니라 종은 자신에 대한 주권 행사를 할 수 없는 자이였습니다. 이 일반적인 개념에 비추어 볼 때 나는 감히 주님을 주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내가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할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즉각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할 때는, 주로 전쟁에 패함으로 포로 되어 종이 된 로마 사회의 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에 그의 종이 되었으며 또 그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명의 종이라는 확신 속에,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고 고백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사도바울처럼 이런 깨달음 속에 주님을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였느냐는 물음이 던져지면서 “주여! 내가 죄인입니다. 이제부터 진정으로 주님을 주인으로 섬기게 해주시기를 원합니다.”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가 나를 진정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느냐?
하지만 영적 깨달음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너는 너의 주인일 뿐 아니라 네가 나의 주인이다.” 나는 이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 아니 내가 어떻게 주님의 주인처럼 행하였단 말입니까?” 마치 주님의 대답은 “너는 기도를 통하여 나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는 자이다. 또 너는 기도로, 만일 주님이 내 기도 안 들어 주시면 하면서, 나는 협박하는 자이다. 너는 세상 모든 근심 염려를 내 대신하는 자이다. 이래도 네가 내 주인 노릇을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못하겠느냐?”이었습니다. 영적 깨달음은 계속되었습니다. “만일 네가 나를 진정으로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간다면, 내가 너를 끝내 줄텐데!”라는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 나는 내 모든 염려와 걱정을 나의 주인 되신 주님께 맡기고 매사를 주님의 주권에 맡기고 순종하며 사는 훈련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들이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나의 삶 속에 일어나고 있음을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내일에 대한 염려 대신 나의 삶 속에 나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행하실 일을 기대하며 소망 중에 내일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서 주인 되신 주님이 주시는 모든 축복을 누리며 주인 되신 주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실 놀라운 내일을 소망하며 오늘의 고난과 어려움을 인내하며 감사함으로 성실히 살아가시기를 소원합니다.
필자는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총회신학교와 영국 더럼대학에서 수학하고, 합동신학교 박사원장으로 정년퇴직한 뒤, 현재 헤브론선교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 감옥에서 부르는 사랑의 노래(2007), 언약신학으로 풀어내는 부흥이야기(2010) 등이 있다.[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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