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는 관계에 있다. 가정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집과 풍성한 먹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정말 사랑하는 관계인가에 달려있는 것과 같다. 그렇듯 하나님 나라가 온통 화려한 금은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하나님 나라의 핵심 요소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관계에 있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주제이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생애는 철저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삶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것이 아무 것도 없으셨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것은 오직 하나님 자신이셨다. 성령님도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시고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는 진리의 영으로 계신다.
즉 삼위 하나님의 관계는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는 관계가 결코 아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상대방을 위해 존재하는 관계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핵심 요소이며, 생명의 본질이다. 생명력이 있는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 풍성한 열매를 맺듯, 생명의 본질은 십자가의 원리인 것이다.
반면 세상은 비교를 통해서 동기부여를 한다. 비교는 두 대상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비교는 ‘자기의식’에서 출발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십자가가 없어지는 순간 곧바로 자기가 나타나고 비교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경쟁과 시기와 질투와 물고 죽이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울이 자신을 다윗과 비교하기 시작할 때에 그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스스로 망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와 같다.
세포로 비유하자면, 우리 몸의 세포 중에서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는 세포가 정상적인 세포이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존재하는 세포가 있다. 바로 암세포다. 암세포가 힘을 얻고, 몸의 어느 세포보다 강력하게 세력을 확장해 나가면 나갈수록 결과는 모두의 죽음이다.
우리가 마주치는 세상적 교육 배경에 이같은 십자가의 원리가 결여되어 있다. 그런 이 땅 어디에서 십자가와 부활, 생명과 진리이신 예수님을 배울 수 있겠는가? 세상의 교육은 자신의 성공과 만족을 위해서 정상을 위해서 달려가게 한다.
그 결과,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결국 풍요의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공멸이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유토피아를 만들어냈는가? 결코 아니다. 지금 온 인류는 인간의 탐욕의 결과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자녀 교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자녀 교육은 그들을 가르치라고 계명을 받은 부모에게 책임이 있다. 이제 부모의 책임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 복음 앞에 서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갈 결단을 해야 한다. 이 길만이 영광스럽고 풍성한 생명의 길이다. 어린양이 어디로 가든지 이 길을 따라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에 학교구조가 엄청나게 생겨났다. 대량 생산을 통해 값싼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부모들이 모두 일터로 나가고 국가가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기 시작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은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모두가 동감하는 인간이 주인 되는 ‘인본주의’를 가르칠 수밖에 없다. 국가교육은 그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고 가르치라고 말씀한다.
거듭나지 않은 아이가 저절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은 없다. 따라서 부모가 그 삶을 먼저 살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회개하라고 설교할 필요가 없다.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 안에 있으면 아이가 깨닫고 회개할 수 있다. 따라서 가정 안에서 자녀 교육을 할 때에 부모들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서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교과 과정과 연결하여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사람이 어떤 존재이며 자연과 피조물이 어떤 구조인지 설명해 주는 것이 교과 과정이다. 인간론이나 자연관이 하나님의 관점 안에서 가르쳐지는 교과 과정은 기존 공교육에는 없다.
요즘 인성교육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사랑, 희락, 화평, 자비, 충성 등의 성품들은 성령이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오는 열매들이다. 성령이 없이, 다른 도를 닦는 행위 등으로는 불가능하다. 성령님과 인격적인 교제로 즐거이 순종하며 살 때에 나타나는 성품의 변화가 인성교육이다. 따라서 성령이 없으면 교육은 불가능하다.
지성 또한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피조물에 대하여 성령이 오셔서 가르쳐 주신다. 성령을 통한 올바른 지성을 가질 때에 비로소 불의에 대한 분노, 옳은 것에 대한 감동 등 올바른 감정과 감동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은 십자가의 삶을 살게 하는 것
의지는 그 감동에 대해서 자신을 드려 결단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을 반복할 때 습관화가 되고 행동양식이 되는 것이다. 이런 행동양식이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면 문화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교육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기쁘게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지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 지식은 죽기까지 기꺼이 순종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니면 다른 도리가 없다. 자녀 교육은 성경을 읽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적용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예수님을 증거하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만나고 성령이 임하게 된다. 그리고 성령의 빛 안에서 모든 학문과 영역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바로 배운 하나님의 군사들이 나와야 이 땅에 소망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의 본질은 십자가이다.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과 이웃과 자연을 사랑하는 십자가의 도를 이해하고 가르친다면 얼마나 영광스럽겠는가. 우리의 자녀들이 부활의 영광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여 온 땅을 다스리기 위해 모든 교과 과정 안에 십자가가 심어져야 한다.
[55호에 1회분 게재]
복음기도동맹 세미나 강의내용 요약
장갑덕 목사 | 카이스트교회. 기독 홈스쿨 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