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교회에서 만난 성도가 딸을 맡아달라는 요청에서 시작된 공동체에 위기의 아이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고아원에서 쫓겨난 아이, 아빠의 폭력으로 자살을 생각하던 아이, 알코올 중독에 빠진 부부 등 하나님이 보내주신 공동체 식구들과 믿음의 싸움을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가고 있다는 아클라이(K국) 선교사. 때로는 선교사로서 부끄러운 죄 된 자신의 실존을 드러내야 하는 공동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위로에 힘입어 다시 일어나 영광의 길을 가는 그녀의 삶을 들었다.
–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시나요?
“현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센터를 운영하고 있어요. 방과 후 교실 같은 거죠. 저는 이곳을 비전센터라고 불러요. 40명 정도 되는데, 신앙이 있는 아이들도 있지만, 믿지 않는 아이들도 함께 공부해요. 토요일에는 청소년클럽을 여는데, 서로 교제도 하고 게임도 하고, 주제를 가지고 강의와 토론도 해요. 이성교제, 가정, 용서, 정직함…. 성경에 근거해 나눌 수 있는 주제들이 많아요. 매년 캠프도 함께 해요.”
– 아이들과 공동체로 살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주님이 보내주신 아이들과 한 명 한 명 같이 살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많을 때는 일곱 여덟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살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마리아(17살, 가명)와 누리아(18살, 가명)라는 자매 두 명과 살고 있어요. 다른 아이들은 대학에 가거나 각자 진로를 따라 타지역에 있어요. 대부분 부모님이 알코올 중독이거나, 아빠가 재혼해서 아이를 돌보지 않는 가정이었어요.”
– 처음 어떻게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되셨는지요.
“저는 모태신앙에 외동딸이에요. 대학 때도 혼자 자취 생활을 했기 때문에 혼자가 익숙했죠. 그런데 27살에 단기선교지인 U국에서 인정하기 싫었지만 제가 공동체에 부적합자라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협력했던 선교사님들은 다들 좋은 분들이셨는데, 사역이 힘든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게 힘들었어요. 제가 그렇게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연약한 성품인지 몰랐던 거죠. 그래서 몇 년 후 K국 장기선교사로 나오면서 공동체는 꿈도 꾸지 않았어요.
그런데 주님의 계획은 달랐어요. 언어와 현지 적응이 끝나고 혼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이사를 했는데, 하루는 현지 교회 성도가 할 얘기가 있다고 찾아왔어요. 이혼하고 아들과 딸을 데리고 있었는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도시로 일하러 가는데 딸을 맡아달라는 거예요. 새엄마와 죽어도 살 수 없다고 저와 살게 해 달라고 부탁했대요. 전에 그 아이를 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서럽게 울던 그 눈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함께 살게 됐죠.
다음엔 제게 수학을 배우던 한 여자아이에게서 울면서 전화가 왔어요. 집이 아니라 창고 같은 곳에서 엄마와 둘이 지내는 아이였어요. 가보니 엄마가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고, 쓰레기와 역겨운 냄새로 잠시도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작은 여자아이가 무섭다고, 하룻밤만 자고 가면 안 되냐고 했어요. 아이를 놓고 갈 수 없었어요. 밤새도록 그 아이 엄마의 술주정을 들으면서 알코올 치료센터에 가야 된다고 설득했어요. 그렇게 엄마를 치료센터에 보내고 그 아이는 저와 함께 살게 되었죠. 그 아이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마리아예요.”
나의 생각과 다른 주님의 계획
주님은 그렇게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이끌고 오셨다. 고아원에서 쫓겨나 소녀원(청소년보호수감소)으로 가게 된 알뜨나이(가명), 아빠의 폭력으로 자살을 생각했던 마리아(가명), 노숙자가 되어 갈 곳이 없었던 부부까지…. 함께 살게 된 아이들은 그 순간에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걸 알게 하셨다. 결코 할 수 있어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주님은 거절할 수 없게 한 단계씩 인도하셨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자에게 주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려 주셨다.
“알뜨나이를 맡는 것은 너무나 큰 도전이었어요. 고아원에서 쫓겨나 또 다른 고아원으로 갔는데 너무 열악했어요. 고아원 선생님들도 지쳐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고, 그 아이도 너무 배고파했어요. 그때 주님이 이런 마음을 주셨어요. ‘나는 이 아이를 너무 사랑한다. 네가 그 마음을 전해주지 않겠니.’ 알뜨나이에게 그 말을 해 주고 둘이 안고 엉엉 울었어요. 그 고아원에서마저 쫓겨나 범죄자들이 있는 소녀원에 가야하는 알뜨나이를 내버려둘 수 없었어요. 그렇게 한 명이 세 명이 되고, 많을 때는 현지인 부부와 다섯 명의 여자아이와 살기까지 정말 주님이 하셨다고 밖에 할 수 없어요. 외동딸이고, 집은 깨끗이 정돈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쉬는 것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듣고 있자니 인도에서 팔려가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공동체를 꾸렸던 선교사 에이미 카마이클이 생각났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하나님이 이 땅에 그렇게 한 순종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은혜 가운데에도 함께 사는 것은 매순간 내가 죽는 일이었다.
“여자아이 세 명과 살 때였는데, 두 명은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다 말하는 아이들이었어요. 그날도 여러 가지 일로 잔소리를 했는데 한 아이가 이러는 거예요. “왜 맨날 우리만 잘못을 인정 안한다고 말해요? 선생님도 실수하고 우리 앞에서 인정 안하잖아요.” 너무 건방진 말인데 사실 맞는 말이었어요. 그날 그 아이에게 용서를 구했어요. 감정적으로 잔소리한 것, 가르치면서 나는 행하지 않는 것이요. 그랬더니 “알겠어요. 용서해줄게요.” 하고는 자기 방으로 가 버렸죠. 서로 용서를 구하는 감동과 은혜의 시간을 기대했는데 그렇게 끝난 적도 있었어요(웃음).
또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과 살 때였는데요, K국에 오기 전까지 제 자랑은 윤기 나는 머릿결이었어요. 그런데 생활용수에 들어있는 석회 성분 때문인지 점점 머릿결이 나빠졌어요. 그래도 한국 샴푸를 쓰면 좋아졌는데, 아웃리치 온 한국팀이 구하기도 힘들고 비싼 한국 샴푸를 어쩌다 주고 가면 기쁨으로 쓰곤 했죠. 그런데 여자아이들이다보니 샴푸가 엄청나게 들었어요. 그래서 한국 샴푸를 몰래 숨겨놓고 저만 쓰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나라 민족을 섬기러 왔다고 하면서 샴푸 하나 포기 못하는 나는 뭐지? 그런 사건들을 통해 주님은 하나씩 저를 포기하게 하셨어요(웃음).”
샴푸를 포기하며 주님 앞에 서다
– 알코올 중독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좀 더 나눠주세요.
“그분들과 함께 산 시간은 저에게 참 귀한 시간이었어요. 얼마나 부지런하고 착한지 함께 살면서 많은 힘과 도움을 얻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술이었어요. 끊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한국에 잠시 다녀오는 동안 옛 친구를 만나 다시 시작됐죠. 알코올 중독이 그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어요. 술만 마시면 완전 딴 사람이 됐어요. 전문 치료가 필요했죠. 감사하게도 알코올 치료센터 원장님이 와 주셨는데, 두 부부와 밤새도록 면담을 하신 결과 제게 충격적인 얘기를 해주셨어요. 알코올 중독 치료는 완전한 자기 절망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분들은 너무나 교만하다는 거였어요. 술을 마시면 다시 제가 도와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절망한 사람의 겸손이 없다는 의미였죠.
제가 그분들에게 방해가 되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그분들을 놓을 때라고 말씀하셨죠. 치료센터를 강력하게 거부하는 그분들에게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며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말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어요. 그 상황만 본 다른 아이도 ‘갈 데도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그렇게 쫓아낼 수 있냐.’고 어려워했어요. 그때 알게 되었어요. 없을 때 나눌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지 않는 믿음도 필요한 것, 그것이 그를 살린다는 것을요. 주님이 그렇게 공동체를 통해 저를 인도하시고, 키우시고, 가르치셨어요. 그리고 실은 그 부부와 아이들을 통해 사랑을 배웠어요. 저를 ‘엄마’라고 부르며 안아주는 아이들이 있기에 제가 싱글인지, 외로운지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 사역하시면서 특별히 어려움을 경험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존재적으로 절망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어요. 저는 제가 호세아이고, 고멜과 같은 K국의 영혼들을 끌어안으며 섬기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열방의 현장에서 섬기면서도 여전히 포기하기 싫은, 감추고 싶은 한 가지가 있었어요. 함께 사역하는 현지 형제와의 관계였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형제·자매로만 지냈지만, 감정적인 교제는 계속됐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죄는 짓지 않았지만 저는 계속 그 형제를 이성적으로 바라본 거죠. 함께 살던 부부가 다시 술을 마시고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저도 그 형제와 헤어지고 만나고를 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나는 선교사로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짐을 싸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나 주님은 고멜 같은 저를 다시 불러주셨어요. 그리고 말씀해 주셨어요. ‛네가 나를 위해 섬기고 애쓸 때도 내 딸이지만, 넘어지고 쓰러져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그때도 너는 여전히 내 딸이다. 그런 너를 위해 내가 죽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가라! 나의 옷을 입고 살아라.’ 복음이 선포되는 현장에서 함께 사는 아이들 앞에서 그런 나의 모습을 말할 때 고민도 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고백할 수밖에 없었어요. 고멜과 같은 저는 십자가에서 죽었으니까요.”
공동체를 통해 배우는 사랑
– 정말 아멘입니다. 복음 앞에 선 아이들의 반응도 궁금해요.
“1월에 V시에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두세 명 정도 데리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주님의 열정은 엄청났어요. 아이들 안에 복음에 대한 목마름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V시에 계신 선교사님께서 직접 센터가 있는 곳까지 와서 아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주셨어요. 계속되는 방황으로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진 에르킨(가명)이라는 형제도 극적으로 참여하게 됐죠.
부모님 반대로 못 가게 된 자스굴(가명)은 눈물로 부모님을 설득해 가게 됐어요. 또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는 베르멧(가명)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 아이도 함께 가겠다고 결정했어요. 주님께서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셨어요. 그렇게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함께 복음 앞에 서게 됐어요.”
러시아어로 진행된 복음학교에서 아이들은 복음을 듣고 변화했다. 베르멧은 자기가 구했던 답을 찾았다고,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성공을 위해 계획했던 진로를 내려놓고 다시 교회에 열심히 나가 기도하며 고민하고 있다. 컴퓨터 게임과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일상이었던 에르킨은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철저히 고백했고, 어렵지만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있다. 여전히 아이들과 싸우고 반항을 하다가도 “아! 옛날 에르킨은 십자가에서 죽었어.”라면서 날마다 믿음의 싸움을 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를 용서하지 못하던 누리아는 울면서 엄마를 용서한다고 고백한 후, 조금씩 자신을 내려놓는 일을 시작했다. 자신을 아프게 했던 사람들에게 “절대로 용서 못해요.”라고 했던 말은 “용서할 거예요. 애쓰고 있어요.”로 바뀌고 있다.
“매주 말씀기도 모임으로 모이고, 함께 복음을 공부하고 중보하며 서로를 격려해요. 그렇게 주님은 계속 아이들 심령 가운데 일하고 계세요.”
– 이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랑이요! 주님의 눈 먼 사랑!! 공동체 생활을 통해 주님은 오히려 저 자신을 향한 절절한 사랑을 보여주세요.”
– 앞으로 계획이 있으신가요?
“총체적 복음을 들은 후, 저는 계획을 하지 않아요. 공동체 아이들이 언제 떠나고, 또 어떤 아이들을 만나서 다시 살게 될지 알 수 없어요. 그리고 떠난 아이들이 다시 돌아올지도 알 수 없죠. 그저 주님이 또 보내시는 아이들을 제가 알아보고, 그 아이를 주님의 마음으로 안아주고,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기 바래요. 함께 사는 공동체 아이들과 센터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을 더욱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복음으로 사는 것이 저의 계획입니다.” [복음기도신문]
K국= 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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