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본 땅에 몰아친 대지진과 쓰나미 소식을 접한 건 신도로 들어가던 배 안에서였다. 나 또한 매일 바다를 끼고 살며 그 변동에 발이 묶여 동동거릴 때가 있지만 그 물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덮칠 것이라는 생각은 결코 해보지 못했다. 그들에게도 그날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당혹 스러움과 절망의 ‘마지막 날’ 같았을 것이다. 소식을 대한 뒤 한참 동안 뛰는 가슴을 진정치 못했다. 그리고 그 떨림은 일본 팀으로 땅밟기 배정을 받던 날에 동일하게 주어졌다.
Return! 주께 돌이키라! 8명의 출정자와 2명의 중보기도자로 배정된 우리 팀에 주님이 허락해 주신 이름은 바로 리턴(Return)이었다. 주께로 온전히 돌이키길 원하시는 ‘리턴 투 더 가스펠(Return to the Gospel)’의 말씀이 누구보 다 우리에게 부어졌다.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들으라 (사46:12)” 생명을 다한 전심의 태도가 아니면 전부로 내어주신 십자가 앞에 설 수 없었다. 주님이 나와 팀과 일본 땅에 원하시는 것은 복음을 받는 자의 태도인 ‘목마름과 전심’뿐이었다. 그러나 나아간 일본의 모습은 예상 밖의 ‘무감각함과 일상’으로 비추어졌다. 그것이 곧 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현실도피와, 절망을 대면 하고 싶지 않아 하는 자아의 반응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방문을 허락한 동경에덴교회의 상황을 들었을 때 더욱 깨닫게 되었다.
떠날 곳이 있는 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미국으로 한국으로 흩어지고 성도들이 반으로 줄었다는 소식이었다. 여름철 쉴 새 없이 몰아닥치던 단기팀 조차 발길을 뚝 끊은 마당에 ‘기도하러 왔다’는 우리의 등장은 교회에 대단한 충격이 된 것 같았다. ‘주님이 이 땅으로 보내셨고, 기도하면 주님이 일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주님을 믿고 기도하러 왔습니다.’ 우리 팀의 소개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24시간 쉬지 않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순종이면 전부였다. 그러나 그저 일본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나아간 우리에게 주님은 당신 수준의 일을 이루어 가셨다. 기도만 하겠다고 나아갔으나 기도 조차 할 수 없는 죄 된 실존을 보게 된 것 이다. 목 놓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주님, 우리에겐 주님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일본 땅에 오직 복음만이 필요함을 고하며 간절함으로 복음 앞에 서게 하셨다.
우리를 찢어 일본교회를 향해 쏟아진 생명의 말씀 일주일 느헤미야52기도가 마쳐지던 날 주님은 ‘다시 복음 앞에 서라’ 말씀해 주셨고 히브리서로 말씀기도를 하게 하셨다. 율법의 행위로 죄의 열매를 모두 땄지만 복음의 실제를 누릴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 겉보기에 세련되고 고상한 일본 땅 과 어쩌면 그리도 동일했는지, 자기 의로 똘똘 뭉쳐져 하나님보다 선하고 의로운 자아생명의 기준과 잣대를 직면하며 일본인들의 예의범절과 선진의식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십자가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는 죄의 실존 앞에 더욱 복음의 능력을 경험했다. 복음은 죽었던 우리를 살리기에 충분했다. 말씀은 우리를 찢고 관통하여 곧장 일본의 교회들을 향해 생명으로 쏟아졌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40)” 일본의 교회가 아니면 우리는 온전함을 이룰 수 없었다.
일본교회의 회복이 일어나지 않으면 부흥하는 한국교회는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 내가 죽어야 지체와 팀이 살고 우리 팀이 죽어야 일본이 살고 일본이 죽어져야 열방이 사는 십자가의 실제를 보게 하셨다. 이제 우리의 존재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 지체를 위함이 아니면, 열방을 위해 잡아먹히기 위함이 아니면 생명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 숨을 쉬고 먹고 자는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움직임조차 당신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자, 오직 주님만이 필요한 자들을 오게 하는 일을 위해 존재하게 하신다. 일본에서 의 2주는 일본교회 성도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어 잊어버리고 싶은 현실과 죄의 실존 앞에 중보자인 우리를 더욱 치열하게 세우시는 시간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열방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게 하셨다(히13:12-13).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 믿음의 주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볼 때 ‘그날’의 영광을 위해 기도의 자리에 서는 중보적 존재적 부르심을 깨닫고 나아가게 하셨다. 일본을 위한 우리의 기도는 계속된다. 그 날이 오기까지 더 이상의 어떤 환란이 닥친다 해도 전능자이신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에 두려울 것은 없는 생명으로 든든히 서 가게 하실 것을 기대한다.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주님을 믿기 때문이다. 마라나타!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46:1-3)
박혜인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