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복음의 의를 인간 수준의 공로로 취급하던 세대를 향한 식지 않는 주님의 열정적 대사건‘종교개혁’을 다룬 영화
영화 ‘루터’는 법률가를 꿈꾸던 마르틴 루터가 무시무시한 벼락을 피해,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겠다고 도와달라고 부르짖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도승이 된 이후, 루터는 수도원에서 ‘자학적인’ 고행과 수련을 통해 자신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구원의 문제로 몸부림친다.
이후 로마로 파견되었을 때에 그는 연옥에서 고통 받는 가족들의 구원을 위해 면죄부를 사들고 높은 교회의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는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로마 카톨릭의 ‘면죄부’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고 혼란스러워 한다. 루터는 자신의 고해신부의 권면을 따라 비텐베르크에서 신학공부를 하고 신학박사가 된다. 그리고 그는 강의와 설교를 통해서 로마 카톨릭의 면죄부 판매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고, 결국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에 면죄부 판매를 반박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내걸게 된다.
이 95개조의 반박문은 삽시간에 독일과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사람들이 루터의 지지자가 된 반면 로마 카톨릭 측은 루터를 파면한다. 보름스에서 열린 국회에서 루터는 카를 황제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카톨릭 교회 측의 주장에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고백한다. “철회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 서 있습니다. 다른 선택은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도우실 것입니다.”
당시 기사(騎士)의 난과 농민전쟁 등의 시대적,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루터는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을 마친다. 그리고 영화는 1530년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회의를 통해서 루터교의 신앙이 자유를 얻는 것으로 마쳐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소위 ‘암흑기’(the Dark Ages)라고 불리는 그 시대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역사의 순서를 따라 그 ‘암흑기’의 끝 지점에서 당대의 사람들이 “그리스·로마 문화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부활’ 혹은 ‘부흥’을 뜻하는 르네상스가 떠올랐다. 인간 중심이었던 고대문화를 회복하고자 했던 일련의 시대적 움직임. 중세가 르네상스를 낳은 것이다. 인간 역사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으로 고스란히 돌아간 것이다.
이것이 중세의 그 화려한 종교적 겉치레 속에서 복음에 대해 무지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인생들을 생각하며 잠시 내 안에 머물렀던 절망이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상은 중세의 교회의 실패를 조롱하고, 그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미워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세상의 비난과 정죄를 받아야 할 대상은 우리 주님이 아니다. 그 정죄는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죄된 본성을 지닌 우리의 몫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어둠을 더 사랑하여 세상의 어둠 속에 자신의 악함을 감추었던 자격 없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사건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율법 외에 다른 한 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복음의 의를 한 낮 인간 수준의 공로로, 동전 한 닢 수준의 싸구려로 취급하고 모독했던 악독한 우리에게 당신의 아름다운 복음의 의를 빛과 같이 나타내신 교회를 향한 주님의 식지 않는 열정적 대사건이었다.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죄인을 향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유일하고 완전한 칭의의 근거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이 세상과 온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주제!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백성과 방언 가운데에서 이와 같이 기막힌 은혜의 개혁을 일으키시는 주님을 기대한다. 머지않아 이 엄청난 하나님의 복음이 영화롭게 되는 그날은 온다.
(루터 | 에릭 틸 감독 | 12세 관람가 | 123분 | 드라마 | 2003)
– 글 김주선 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