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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칼럼] 제자의 표지

Unsplash의Ally Griffin

이상규의 성경묵상6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성경에는 신자의 정체성을 말하는 여러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도 있고, ‘성도’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사신,’ ‘그리스도의 대사,’ ‘그리스도의 향기’ 그리고 ‘그리스도의 편지’ 등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칭호는 안디옥에서 얻은 이름인데, 예수를 따르는 이들에게 붙여졌던 칭호였습니다(행11:26). 그런데 이 ‘그리스도인’이란 말(christianos)는 라틴어입니다. 라틴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호칭한 것은 다름 아닌 로마인들이었다는 뜻입니다. 로마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이렇게 불렀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을 당파나 정치적인 집단으로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이 용어를 좋아하지 않았고, 성경에는 오직 3번(행11:26, 26:28, 벧전 4:16) 언급되었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 용어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는 널리 사용되어 오늘에는 기독교 신자를 칭하는 일상적인 용어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성도’란 용어도 주로 바울이 사용한 용어인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사람들을 칭하는 용어입니다. 이 말이 세인트(Saint)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자연스럽게 교회의 구성원들을 칭하는 용어가 된 것입니다(고후13:12). 이 용어를 천주교에서는 일부의 특정한 사람에게만 적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성자’(聖者)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신’ 혹은 ‘그리스도의 대사’라는 말은 사도 바울이 사용한 용어인데(고후 5:20), 사신(使臣)이란 말은 ‘대사’(ambassador)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신자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고후2:15). 바울이 냄새의 메타포를 이용하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칭하는 용어 중에 ‘형제’ 혹은 ‘자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용어는 바울이 동료 그리스도인을 칭할 때 썼던 용어입니다. 사실 이 용어는 1세기 헬라로마 사회에서 혈연관계에서만 사용되던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호칭할 때,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이들에게도 ‘형제’ 혹은 ‘자매’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인종이나 종족, 자유인이나 노예, 남자나 여자와 관계없이 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진정한 몸의 지체라는 그의 교회관을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주님 안에 하나 된 그리스도인을 바울은 가족관계 언어로 불렀던 것입니다. 이런 용어들이 이 땅에서의 신자들의 삶의 방식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신자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용어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용어가 ‘제자’라는 단어입니다. 물론 ‘제자’라는 단어는 기독교회에서만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을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제자’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을 지칭했던 기독교 초기의 용어이자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입니다. ‘제자’라는 단어(μαθητής)가 신약에서 269회나 사용되었습니다만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의 경우 ‘그리스도인’이라는 용어는 2번, ‘성도’라는 용어는 4번밖에 사용되지 않았으나, ‘제자’라는 용어는 22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1장 이후에는 ‘제자’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서신서에서는 제자라는 용어 대신 ‘성도’라는 용어가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자’라는 말은 처음에는 12사람에게만 적용되었으나 점차 그를 따르는 이들을 제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41절에서는 “이날에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더하였더라.”라고 했고, 6장 1절에서도 “그 때에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제자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자 훈련, 제자 양육이라는 용어가 그것입니다. 이런 오늘의 현실에서 볼 때 어떤 사람이 진정한 제자이며, 제자의 표지(mark)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다가오는 본문이 요한복음 13장 입니다.

한 사람의 신분이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일까요? 무엇을 보면 그 사람의 신분이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 의복도 자신이 누군인지를 드러냅니다. 군복을 입고 있으면 군인이라는 사실을, 교복을 입고 있으면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제한적이긴 하지만 한 사람의 언행도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의복이나 외형적인 모습일까요? 위의 본문은 이런 현실에서 참된 제자의 중요한 마크를 보여주는데 그것이 35절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열두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예수님과 동행했기에 사람들이 제자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제자의 표지’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서로 사랑을 실천할 때 그것이 제자의 표지가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의 실천은 위기에 처한 오늘 한국교회가 보여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의 와중에 있었으나 진정한 사랑의 실천은 많은 개종자를 얻게 했던 것입니다. 그 한 가지 흔적이 사랑을 실천했던 그리스도인들을 칭하는 ‘위험을 무릅쓰는 자’(파라볼라노이)라는 용어입니다. 이들은 자신도 감염될 수 있고, 생명의 위험 앞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전염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고 자비를 실천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병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증거입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저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예수의 제자이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한국 기독교가 새로워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상규 교수 | 전 고신대 교수. 현 백석대 석좌교수. 교회사가로 한국교회 사료 발굴에 기여했으며, 한국장로교신학회 회장과 개혁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교회와 개혁신학> 등 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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