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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칼럼] 대체신학 이슈와 요한계시록 1:7의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 연구 (2)

Unsplash의 One zone Studio.

① 재림 예수님과 애통하는 불신자들

바클리(W. Barclay): 요한은 여기서 요한계시록 전체의 모토와 주제를 정하고 나간다. 그것은 그리스도 승리의 재림에 대한 확신이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고난 중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잔인한 적의 손에서 구출된다.[1]

헨드릭슨(W. Hendriksen): 그리스도 재림에 대한 통고는 본 계시록의 중심되는 주제는 아니다. 그러나 환난 중의 성도들에게는 참으로 위로가 되는 것이다… 회개의 애통이 아니라 절망의 애통이다… 절망과 슬픔 속에서 가슴을 치는 애통이다.[2]

김철손: ‘그를 찌른 자’를 어떤 개인 한 사람으로 단정한다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 자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예수가 반드시 재림하셔서 그 대적자들을 심판할 것을 확언하는 말이다.[3]

오니(D. Aune): 첫 번째 예언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모든 사람이 목격하고 심판을 겪게 될 불신자들의 고민과 공포를 예기하는(그리하여 19:11~19를 예기하는) 우주적 사건으로 나타내기 위해 다니엘 7:10과 스가랴 12:10에 대한 언급들의 전통적인 결합을 사용한다.[4]

박윤선: 그들이 애곡하는 이유는, (1) 종말이 이르기 전에 회개하지 못한 것을 뉘우쳐(회개는 아님-마 27:3) 통분히 여기는 까닭이며, (2) 이제 오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무서운 심판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이다(마 8:12).[5]

이광복: 재림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공개적인 사건이다. 보지 못할 자가 아무도 없게 된다… 온 천지가 진동하며 주의 재림을 보며 환상이 아니라 육안으로 목격하게 된다.[6]

매카써(J. MacAthur):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땅의 나머지 거주민들의 애통은 참된 회개를 수반하는 것이 아니다(cf. 9:21). 그것은 죄에 대한 죄책감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의 결과이다.[7]

윌콕(M. Wilcock): 구름과 통곡하는 백성이라는 두 가지 예언적 묘사를 자신의 재림과 관련시켜서 처음으로 결합한 분은 요한이 아니라 예수님이었기 때문이다(단 7:13; 슥 12:10; 마 24:30). 예수님을 찔렀던 자들은 마침내 그분을 알아볼 것이고, 구원의 기회를 잃은 것에 대해 통탄할 것이다.[8]

모리스(L. Morris): 우리는 여기서 주 예수께서 승리로 지상에 재림할 분으로서의 신적 위엄을 묘사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요한은 스가랴 12:10을 연상하면서 주님께서 그의 원수들에게 현현하실 것을 묘사한다.[9]

블롬보그(C. Blomberg): 종말론에 관한 핵심 교리가 7절에 나타난다. 승리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만민이 볼 수 있게 대중 앞에 지상으로 재림하실 것이고, 모든 족속이 애곡할 것이다. 스가랴 12장 10절에서 이 본문이 신자들이 회개하며 애통해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 30절에서 이 본문을 사용하실 때는, 또한 불신자들의 심판으로 인한 슬픔을 포함할 수 있다.[10]

비클(M. Bickle): 그분은 땅에 있는 모든 불신자에게 보이실 것이다(마 24:30~31; 계 1:1). 그분의 왕권이 선포되고 주장될 때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게 될 것이다. 각 나라마다(마 24:30; 계 1:7). 모든 사람은 그분을 충분히 그리고 분명하게 볼 것이다… 즉, 예수님은 지구에 충분히 가까워지고 천천히 지구 표면을 가로질러 이동한다.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이 그분을 분명히 볼 수 있을 만큼 땅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이런 일이 일어나서 그들이 그분을 영접하지 않은 것을 슬퍼하고 있다.[11]

② 재림 예수님과 애통하는 신자들 또는 불신자들

오스번(G. Osborne): 예수님의 재림을 목격한 자들 가운데 더러는 자신들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구원받아서 감격하여 애통하고, 나머지는 구원받지 못하여 절망하여 애통한다.[12]

③ 재림 예수님과 애통하는 신자들

비슬리 머레이(G. Beasley-Murray): 7절은 요한계시록의 표어로 불린다. 문장의 첫 번째 줄은 다니엘 7장 13절을 반영하며, 나머지는 스가랴 12:10에서 끌어온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0절에서도 동일한 연결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거스린 죄악에 대한 모든 인류의 애통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회개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너무 늦어서 오는 후회인지는 불확실하다. 요한계시록 15장 3~4절은 앞이 가능함을 시사한다.[13] 

코헨(G. Cohen): 이 절에 나오는 애곡은, 대환란 시대에 그리스도께 돌아온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인들의 애곡이다. 이들은 자기들과 자기 족속들이 구주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등을 돌렸다는 것 때문에 우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로 인해 그토록 고통당하신 이를 만나, 그가 그들을 위해 입으신 상처를 보고는 울음을 떠뜨린다(슥 12:10).[14]

패닝(B. Fanning): 영광스럽게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목격한 자들은 모두 다 신자들이 되어 자신들의 그동안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 벅찬 감격으로 인하여 애통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 때 예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을 넘어서 온 세상을 포함하기까지 확장한다고 해서, 참된 혹은 영적인 이스라엘을 위해 인종적 이스라엘 자체가 무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15]

③에서 요한계시록 1장 7절의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는 불신자들이 아니라 신자들이라는 점에서 ①과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그들에게 회개하고 구원받도록 하신 장본인은 재림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 순간에 이 땅에 살아 있는 자들로 국한되기 때문에 그의 초림부터 재림의 순간까지 이 땅에 존재하며 그의 복음 증거 사역을 감당하여 온 교회 공동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④ 상시로 오시는 예수님과 애통하는 신자들

빌(G.K. Beale): 그러므로 7절과 요한계시록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의 오심(‘오시리라’)은 역사 전체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고, 따라서 이른바 ‘재림’은 사실상, 이 오심들의 전체 과정을 끝내는 마지막 오심이다. 결론적으로 시대 전체에 걸쳐 복과 심판을 베풀기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의 ‘오심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마지막 때의 권세 행사의 한 표현이다… 결론적으로 스가랴 12장 10절의 언급은 또한 이방인이 메시아를 믿을 때인 마지막 재림이 있기 전 시기(교회 시대)에 적용될 수도 있다. ‘아멘’은 7절 앞부분에서 방금 말한 것의 신뢰성과 확실성을 증명하기 위한, 구절을 끝맺는 말이다.[16]

보쿰(R. Bacukham)도 땅의 모든 족속의 애통이 “진정한 회개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표현으로서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나라들의 구원을 기대한다.”라고 주장한다.[17] 빌과 보컴은 둘 다 무천년설을 지지하는 자들이므로 그들은 요한계시록 1장 7절의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 사이에 세워진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들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이필찬(2006): 땅의 모든 족속이 슬퍼하는 것은 회개를 위한 거룩한 슬픔이며, 이것은 열방이 아브라함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는 결과를 예상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회개의 역사는 예수님의 초림 이후에 재림의 때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7a의 예수님 오심은 단지 구속과 심판의 대상으로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예수님의 재림 사건으로 볼 수 없으며 초림과 재림 사이에 일어나는 상시적 오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회개의 역사는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 모든 역사를 통하여 이어지게 된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1:7은 온 나라에 대한 주권을 이양받는 메시아로서 왕의 즉위를 말하는 단 7:13과 하나님을 떠났던 이스라엘의 회개를 말하는 슥 12:10의 조화이다. 이 두 가지 모두를 예수님에게 적용함으로 왕적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됨을 말한다.[18]

그러나 이필찬은 요한계시록 1장 7절에서 예수님의 정체를 “상시로 오시는 예수님”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철회하고 “승귀하신 예수님”이라고 새롭게 해석한다.

⑤ 승귀하신 예수님과 애통하는 신자들

이필찬(2021): 다니엘 7장 13절… 의 배경으로 보면, 구름과 함께 오시는 예수님은 새 이스라엘 자신으로서 혹은 그것의 회복을 위해 오시는 메시아로서, 다니엘 7장 14절의 “인자 같은 이”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왕권과 나라를 받아 온 우주를 영원히 통치하는 분으로 등극하신다. 이 본문에서 승천하셔서 하나님 나라의 왕권을 획득하는 대관식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시는 예수님의 이미지는 만물과 역사를 주관하는 것이 로마 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님이라고 선언하는 요한계시록의 목적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19]

스가랴 12장 10절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전망하면서, 하나님을 찌른 이스라엘 백성이 은총과 간구의 영을 받고 회개의 애통을 하게 될 것이라 약속한 바 있다. 요한은 이 약속을 종말적 성취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곧 예수님을 찌른 세상의 모든 자들이 오순절에 오신 은총과 간구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서 자신들이 찌른 예수님을 보게 될 뿐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 예수님을 찌른 자들이란 사실을 깨닫고 애통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애통하는 주체가 이스라엘에서 땅의 모든 나라들과 같은 우주적 대상으로 발전하고, 찔린 대상도 하나님에서 예수님으로 변환된다.[20]

⑥ 승귀하신 예수님과 애통하는 불신 유대인들

조르단(J. Jordan): 모든 ‘땅(유대인의 땅, land)이 구름을 타고 오실(혹은 가실) 예수님을 볼 것(깨달으며 이해할 것)이다. ‘구름을 타고’는 지상으로 임하는 것을 결코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다니엘 7장 13절에서 암시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로 가심을 의미한다. 즉 계시록은 어떻게 예수님이 승천하심으로 그의 나라를 시작하셨는가를 보여준다.[21]

요한계시록 1장 7절의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조르단의 이와 같은 해석은 이필찬의 해석과 일치한다. 그러나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에 대한 그의 해석은 이필찬과 완전히 다르다. 송영목은 조르단과 마찬가지로 부분적 과거론적 해석을 따르는 자로서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송영목: “따라서 요한은 지금 예수님 AD 70년에 타락한 유대인들을 심판하시는 분으로서 영적으로 오실 것이므로 주님을 처형했던 사람들(즉 찌른 자들)과 ‘땅’의 모든 족속(the tribes, 슥 12:12),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심판을 보고 두려워하면서 애곡할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족속이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가리킨다고 밝힌다. 즉 성경에서 ‘족속’은 광범위한 이방인들을 가리키지 않는다. 7절 안에 나타나는 스가랴 12장의 암시와 요한복음 19장의 예수님의 처형에 사용된 단어는 일반적인 미래 종말론적 해석 대신, 일차적으로 유대적 배경으로 이해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이방 로마 제국이 아니라 불신 유대인들이 계시록의 1차 대적임을 추론할 수 있다. 주석가 대다수가 예수님의 미래적 재림으로 이 구절을 해석하더라도 7절에서부터는 ‘부분적 과거론적’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비록 7절의 부분적 과거론적 해석이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익숙하지 않더라도 문맥과 구약과 신약의 간분몬들, 그리고 묵시적 표현을 제대로 고려한다면 미래적 해석이 옳지 않음을 알 수 있다.[22]

그러나, 송영목의 요한계시록 1장 7절의 예수님의 정체에 대해서는 조르단과 달리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예수님이 구름 ‘위’가 아니라 구름과 ‘함께’ 오신다고 밝힌다. 그러므로 구름은 실제 구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즉 ‘구름’은 하나님 현현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7절이 가르치는 바는 계시록이 기록된 AD 66년경으로부터 예수님이 멀지 않은 시점에 속히 하나님의 영광과 섭리를 따라 영적으로 오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주님의 최종 파루시아 때에 실제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23]

이제 우리는 ④와 ⑤의 “애통하는 신자들”에 대해 생각하여 보자.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이 땅 위에 세워진 교회 공동체에 속한 성도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 어떻게 예수님을 보고 회개하여 애통하는 신자들이 되었는가? 그 일은 곧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믿음의 (또는 영적인)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이루어졌다.

이제 ②와 ③의 “애통하는 신자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들은 재림 예수님을 보고 회개하여 신자들이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에 대하여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가 있겠다. 그렇다면, 그들은 재림 예수님을 어디서 어떻게 보고 회개하여 애통하는 신자들이 되는가? 이제 우리는 이 질문을 염두에 두고 ①의 “애통하는 불신자들”에 대해 논의하여 보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를 바라본 자들은 모두 다 불신자로서 그들이 절망하여 애통한다는 것이 ①의 주장이다. 또한, 그들 중에 일부는 회개하고 구원받은 신자들이 발생한다는 것이 ②의 주장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역사적 전천년주의자 오즈번에 대하여 이필찬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오즈번은 구약의 배경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기에 이 문장이 갖는 “애통”에 대한 회개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심판”의 의미도 동시에 포함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주장함으로써 “땅의 모든 나라들”을 단순히 불신자들로 단정한다. 이것은 재림의 때에 불신자들 중에서 회개와 심판이 동시에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는 두 개의 의미가 동시에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다.[24]

본 고의 목적은 ⑤의 정당성을 입증함으로써 전통 교회의 신학은 대체신학이 아니라 성취신학 또는 확장신학임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의 요한계시록 1장 7절 연구는 두 개의 소제목으로 진행된다. 첫째는 “예수님의 정체(계 1:7a)”이고 둘째는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계 1:7bc)이다. 그리고 참고할 글로 이필찬의 주석 “예수님의 승귀: 예수님의 재림인가, 아니면 승천인가?(1:7)”를 소개한다. [복음기도신문]


[1] William Barclay, 『요한계시록』, 편찬위원회 역 (서울: 기독교 문사, 1974), 70-71.

[2] William Hendriksen, 『요한계시록』, 김영익. 문영탁 역 (서울: 아가페출판사, 1983), 60.

[3] 김철손, 『요한계시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60.

[4] David E. Aune, 『WBC 요한계시록(상)』, 김철 역 (서울: 솔로몬, 2003), 402-403

[5] 박윤선, 『성경주석 요한계시록』, (서울: 영음사, 1968), 50-51.

[6] 이광복, 『요한계시록 종합 강해』, (서울: 도서출판 흰돌: 2011), 178.

[7] John MacAthur, The MacArthur Bible Commentary, (Tennesse: Thomas Nelson, 2005), 1993.

[8] Michalel Wilcock, 『요한계시록 강해』, 정옥배 역, (서울: IVP, 2008), 37-38.

[9] Leon Morris, 『요한계시록』, 김근수 역, (서울: CLC, 1999), 54.

[10] Craig L. Blomberg, 『오순절 성령 강림에서 밧모섬까지』, 왕인성 역 (서울: CLC, 2006), 795.

[11] Mike Bickle, The Book of Revelation Study Guide, (Kansas City: Forerunner Publishing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2010), 115.

[12] Grant Osborne, Revelation. BEC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2), 69–70.

[13] George R. Beasley-Murray, 『IVP 성경 주석 요한계시록』, 김재영 역. (서울: IVP, 1954.

[14] Gary G. Cohen, 『코헨의 계시록 연구』, 전을표 역, (서울: 함께사, 1989), 38.

[15] Buist M. Fanning, 『강해로 푸는 요한계시록』, 정옥배 역, (서울: 도서출판 디모데: 2022), 89.

[16] G. K. Beale, 『그레고리 빌 요한계시록 주석』, 김귀탁 역. (서울: 복 있는 사람, 2015), 89.

[17] Bauckham, the Climax of Prophecy, (London: T. & T. Clark, 1993), 322.

[18] 이필찬, 『내가 속히 오리라』, (서울: 이레서원), 59.

[19] 이필찬, 『요한계시록: 1–11장: 때가 가까우니라』. (경기도: 에스카톤, 2021). 99.

[20] 앞의 책, 107-108.

[21] J. B. Jordan(조르단), A Brief Reader’s Guide to Revelation, (Niceville: Transfiguration Press. 1990), 13. 송영목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부분적 과거론’과 ‘이상의주의’ 비교”, 고신신학 2009년 9월, 73. 재인용.

[22] 송영목, 『요한계시록 주석 부분적 과거론과 다차원적 해석의 공공 선교적 적용』, (서울: SFC, 2023), 63-64.

[23] 앞의 책, 61-62.

[24] 이필찬, 『요한계시록: 1–11장: 때가 가까우니라』,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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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남 | 전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관련기사]
대체신학 이슈와 요한계시록 1:7의 예수님과 애통하는 자들의 정체 연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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