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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암시에 주의를 기울이라

Unsplash의 Alex-Wigan

아이들과 함께 마블 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이 영화에 다른 마블 영화와 연결되어서 심겨진 연결고리나 미묘한 암시 같은 게 없는지 유심히 찾곤 한다. 종종 어떤 건 지나치게 노골적이어서 연관성을 놓치려야 놓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주 미묘하게 숨겨진 경우에, 그것을 알아차리려면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봐야 할 때도 있다. 영화 속에 심겨진 숨은 그림은 다양한 마블 작품을 마블 영화 세계(Marvel Cinematic Universe)라는 더 큰 스토리와 연결하는 조직이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신약 성경 저자는 자신들의 글에 숨은 그림을 심어놓았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무려 3000~4000번 암시한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은 실제로 구약 성경을 인용하는 건 고작 몇 번에 그치지만(1:7; 2:27), 암시는 무려 오백 번이 넘는다. 흔하고 흔한 암시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신약에서 암시를 발견하는 것이 말씀 이해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까? 마가복음 1:7에 나오는 세례 요한의 수수께끼 같은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이 질문에 답해보자.

암시란 무엇인가?

암시는 이전에 쓰인 문헌에 대한 간접적인 언급이다. 신약 성경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특정 구절에 해당하는 몇 가지 고유한 단어를 사용하여 구약 성경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종종 무시되는 암시 중 하나가 마가복음 1:7에 나오는데, 여기서 저자는 창조물과 인류를 정화하고자 하는 “거룩하신 이”로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저자가 암시하는 건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불타는 떨기나무 이야기이다.

마가복음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인물 중 하나인 세례 요한이 등장한다. 그의 불타는 언어, 기괴한 식단, 이상한 옷차림이 상징하는 정체성은 구약 성경 선지자들의 계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명한 예언자 엘리야처럼 요한은 회개를 촉구함으로써 이스라엘을 주님이 오실 날에 대비토록 한다(막 1:6; 왕하 1:8; 슥 13:4 참조).

하지만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한 요한의 진술은 종종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다”(막 1:7-8, 마 3:11; 눅 3:16; 요 1:27 참조).

요한의 언어는 주인의 신발끈을 풀 자격도 없는 종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강조한다. 하지만 요한은 동시에 중요한 구약성경 구절을 하나 염두에 두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풀다”라는 그리스어 동사(lyō)는 출애굽기 3:5과 여호수아 5:15에 나오는, 오로지 그리스어(칠십인역) 성경에만 등장하는 “샌들(hypodēma)”과 짝을 이룬다. 마가복음은 이러한 초기 이야기를 암시한다. 마가복음 저자가 숨겨놓은 그림은 이 구절과 더 큰 성경 이야기 사이의 연결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야만 한다.

신약 속에 있는 구약의 구약 인용

출애굽기 3장의 칠십인역에서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모세는 떨기나무에 다가가려고 하지만, 주님은 모세가 “거룩한 땅”(5절)에 있기 때문에 “신발(hypodēma)을 풀라(lysai)”라고 명령하셨다. 불타는 떨기나무에 거하시는 주님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제거해야만 했다. T. 데스몬드 알렉산더가 제안했듯이, 샌들을 벗은 모세의 행위가 성전에서 맨발로 봉사하던 이스라엘 제사장들에게 선례가 되었을 수도 있다.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가 행한 일은 여호수아 5:15에서 반복되는데, 천사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신발(to hypodēma)을 풀라(lysai)” 하고 명령한 이유는 그가 “거룩한” 약속의 땅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할 때, 마가복음의 암시는 구약(출 3:5)이 구약(수 5:15)에서 인용되었고, 그게 신약(막 1:7)으로까지 와서 다시 인용된 사례이다. 세례 요한은 왜 출애굽기와 여호수아를 미묘하게 암시했을까?

이 암시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춘다. 마가는 예수님이 모세, 여호수아, 여호와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벗어야 할 샌들을 신었다는 점에서 예수님은 모세, 여호수아의 모습과 같다. “예수”라는 이름이 “여호수아”의 그리스어 번역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마 1:21; 눅 1:31). 그러나 이 암시는 예수님이 육신을 입은 여호와임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단순히 여호와를 연상시키는 존재에 그치지 않는다. 예수님은 여호와이고 요한은 예수님의 샌들을 벗길 자격조차 없다. 예수님이 서 있는 모든 곳이 다 “거룩한 땅”이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에서 그가 발을 디딘 곳은 어디든 거룩한 성소가 되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가기 때문이다. 에스겔이 예언했듯이, 종말의 성전은 “여호와의 발바닥을 둘 곳”이 될 것이다(겔 43:7).

마가복음 1장 후반에서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주장한다(24절). 여기서 예수님은 창조물을 정화하고 그 세계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우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땅은 다른 모든 땅보다 더 거룩하다”(미슈나 켈림 1.6)는 게 유대인의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이건 사실과 거리가 멀다. 이스라엘과 그 땅은 의식적 정화가 절실히 필요했다. 죄가 온 우주를 오염시켰다(창 3:1-7).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는 의식적, 도덕적 더러움을 초래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과 결코 함께 거하실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성육신과 순종적인 삶, 십자가에서의 속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제 단 한 번뿐인 의식과 도덕적 정화를 받는다.

무슨 차이가 있는가?

마가복음 3:5에 심어놓은 마가의 암시는 어떤 실질적인 차이를 만들어낼까? 그게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는 신약성경을 기대하며 읽어야 한다. 모든 페이지에서 구약성경에 대한 암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해야 한다는 말이다. 무려 수천 개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마가복음 1:7을 좁게 읽을 때, 우리는 구약성경과의 연관성을 놓칠 뿐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그리스도를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예수님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인간과 창조물을 정화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배우지 못한다. 창조물과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적합해져야만 한다. 달리 말해서 거룩해져야만 한다. 따라서 초림을 통해서 예수님이 시작하신 사역은 모든 창조물이 거룩한 우주적 성전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될(계 21:1-22:5) 그의 재림 때에 완성될 것이다.

둘째, 기대하며 읽는다는 말은 단지 말씀을 대충 아는 수준에서 벗어나 성경 전체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의 미시적 이야기가 어떻게 구원의 거시적 이야기를 구성하는지 배워야 한다. 마블 영화를 계속해서 볼 때, 우리는 그때그때 새로운 숨은 그림들을 발견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을 성경으로 채울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새롭고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계속해서 만나게 될 것이다.

관주 성경은 암시를 찾는 데에 도움을 준다. 모든 주요 영어 번역본의 출판사는 훌륭한 관주성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G. K. 빌과 돈 카슨은 신약 성경 속 모든 구약 인용과 더불어서 눈에 띄는 암시를 알려주는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Use of the Old Testament를 편집했다.

암시를 염두에 두고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까지 키울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출처: Keep Watch for Biblical Allusions

벤저민 글래드(Benjamin L. Gladd) | 벤저민 글래드(PhD, Wheaton College)는 TGC 이사, 카슨 센터 수석 디렉터이다. 지은 책으로는 ESBT 하나님 백성 성경신학: 아담·이스라엘·그리스도·교회(From Adam and Israel to the Church), Handbook on the Gospels, The Story Retold (with G. K. Beale)가 있다. Essential Studies in Biblical Theology를 편집했고, 돈 카슨과 함께 New Studies in Biblical Theology를 편집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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