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퇴직 5일을 남겨둔 한 판사님께서 “코로나 시국에 예배를 드리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당시 정부의 강경한 조치를 옳다고 판결했다. 역사적으로 한국교회는 4번 예배를 통제받았다. 첫 번째는 1938년 신사참배 강요로 예배가 무너졌고, 두 번째는 1942년 2월부터 8월 15일까지 일제는 한국의 예루살렘이라고 할 수 있는 평양 일대의 교회를 폐쇄했다. 세 번째는 8·15 해방 후 북쪽의 공산당이 들어와서 예배를 폐쇄했고, 끝으로 멀쩡한 자유대한민국에서 코로나를 핑계로 문 정부는 예배를 통제했다.
지금도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버스와 전철은 그토록 사람이 미어터지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유독 교회만을 통제했다. 그리고 문 정부는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놓고 “예배를 축소하라!”고 말하면서 “예배드리는 교인 수를 20~30%로 한정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국회의원 중에 70명은 교회 폐쇄 안에 동의했었다. 그런데도 그 모임에 참석한 16명의 교회 지도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로 앉아 있었고, 고작 한다는 말이 “대통령의 지시에 적극협조하겠다!”고 했단다. 그러나 서울과 부산, 광주, 수원의 몇몇 교회들은 주차장에서라도 끝까지 예배를 고수했다. 그 후 한국교회는 병들어 1만 교회가 없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비대면 예배>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여 예배를 드리는(?) 가나안 교인이 늘어났다.
좀 더 역사적으로 살펴보자! 국가주의와 제국주의에 빠져 있었던 일본은 국가의 안녕과 질서를 지킨다는 것을 핑계로, 제일 골치 아픈 반일 세력이 기독교라는 것을 알았기에 가장 먼저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을 시도하다 슬그머니 문화정책으로 바꾸어가면서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오늘날의 <문화 맑스주의> 방법이다. 결국 그들의 목적은 문화란 이름으로 교묘하게 우리 국민들의 정서에 파고들어 우리 민족을 <황국신민>으로 만들려고 발광을 했다. 그 첫 번째 방법으로 <창시개명>이었고, 다음으로 <신사참배>를 하게 함으로써 여기저기에 신사(神寺)를 세워, 우리 조선인들에게 일본의 태양신을 숭배토록 정책을 수립했다. 처음에는 교회의 지도자들도 약간의 반발을 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신사는 종교가 아니고 국민의식일 뿐이다!’라고 우리 국민을 속였다.
드디어 1938년 9월 장로회 총회가 열렸다. 의제(議題)는 ‘신사참배를 동의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였다. 사실 일본은 신사참배를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목사님들은 사전에 투옥했다. 예컨대 신사참배 반대 운동의 선봉장이었던 이기선 목사님은 평양을 중심으로 주기철 목사를 격려했고, 남쪽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상동 목사에게 확신을 주고 동분서주하면서 신사참배 반대 운동가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전략을 짜고 용기를 주었다. 이러니 일본 제국에게는 그들이 눈엔 가시로 여겨졌다. 이기선 목사를 위시하여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하는 목회자들을 일제히 잡아들여 옥에 가두었다. 이기선 목사의 지시를 받은 주기철, 손양원, 한상동, 이인제, 손명복, 박관준, 안이숙 등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정신으로 일제와 맞서다가 산 순교자인 출옥 성도들이 있었다.
신사참배를 가결하기 전에 김두영 목사는 일본 와세다 대학교 법문학과 출신으로 일본어가 유창했는데, 그는 김선두 총회장과 박형룡 박사를 모시고 일본 주요 인물을 면담하고 ‘조선의 신사참배는 절대로 안된다!’고 외교전을 폈다. 이유는 일본 요직의 인물 중에는 계급이 높은 관리가 ‘기독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신사를 참배해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는 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김선두 총회장과 김두영 목사는 그들과 비밀리에 회담을 하고, 1938년 9월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에게 들어가서 “총회장이 신사참배를 가결하는 것은 불법이니 모두 일어서라!”하고 “이 일로 총대가 10여 일 구금 당하면 그 후에는 방면될 것이다!”라고 협상했었다. 그러나 막상 총회 회의장에는 이미 일본 정사복 경찰들이 요소요소에서 감시하고 있었다. 총회장이 신사참배 가결을 묻자, 한 분만 ‘예’ 했고, ‘아니요!’라고 고함치는 자는 아무도 없었고 결국 신사참배는 가결되었다.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민낯이다. 회의가 마친 후 목회자들은 다섯 명씩 택시에 태워져 신사에 가서 절을 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없어졌고 <일본 기독교 조선 교단>이 되었다. 예배 순서로는 1) 동방예배 2) 대동아 전물 장병에 대한 묵념 3) 우미유가바합창(천황을 높이는 노래) 그런 후에 찬송가 1장을 불렀다. 예배 때 드리는 헌금을 <애국헌금>이라 하여 감리교는 전투기 2대를, 장로교는 1대를 일본에 바쳤다.
한 마디로 예배가 박살이 났다! 예배가 변질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가 거짓 신에게 바쳐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여호와를 섬긴다고는 하지만 속으로는 바알 우상을 함께 섬기는 거짓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예배는 생명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성도들이 만나는 것이다. 그렇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때 변화가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난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과 함께(With God), 하나님을 위한(for God), 하나님에게만(unto God) 드려야 한다. 즉 <말씀과 성령이 더불어>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지금 예배가 무너지고 있다.
예배를 우습게 여기고 통제하려는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사람의 두뇌도 문제지만, 예배를 열린 음악회 식의 감성적 볼거리와 즐길 것으로 바꾼 인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교회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예배가 무너지면 참 교회는 점점 없어진다!> [복음기도신문]
정성구 박사 |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40여년간 목회자, 설교자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다양한 국내외 시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한 칼럼으로 시대를 깨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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