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3-4)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성도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의 목록을 적어줍니다. 바로 음행, 온갖 더러운 것, 탐욕, 누추함,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입니다. 포르노그래피가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죄악입니다.
음행처럼 성적인 범죄가 확실한 것만 금한 것이 아닙니다. “온갖 더러운 것” 즉 모든 종류의 경건하지 못한 것은 성도가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탐욕”은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의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얻으려는 탐심, 욕망, 그 뿌리부터 뽑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외부로 드러나는 행위(음행, 더러운 것)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가져오는 더러운 마음(탐욕)까지도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처럼 일상에서 가볍게 할 수 있는 죄도 멀리해야 합니다.
성도(“holy ones”)라는 이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항목에 대해 바울은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해야 할 일, 혹은 성도에게 어울리는 일이 있으니 그것을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것이 바로 “감사”입니다.
램버트 박사는 “감사”가 포르노그래피를 이기는 데 필요한 은혜의 무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을 제거하는 대신 그 안에 감사를 채우기 원하십니다. 사랑, 자비, 절제, 기쁨 등 다양한 성령의 열매가 있지만, “감사”를 특별히 선택하여 기록하게 하신 목적이 있을까요?
감사는 탐욕의 반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의 동기는 탐욕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성적 탐욕 때문에 음행을 저지르고, 더러운 것을 향한 탐심으로 인해 더러운 일을 합니다(마 15:18-20). 탐욕은 기본적으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원하는 마음입니다. 목마르면 물을 찾고, 피곤하면 잠을 청하는 것처럼 결핍된 것을 채우려는 욕구 그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을 탐욕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탐욕은 내게 필요한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잘못된 방식으로 얻으려고 하는 것 혹은 내가 갖지 말아야 할 것을 가지려고 하는 욕심입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나의 배우자가 아닌 사람을 향하여 품는 성적 욕망이 탐욕이고, 그것을 잘못된 방식으로 얻으려고 하는 갈망이 탐심입니다. 포르노그래피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이성을 통해 나의 탐욕을 채우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포르노그래피를 찾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탐욕과 정반대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인정하고 그것에 만족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램버트 박사의 말처럼 “감사의 마음은 내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 주변에서 서성이는 나의 마음을 멈추고, 내게 이미 주어진 모든 것에 넘치도록 감사하는 마음입니다”(126p).
탐욕은 나를 불만족으로 이끌지만, 감사는 나를 만족으로 이끕니다. 탐욕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주목하게 하지만, 감사는 내가 누리고 있는 은혜를 주목하게 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탐욕의 반대입니다.
그래서 성적 탐욕을 이기기 위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감사”라는 것입니다.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죄를 이기기 위해서 그동안 부정적 방법(“안돼! 그만해!”)을 사용했다면, 감사는 죄를 이기기 위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방법입니다.
감사하는 법 배우기
포르노그래피와 싸우기 위해 우리가 무엇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1) 먼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아름답고 고귀한 삶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특별히 이 삶을 허락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삶의 아름다운 장면을 나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피로 사신 이 고귀한 삶의 일부를 감사가 아닌 음행으로 채운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심각한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에 감사합시다.
2) 하나님은 나에게 참으로 귀한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에 감사합시다.
사랑하는 부모, 나를 아끼는 친구들, 귀한 자녀들, 친척과 영적 동료들(성도), 그들과 함께 나눈 친밀하고 아름다운 우정, 사랑, 아름다운 추억들.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사람들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하나님이 내게 주신 배우자에게 감사합시다.
내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 나와 한 몸을 이룬 배우자를 기억해 보십시오. 나만 알고 있는 배우자의 특별한 성품과 아름다움, 미소, 몸짓과 말투, 배우자를 통해 내 삶에 들어온 귀한 만남들, 추억들, 배우자와 처음으로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날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모든 것에 감사하십시오.
4)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사역에 감사합시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교회의 지체로 부르셔서 그리스도의 몸을 하나로 세우게 하셨습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이 돌보고 있는 성도, 나를 통해 그분이 드러내고 계신 영광과 사랑과 은혜를 기억해 보십시오. 나로 인해 성도가 유익을 누릴 때 얼마나 기쁜지요. 교회의 지체로서 몸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이 되고 만족을 주는지요. 그것에 감사합시다.
5) 마지막으로 가장 근원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으로 만족합시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해 우리에게 확증하신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금지된 죄를 먹고 마시며 죄의 종으로 살다 멸망당할 우리 인생을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에 우리가 얼마나 감사해야 할까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친구로, 하늘의 상속자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어떻게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합시다.
우리가 감사할 제목을 떠올리고 하나하나 깊이 묵상할수록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서 탐욕의 자리가 사라지고 감사로 채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욕심이 죽고 그 자리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자라날 것입니다.
감사의 열매는 기쁨입니다
포르노그래피를 찾는 이들이 결국 얻고자 하는 것은 즐거움과 만족입니다. 기쁨입니다. 원하는 그것을 채우면 기쁨이 찾아올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정작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을 행하면, 마음엔 찰나의 만족과 기쁨이 주어지지만, 죄책감과 상실감이 더 크게 그리고 오래 지속됩니다. 탐욕은 약속한 기쁨을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더 큰 탐욕을 불러일으키고, 더 많은 죄책감을 줄 뿐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하고, 믿고 의지하던 성도와 멀어지게 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위협할 뿐입니다.
기쁨을 주는 것은 오히려 감사입니다. 깊은 사랑의 관계를 보장하는 것은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포르노그래피와 싸울 때 역시 감사가 필요합니다. 단지 죄악 된 습관을 제거하려는 단호한 결의와 노력으로는 이겨낼 힘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포르노그래피가 약속하는 거짓된 기쁨을 능가하는 훨씬 더 큰 기쁨과 만족이 있어야 우리가 이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감사가 필요합니다. 내게 하나님이 이미 허락하신 은혜,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은혜에 대한 감사, 내게 허락하신 배우자와 사람들, 사역에 대한 감사의 힘으로 싸구려 기쁨을 약속하는 포르노그래피를 넉넉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포르노그래피를 찾는 것은 내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에 대한 충분한 감사가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는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나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나에게 주신 배우자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허락하신 친구와 부모,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해 누리는 기쁨에 감사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그분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그분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죄가 우상숭배입니다. 그분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그분이 주신 것을 기뻐하지 못하는 죄가 탐욕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온전히 만족함으로 충분히 그분의 은혜를 누리며 그 안에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포르노그래피는 그 이름조차 부르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복음기도신문]
조정의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GTK 칼럼] 겸손을 통해 포르노를 이기는 은혜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제보 및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