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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무모한 은사주의 (2)

사진: Paul Bulai on unsplash

아그네즈 오즈만이 중국어로 그의 주장을 세상에 발표한 이후에 그가 죽는 날까지, 찰즈 파햄은 그가 고안한 신화를 영속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의 주장에 반대되는 수많은 증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어떤 단편적인 근거도 없이, 그는 방언의 은사가 기독교의 해외 선교에 혁명을 일으키고, 또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완수하는 교회의 노력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였다. 최초의 오순절 선교팀이 실패와 환멸과 좌절 속에 귀국한 이후에도, 파햄은 여전히 성공의 빛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방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여러 명의 선교사가 있는데, 그들은 원어민의 언어를 말하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지식적으로 사용할 수가 있다. 그 방언은 그들에게 은사가 되었다. 많은 불신자들이 그들의 언어로 분명히 말하는 것을 들음으로써 회심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들은 어느 것도 진실이 아니다.

찰즈 파햄에 의해 시작된 이 운동은 오늘날 거대한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수백 만의 사람들이 자신이 방언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사주의자들과 오순절파들은 어떤 언어라도 그들이 그 언어를 직접 배우기 전에는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는 물론이고 그들 자신들과도 마찬가지이다. 파햄이 그의 제자들이 방언으로 중국어를 말한다고 주장하였던 이래 한 세기 이상이 지났음에도, 오순절파의 방언의 은사는 문서로 입증될 수 있는 단 한 건의 경우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은사주의 자들의 방언은 반복적으로 기록되고 언어학자들에 의해서 분석되었지만, 그 결과 언어의 특징들은 한 가지도 발견되지 않았다. 현대의 은사주의자의 방언들은 무분별한 음절과 빠르게 연속적으로 말하거나 노래하는 소리들로서, 인식할 수 있는 의미를 전혀 전달하지 못한다.

이것은 성경적인 방언의 은사가 아니다. 오순절 때 사람들은 사도들이 말하는 군중 설교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행 2:6,11). 신약성경에서 묘사된 방언들은 언제나 통역이 가능한 것이었다(행 10:46; 19:6). 방언으로 전달된 어떠한 메시지의 의미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은사였다. 통역자 없이 방언으로 말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고전 14:27).

찰즈 파햄을 둘러싼 모든 논쟁들과 무수한 스캔들, 지켜지지 못한 약속들, 무엇보다도 선교 전략의 완전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오순절 운동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에는 더욱 그들의 행보에서 유익을 찾기 어려운데 말이다. 그러나 텍사스에서 파햄이 남색 죄로 체포될 때까지도, 그의 가르침은 누룩처럼 퍼지고 있었다.

파햄의 초창기 제자 중 한 사람인 윌리엄 제이 시머는, 텍사스 휴스턴에서 파햄의 지도 하에 강의하고 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성하(일부 종교인에 대한 존칭)설교가였다. 1906년에, 시머는 캘리포니아에서 한 모임을 인도하도록 초청을 받았는데, 그가 로스엔젤레스 다운 타운의 아주사 스트리트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한 건물에서 설교를 하는 동안에, 그는 파햄으로부터 들었던 독특한 교리에 대하여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예를 들면, 성령 세례의 오직 유일한 증거는 방언으로 말하는 은사라고 가르치고 있었다. 수 주일 이내에, 아주사 스트리트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하는 현상이 일어났으며, 거기에서부터 오순절 운동의 명성이 퍼져 나갔다. 오순절주의는 마침내 의미있는 발판을 마련하였으며, 그것은 아주사 스트리트에서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사도시대로 돌아가서, 초대교회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불경건한 열정에 휩싸여서 – “마음이 타락하고  진리를 박탈 당하며, 불경건함이 유익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그것은 ‘믿음의 말’ 이단 교리에 넘어간 사람들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다.)” – 초자연적인 은사를 주장하는 거짓교사들에 의하여, 항상 고통을 겪었다(딤전 6:5).

그러나 본질적으로 이 은사주의 운동은 독특하게도 미국적인 스타일에 맞는 것이 사실이다. 그 기원은 미국의 중심부에 있으며, 바로 그 시작에서부터 미국의 변방에서 번창했던 종교적 광신주의의 독특한 형태의 열매였다. 훈련받지 못하고, 이해할 수 없는 자칭 선지자들과 떠돌이 순회 설교자들이 넘쳐나 미신과 왜곡된 교리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되었다.

은사주의 운동은 주로 모금에 전념할 목적으로, 여러 미디어 네트워크를 사용한 홍보 캠페인에 의하여 미국으로부터 전 세계의 다른 나라들로 수출되었다. 많은 양의 기금이 다양한 경로로 마련되었으며, 그것은 은사주의 텔레비전 선교사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가능하게 하였다. 은사주의 종교의 이러한 문화가 무절제한 생활방식을 과시하는 상류사회의 협잡꾼들을 길러내게 되고, 또한 누구든지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많은 돈을 기부하게 되면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부유하게 만드신다는 거짓된 약속으로 그들을 유혹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값비싼 욕구를 불러 일으키게 하였다.

은사주의 텔레비전선교사단체가 말하는 번영이라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또한 그들이 행한 것처럼 꾸며대는 기적들과, 시청자들로 하여금 믿도록 유도하는 그들의 거룩함(그들이 도달했다고 말하는) 역시 마찬가지이다. 참으로, 천박함과 허구는 그 시작에서부터 오순절주의와 은사주의자들에게는 끊임없이 붙어다니는 죄악이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우리가 이미 언급했듯이, 현대 은사주의자의 방언은 사도행전 2장에서 묘사된 오순절 방언의 은사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은사주의의 교리는 성경적인 분별력은 제쳐두고, 성경의 가르침에서는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영적인 은사’를 포용하고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러한 운동은 사기와 거짓교사와, 그리고 협잡꾼들의 완벽한 사냥터가 되는 것이다. 참으로 오순절-은사주의자의 역사는 교리적으로 부패하고 도덕적으로 퇴폐함을 드러낸 높은 비율의 지도자와 유명인사로 어지럽혀져있다.

요약하면, 은사주의의 가르침은, 교묘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성경의 권위와 충족을 깎아 내리는 의도적인 속임수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78년에 출판된 은사주의자들이라고 명명된 비교적 얇은 두께의 책이었다. 10년 쯤 지난 이후에, 소위 “제 3의 물결”이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은사주의자와 복음주의자들은 모두가 표적과 기사, 성경 외의 예언, 그리고  “거룩한 웃음”과 같은 이상한 현상들에 흥미를 끌게 하고 있다. 그 시기에 나는 여러 편의  챕터를 추가로 집필함으로써, 책의 두께를 두배 이상 늘리게 되었다. 확장된 저서는 “무질서한 은사주의”(한국어 판은 부흥과 개혁사에서 출판함)라는 제목으로 명칭을 바꾸어서 1992년에 출간되었다.

이제 제 2판이 출간된 이후 20년 이상이 지났다. 비록 그 책이 다루었던 추세는 지금보다는 1990년대 초에 더 유행하였지만, 그 책은 단 한 번도 절판되지 않았고 아직도 많이 판매되고 있다.

때로는 사람들이 그 때 이후로 나의 입장이 바뀌었는지 질문하곤 한다. 그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이다. 성경은 물론 바뀌지 않았고, 은사주의자의 문제에 대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대한 나의 이해 또한, 실질적으로 변함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충족에 대한 나의 헌신에도 변함이 없다. 만약에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확신이 더욱 분명해졌고, 또한 지금의 내가 1970년대에 이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기 시작한 때보다 더욱 확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또한 복음주의의 대세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은사주의의 교리를 포용하는 것이, 혹은 은사주의 동료들과 불편한 휴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은사주의 운동이 더 나은 쪽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된다. 오늘날 대표적인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에서 은사주의의 문제에 관하여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나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인다.

나는 그것이 심각한 실수이며, 은사주의의 믿음이나 행위를 수용하는 쪽으로 표류하는 것은 복음주의 운동에 있어서 타락과 배교의 전조라고 확신한다.

이 책에서 비판을 받은 사람들은 (존 윔버, 케네스 해긴, 그리고 오럴 로버츠 등을 포함하여) 이미 생존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가르친 운동과 교리는 건재하고 있고, 아직도 많은 혼돈을 일으키고 있다. 그들의 영향에 의한 누룩은 아직도 퍼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가르침에 직면한 기독교인들은 쉽게 혼란을 일으키고, 일반적인 은사주의의 주장에 대한 비평과 성경적인 분석을 찾는 사람들은 그러한 자료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번의 은사주의의 혼돈 신판이 중국어로 출판됨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의 기도는, 이 책이 이에 대한 토론을 이끌고 신자들의 분별력을 촉진하며, 온 세상의 많은 신자들로 하여금 카리스마파 운동의 촉수가 어느 곳으로 가든지간에 그것으로 야기되는 기만과 혼란의 쓰나미에 대항할 수 있도록 준비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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