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이아침 칼럼] 하늘에 뿌리를 두고 하늘의 꽃을 피우라

ⓒ 안호성

종순이(종들의 순종) 모임에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본문 말씀으로 여러 교회가 같은 설교를 합니다. 설교한 내용을 교우들이 다시 나눕니다.

일주일에 열 몇 번씩 설교하던 것을 다 없애고 같은 본문 말씀으로 설교하고 그 말씀을 다시 나누는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사역자들과 나눴습니다. 한 목사님이 SNS에 글을 올렸습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그토록 의지하려고 했는데, 그 이유가 교우와의 관계, 교우들의 어려움과 문제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너무 놀랐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자녀를 놓고 기도할 때 똑같이 대입해봐야 합니다. 문제를 개선하려고 목소리 높여 하나님 불렀던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채워지는 것을 보고 나누셔야 합니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마 8:19~22)

백부장의 믿음이 천국을 소유하게 합니다. 예수를 소유한 사람은 예수를 드러냅니다. 책임감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예수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주권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소원해야 합니다.

왜 예수님을 에워쌌습니까? 잘 살아보기 위해, 이 땅에서 성공하기 위해, 예수님의 능력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시선은 주님이 아니라 이 땅에 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서는 그것을 피해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신 것입니다.

건너편으로 갔을 때 한 서기관이 등장합니다. 이 서기관은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서기관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베드로도 똑같이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어디든 가겠다고 말했지만 십자가는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실패의 자리라는 것입니다.

어디든 따르겠다고 하면서 십자가는 실패의 자리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 시선이 가 있는 것입니다. 따르는 이유가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의 마음도 주님께서 꿰뚫어 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종교가 이끌어가는 국가였습니다. 서기관은 상류층이자 사회 지도층입니다. 그런데 서기관이 왜 주님을 따라왔을까요? 유대 전통을 보면 서기관들에게는 욕망이 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그들의 꿈입니다. 가말리엘과 같은 좋은 스승의 문하생이 되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행색이 초라한 젊은 청년 예수의 이야기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초자연적인 역사도 일어나게 합니다. 아픈 사람이 낫고 죽은 사람도 살아나고, 바람도 멈추고 자연도 순종합니다. 말씀도 위엄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자신을 문하생으로 받아주면 서기관의 인생은 꽃피웁니다.

제가 목사 초년생일 때 은사를 구하려고 30일도 기도했습니다. 은사를 구한 이유는 목회를 폼나게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자녀가 잘되라고 기도하는 이유도 여러분 자신이 폼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해방되었을 때 예수님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적 영광을 마음에 둔 서기관을 꿰뚫어 보시고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쉴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최광 선교사님 표현으로는 “나는 노숙자”라는 것입니다.

머리를 둔다는 것은 ‘쉰다, 안식한다, 풍요롭게 쉰다’는 뜻입니다. 저는 잠잘 때 감사가 절로 됩니다. 머리 둘 곳이 없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쉴 곳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상에 대한 기대치를 갖고서는 산상수훈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서기관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나병환자와 백부장을 대비해서 나온 본문입니다. 너 한 사람을 주께서 지배하고 통치하신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통치하신다는 것이 말씀입니다. 그 믿음이 있기 전까지는 서기관의 모습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돌이킬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제자가 나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마 8:21~22)

상이 난 것은 아니고, 아버지가 운명하실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충분하게 보살피고 잘 마무리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어른들 잘 모셔야 합니다. 연세 드시면 믿음도 떨어집니다.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먼저’ 입니다. 뒤에 나오는 죽은 자들은 죽은 사람이 맞지만 앞에 나온 죽은 자들은 목숨이 끊어진 사람이 아닙니다.

앞에 나온 죽은 자들은 서기관처럼 하나님을 몰라보는 사람들입니다. 방향이 땅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것은 21절 ‘먼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수 생명이 들어온 사람은 제1의 관계가 하나님입니다. 무엇이 먼저 되어야 하는지 압니다.

책임이 제1이 아니라, 삶의 이런저런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제1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죽은 자든 아니든 하나님의 통치력이 미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꽃피우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뿌리를 두고 하늘의 꽃을 피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우들이 십자가 생활화가 안 되니까, 항상 주님을 찾는데 가끔 보면 안쓰러울 정도로 주님을 찾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듣고 보면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다 문제를 부른 것이었습니다. 마음에 들어와 있는 문제를 회개한다고 하는데, 그 회개 자체도 문제를 부르고 있는 회개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에는 정말 주님이 계셔야 한다고 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음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려고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는 3차원에 삽니다. 하나님은 차원이 다르십니다. 4차원이십니다. 4차원에 사시는 하나님이 3차원에 사는 우리에게 계시하는 공간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은 시간을 초월합니다.

3차원은 시공간에 구속받지만, 과거의 일도 우리 마음에는 있습니다. 자녀를 생각하면 그 자녀는 우리 마음에 있습니다. 다른 공간에 있지만 마음에는 들어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3차원을 사는 우리에게 마음을 만드신 이유는 그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는 주님이 계셔야 합니다. 예수님과 연합함으로 마음에 주님 들어올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치하듯 자녀를 통치한다는 믿음이 들어올 때, 주님이 하시는 것이 믿겨집니다. 그것보다 더 큰 안심은 없습니다. 건강이든 삶의 문제든! 주님께서 생각을 주시면 우리는 그 생각을 따라가면 됩니다.

에필로그

무관심과 방치. 그것과 믿음은 다릅니다. 믿음을 무관심과 방치로 오해하고 그렇게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믿음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무관심하고 방치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은 그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방치하는 느낌보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더 큰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가 호흡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날마다 일어나야 합니다. 방치하면 안 됩니다. 자녀를 보면 애틋해집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딸이, 내 아들이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근심을 십자가 죽음에 넘겼으니 주님이 내 안에 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하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그 믿음이 옵니다. 그 순간이 오면 주님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용을 써도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40일 금식기도해도 안 됩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에 와 계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시간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매체에 시간 빼앗기는 것, 죄악입니다. 그럼 안 됩니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 주님 앞에 내 마음을 모으고, 십자가에서 죽는 사람이 되어서, 주님이 우리 안에 채워져서, 주님의 뜻을 따라가야 삽니다. 그럼 바빠집니다. 그 의미가 깊이 스며들어 한 걸음 한 걸음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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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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