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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칼럼] 열매가 아닌 예수를 바라보라

▲ 사진 : JOHN TOWNER on Unsplash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마 8: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통해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고 고치셨습니다.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주님은 산 위에서 설교 사역을 하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산상수훈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5~7장이 그 말씀입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셔서 주신 말씀이 8장입니다.

산상수훈을 보면, 우리가 그 말씀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 말씀을 따를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이 말씀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합니다. 산상수훈 말씀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를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열 수 있는 열쇠가 8장에 나와 있습니다. 네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나병환자, 백부장, 서기관, 그리고 또 다른 제자가 등장합니다. 네 인물을 통해 산상수훈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열쇠를 말씀하십니다. 5~7장의 주제를 짧게 말하면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천국을 나타내며 산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천국이 있다는 티를 내며 삽니다. 실제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7장을 보면 우리 속에 이것이 실제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5장을 보면, 복이 있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시고,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십니다. 가정에서도 소금과 빛이 안 되는데 세상에서 될 수 있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또 화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화내면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지금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화가 안 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화를 내면 천국 못 간다고 하십니다.

지난 수요기도회에 오신 선교사님께서 지나가며 말씀하신 것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선교사님은 ‘우리 교회가 이 설교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설교를 시작하니 교회 성도들이 이 말씀을 평범하게 듣는다고 놀라셨습니다. 아무리 센 설교라 하더라도 성경 자체만큼 과격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이 가장 극단적입니다. 성경이 가장 과격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센 설교를 듣고도 변하지 않는 우리를 보면 얼마나 또 놀랍습니까? 성경보다 센 설교는 없습니다. 산상수훈처럼 살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간음하면 죽는다고 하십니다. 육의 간음뿐 아니라 영의 간음도 말씀하십니다. 속는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말씀하시며 맹세하지 말고,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시고, 원수를 사랑하고,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기도의 방법도 알려주십니다. 또 이 땅에서 무언가 이루려고 보물을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하십니다. 당혹스러운 내용입니다.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7장을 보면 비판하지 말고,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비판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비판이 안 되는 분 계십니까? 판단은 그냥 들어옵니다.

선교단체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 선교단체의 리더들에게 이런 말씀을 드린 적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그냥 판단되는 것 아니냐고, 기쁨이 넘쳐나고 사랑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냥 판단이 되는 것이 우리가 아니냐고 말씀드렸더니 박장대소하며 동의했습니다. 우리 삶이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실제 되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삽니다. 열매를 보면 그들을 안다고 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1~23)

귀신은 우리가 바른 길로 가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헷갈리게 하고 왜곡하게 합니다. 귀신을 쫓아낸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따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선지자 노릇은 말씀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있기 때문에 한 것입니다. 말씀을 나누는 것도 작은 의미로 보면 선지자 노릇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내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5)

분별의 영이 열리기를 축복합니다. 사실은 쉽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냥 구별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알기 위해서는 속을 알아야 합니다. 속이 보여야 합니다. 제 속이 보이십니까? 속을 보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왜 믿음의 사람이 그 쉬운 것을 모를까요? 열매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열매 중심의 신앙은 반드시 타락합니다. 열매는 그냥 맺히는 것입니다.

방향성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열매를 바라보고 사는가, 예수를 바라보고 사는가! 예수를 보고 살면 예수님께서 때에 맞게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러나 열매 중심이 되면 반드시 어긋나는 국면을 만납니다. 그때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파국이 됩니다. 개인으로도, 가정으로도, 공동체로도, 삶의 자리에서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사도행전 18장을 통해 아볼로를 봤습니다. 큰아버지와 같이 품이 넓은 인물이었지만 실제 거듭남이 없었습니다. 예수에 관해 설교는 했지만, 실제 거듭남은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연합하는 것을 그에게 가르쳤을 때, 그는 믿음으로 은혜를 끼쳤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습니다. 기타 다른 것으로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돈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자고, 건강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속에 다른 것이 있으면 그것은 드러납니다. 영적인 분별은 그래서 너무 쉽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고, 감동하게 하고, 또 마음이 혹하게 할 정도로 마음에 무엇인가가 쑥 들어오게 한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입니다.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사는가! 출세상! 예수님의 방향은 분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 하나님께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 방향은 분명합니다. 그 예수님을 따라갈 때 출세상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이것이 채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마음에 담겨져 있습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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