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인생을 관계 중심으로 디자인하셨으며 그 관계 간에는 각기 다른 역할들을 주셨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관계보다 개성을 더욱 강조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더욱 잘 섬길 수 있을지를 찾기보다 자기 만족을 추구하며 자신의 권리를 더 중요시하면서 살아간다. 교회, 가족, 그리고 공동체에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이들 기관과 모든 인간 관계에 관련된 하나님의 디자인을 무시하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단지 남자와 역할이 다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사회에서 힘과 영향력은 오로지 리더가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인도하는 것이 추종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룬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인도자가 아닌 사람의 역할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게다가 인도자는 항상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에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약 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경험은 사회의 고위층이 되어 모든 것들을 주관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은 여자들에게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자신들의 역할을 버리고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부추긴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생각 때문에 가장 고통 당하는 사람들은 여자들이다. 결국 이러한 결과로 사회는 여자들이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역할에 최선을 다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얻지 못하게 되므로 고통을 당한다.
디모데전서 2:15는 여자들이 그들의 장점을 추구함으로서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다소 부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14절은 여자들이 죄를 지은 것이 대해, 15절은 여자들이 구원 받은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구원을 얻으리라’는 헬라어 ‘ sōzō’ 인데 신약 성경에 주로 구원을 말할 때 사용된 단어이다. 물론 바울은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가르침이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것이라는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바울은 비록 여자들이 타락을 촉발시켰지만 여자는 해산을 통해서 그 오명을 벗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여자는 인류를 죄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여자는 자손을 낳으므로 인류에게 덕을 끼친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그들의 자손들에게 영향을 끼쳐 인류를 경건하게 인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한 단계 저급한 존재가 아니라 경건한 자녀를 길러야 하는 아주 중요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의 성품은 자녀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어머니들은 일반적으로 아버지보다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기 때문에 자녀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여자들은 그들의 자녀를 경건하게 길러야 하는 사명을 가졌기 때문에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딤전 2:15) 거하여야 한다. 경건한 아들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머니 자신이 경건해야 한다.
물론 하나님이 모든 여인들이 다 어머니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여자들에게는 독신의 은사를 주셨기 때문에 그런 여자들이 결혼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고전 7). 또 어떤 여자들에게는 자녀를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어머니가 되는 것은 여자들이 인류에게 이바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공헌이다. 해산의 고통은 원죄로 인한 벌이지만 여자들이 아이를 낳는 것은 그 죄의 수치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준다.
여자는 또한 그들이 가진 영적인 은사를 사용하므로 교회에 영향을 끼친다. 성경은 구원의 순간에 각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원할하게 기능을 다 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상호 보완적인 영적인 은사를 받는다고 가르고 있다.(롬 12:3-4, 고전 12:4-30, 엡 4:1-13). 은사는 두가지 영역으로 주어지는데 말하는 은사와 섬기는 은사이다(벧전 4:10-11).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가르치는 것, 지혜(실제적인 조언을 해주는 것), 지식(학자적인 정보를 나누는것)’ 이 세 가지 것들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 뛰어난 사람이다. 책망, 리더십, 섬김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다음의 것들 중 하나 또는 그 이상에 뛰어난 사람이다. 자비, 강한 믿음(특히 기도에서 드러난다), 구제(다름 사람들의 필요는 채우는 것), 진리와 오류의 분별, 돕는 일(필수적인 일들은 한 후에), 운영하거나 조직하는 것.
성경은 교회의 지도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영적인 은사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교회 지도부에 속한 남자들이 맡아야 할 중요한 일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말하는 은사건 섬기는 은사건 그들의 영적 은사들을 진실 되게 사용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도록 격려하고 또 그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여자들에게는 리더십의 능력과 가르치는 능력을 은사로 주셨다. 그런 여자들은 교회 전체 예배가 아닌 다른 환경에서 그런 은사들을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매들의 성경공부 모임, 여자들의 교제그룹, 기도모임 등이다. 여자들이 하나님의 디자인에 맞게 가르치는 은사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는 수도 없이 많다.
디모데전서 2장의 말씀은 여자들의 지성을 무시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어떻게 여자들이 그들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제적인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 기술의 하나가 가르치는 것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바울은 여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역할을 받아들이도록 가르치고 있다. 그들은 교회에서 리더가 되려고 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남자들과 동일한 역할을 맡을 수 없어서 자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없다고 느끼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은 아주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사회에 주는 가장 큰 영향은 경건한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다. 만약 여자들이 경건하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그 여자들에게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하게 해 주신다면(엡 6:4) 그 여자들은 새 세대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남자들에게 주신 것은 외적으로 분명하게 눈에 드러나 보이는 리더십이지만, 여자들도 간접적이지만 남자들만큼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완벽한 지혜로 디자인하셨다. 남자들은 사랑의 리더십이 주어졌지만, 그들은 혼자서 리더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들을 디자인 하셔서 그 필요를 채워 주셨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다 뛰어난 리더가 되지는 못할 것이고, 여자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리더할 것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역할 안에서 함께 일할 때 그들은 하나가 되어 주님이 창조하시고 그와 그녀에게 주신 일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녀를 디자인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창조의 아름다움과 질서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질서를 지켜 하나님의 나를 위해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빌 2:15)나타나야 할 것이다. [복음기도신문]
(본문 번역의 일부는 ‘하나님의 완벽한 디자인’, (베드로서원)을 참조하였습니다.)
원문: http://www.gty.org/Blog/B130906/the-tremendous-contribution-of-women
존 맥아더(John MacArthur)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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