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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오스만제국은 제국 안에서 살던 기독교인들을 어떻게 대했나?

▲18세기 오스만제국 당시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사는 한 아르메니안 기독교인 가족사진. 출처: Faruk Sevim

밖에서 보는 이슬람(88)

비잔틴제국을 정복한 오스만의 술탄 메메트 2세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관용적이었다.

비잔틴제국을 향한 셀주크와 오스만제국의 활발한 진격으로 이미 아나톨리아 지역 대부분을 점령하고 콘스탄티노플만 남긴 상태에서 오스만의 메메트 2세가 그 땅에서 짐미(딤미) 신분으로 살아가는 아나톨리아 기독교인들(갈라디아인)에게 약조한 아래 내용을 보면, 당시 그가 그 땅의 기독교인들에 관한 생각이 얼마나 관용적이었는지를 충분하게 짐작할 수 있다.

“예전과 같이 예배와 기도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으며, 기독교인들에게 속한 교회나 부속 건물을 그대로 보존시킬 것이며, 소유한 재산과 땅, 그리고, 남녀 노예들도 그대로 유지될 것이며, 바다와 육지 등 모든 곳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으며, 누구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며, 내어야 할 세금은 연간으로 내되, 이에 대한 모든 안전을 보장받을 것이며, 교회를 절대로 이슬람사원으로 바꾸지 않을 것을 보장한다. 그러나, 새롭게 교회를 건축하는 일, 교회 종탑에서 종을 울리는 일, 무슬림을 개종시켜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일은 금한다.”

이뿐만 아니라, 메메트 2세의 기독교인들을 향한 관용은 여러 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콘스탄티노플 정복 전에 이미 만나기도 하고, 서신 교환을 통해서 친분을 맺어왔던 비잔틴의 아르메니아정교 수장(Patriarch of Constantinople from 1454~1464) 겐나디우스(Gennadius Scholarius, 1400~1473)를 위해,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에디르네 출신의 한 상인으로부터 몸값을 내고 구해주었다는 기록이라든지, 콘스탄티노플 정복 후 첫날 당시 오스만제국의 전리품이었던 소피아(Hagia Sophia) 교회에서 그를 다시 만나서 그에게 오스만제국의 법 테두리 안에서 비잔틴 민족을 계속해서 안전하게 지켜 줄 것과 이후에도 기독교인으로서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가도록 보장해 주기도 하였다.

오스만의 술탄 메메트 2세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관용은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그의 기독교인들을 향한 관용은 그가 가지고 있던 성품에도 그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의 관용적 성품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의 어머니가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어머니인 마라 데스피나(Mara Despina, 후에 오스만 역사에서 ‘마라 하툰 술탄’으로 부름)는 세르비아의 공주였으며, 원래의 이름은 마라 브랜코비치(Mara Brankoviç, 1418~1487)로 메메트 2세의 아버지 무라트 2세에게 당시 14세 나이에 시집와서 후에 메메트 2세를 임신한다. 이렇듯, 기독교인 어머니로부터 어린 시절을 보냈던 술탄 메메트 2세가 이슬람의 종주국을 자처하면서 무슬림 정체성을 강하게 나타냈던 오스만 술탄이었지만, 당시 비잔틴제국 안에 살아가던 기독교인들에게 관용을 베푼 것은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이 외에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는데, 아래와 같이 구전되어 오는 한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기독교인들에 대한 약속과 신의를 지키려는 오스만 술탄의 너그러움을 엿볼 수도 있다.

콘스탄티노플 정복을 위해 최후의 일전을 얼마 안 남기고 있었던 술탄 메메트 2세는 어느 날 비잔틴의 아르메니아 정교의 수장인 겐나디우스를 비밀리에 자기 막사로 초청해서 비잔틴 정복을 앞둔 자기를 위해 축복 기도를 요청한다. 그리고, 메메트 2세는 이 축복 기도의 대가로 아나톨리아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아르메니아 기독교인의 안전과 신앙생활 보장을 약속해 준다. 겐나디우스는 이에 응하게 되었으며, 그의 축복 기도 덕분인지 오스만은 난공불락의 콘스탄티노플 성 함락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 너그러운 약속은 그로부터 후세대의 다른 술탄으로까지 유언으로 이어져 갔다. 하지만, 오스만의 서른네 번째 술탄 압둘 하미드 2세(재위 기간:1876~1909)에 이르러 이 약속은 당시 오스만이 처해있던 서구열강 특히, 러시아와의 외교 갈등 관계 속에서 깨져버렸으며, 이때 아나톨리아 땅에서 살아가던 백만이 넘는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당시 오스만 정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 양국 간 첨예한 국제 문제가 되어서 지금까지 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오스만제국의 정책

술탄 메메트 2세부터 시작된 ‘밀레트(민족이라는 뜻)’ 제도는 오스만제국 말기 개혁기로 널리 알려진 ‘탄지마트(Tanzimat)’ 시기(1839~1876)에 이르기까지 이슬람법 안에서 모든 기독교인을 짐미(딤미)로 분류하는 정책으로 계속되었다.

앞에서도 간단히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런 상황에서 오스만제국 안의 모든 기독교인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으며, 기독교인 밀레트 안에서 자율적으로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이에 따라서, 밀레트 안에서 고유 언어로의 예배, 교육, 결혼, 이혼, 유산과 재산의 상속 등에서도 대체로 자유로웠다. 게다가, 기독교 사제 계층과 수도원에도 다양한 특권이 허락되었다.

그렇지만, 조세와 세금의 납부 의무를 지켜야 했으며, 교회 건물의 건축과 수리, 종탑의 종을 치는 행위, 커다란 소리로 예배를 드리는 행위, 법정에서 무슬림을 상대로 증언, 이슬람 모스크나 기도처 등에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일, 집 가옥의 높이를 높이는 일, 복장, 말을 타는 일, 무기를 소지하는 행위 등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제약과 규제들은 오스만의 모든 시기 가운데 일관적이고, 전혀 융통성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었으며,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 강하게 혹은 약하게 지켜져 왔다고 보아야 한다.

기독교인들에 관한 이러한 제약 사항들은 오스만의 말기 술탄 압둘 메지드(재위:1839~1861) 시기에 공포된 개혁칙령(1856)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교회, 수도원의 새로운 건축이나 보수공사 시 교회 건물을 확장하거나 증축하는 일은 철저하게 금했다. 또한, 대도시가 아닌 작은 시골 마을의 기독교 기도처의 증축과 보수 같은 일들에조차, 술탄의 재가까지 필요했다는 기록을 보면, 기독교인들의 존재는 있는 그대로 인정했지만, 기독교인들의 세력 확장이나 확산에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오스만제국 내 기독교인들을 향한 관용 정책은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으며, 부분적이며, 제한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예민하게 반응하며 금지되었던 오스만제국 안에서의 기독교인들의 교회 건축과 확장 건에 대해서는 18세기 이후 서구 열강들의 외교적 압박으로 점차 이를 허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서, 오스만 정부는 밀레트 제도에 의한 기독교인들에 대한 관용 정책에 한계를 자각하기 시작했지만, 이를 개혁하거나 바로 잡으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보더라도 이미 이제 오스만은 서구 열강들의 간섭과 개입으로 더욱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 가게 되었다.(계속)

[복음기도신문]

김종일 | 한국외대, 장신대 신대원, 국립 이스탄불대 역사학과 석사 및 박사, 前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現 터키어권선교회 및 한국종족선교회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 회장, 前 ‘전방개척선교(KJFM)’ 저널 편집인, 現 ‘선교타임즈’ 저널 편집위원, 아신대(ACTS) 교수(중동연구원). 저서: ‘밖에서 본 이슬람,(1)무슬림 이해하기’ (2022, 라비사북스). ‘벌거벗은세계사(경제편)’(2023, 교보문고), ‘밖에서 본 이슬람,(2)이슬람 이해하기’ (2023, 라비사북스, 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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