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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 칼럼]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간다는 것은?

사진: Jessica Delp on Unsplash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4~5)

고린도후서는 사도 바울이 사도권에 대한 공격을 받았을 때 쓴 서신서입니다. 헌금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어려워진 예루살렘 교회를 돕자는 내용도 있습니다. 7장까지는 사도 바울의 사도권을 변호하면서 영적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희를 대면하면 유순하고 떠나 있으면 너희에 대하여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 (고후 10:1)

고린도교회가 사도 바울의 사도 직분을 공격했습니다. 논리학에서는 논리가 부족하면, 메신저를 공격하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인품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를 육신에 따라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에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고후 10:2)

사도가 가짜라고 말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온유한데, 떠나니까 담대한 척하면서 편지질이나 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에 따라 사는 사람이라고 바울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독특한 언어 가운데 하나가 육신을 따라가는가 영을 따라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폼 잡고 부드럽고 온유한 척하는데 뒤에서는 무언가 잇속을 챙기고 무언가 세우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공격을 당한 것입니다. 온유한 척하는데 속에 야망 있다, 자기 욕구를 채우려고 한다! 그런 말을 듣고 사도 바울이 영적 전쟁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생각은 나로부터 출발하면 안 됩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분파가 많았습니다. 그리스도파, 게바 베드로파, 아볼로파, 바울파! 네 개의 파가 있었습니다. ‘예수 믿어야지, 왜 다른 걸 믿어! 그리스도만 따라가면 되지! 교회가 그렇게 원리원칙대로 하느냐, 아볼로처럼 인품이 있어야지! 교회가 사랑이 있어야지!’ 다 명분이 있었습니다.

또 바울파는 ‘바울처럼 선교적 사명이 있어야지! 말씀이 흘러가야지! 자기들끼리만 그렇게 하면 되나?’ 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을 따라가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가고 있다고 변호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4~5)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가면 모든 이론이 무너집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야다’ ‘기노스코’와 같은 ‘부부 사이의 친밀함’처럼 실제가 되지 못하면 안 됩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신경질을 낼 만한 상황에서 화를 낸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온데간데 없어진 것입니다. 기도하니까 눈물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우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용사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지 못한 나를 주님 앞에 올려드리고 주님께 주권을 내려놓은 장수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은혜 주셨군요. 이 싸움에 지지 않고, 그 옳음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 받아 내 마음이 녹아져 내리는군요! 주님 영광 받으시옵소서.”

육신을 따라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가치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것이 좋다, 하는 그 가치가 우리 마음에 담겨 있습니다. 만일 아내의 어떤 행동이 거슬릴 때가 있다면 그것이 마음에 들어옵니다. 미우면 미운 것이 마음에 들어오고, 좋으면 좋은 그것이 우리 마음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마음에 들어온 대로 액션을 취합니다. 눈빛으로 반응합니다.

마음에 담아 놓은 것이 세상의 것입니다. 입으로 선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마음에는 얼마든지 다른 것이 있습니다. 예수를 팔려는 생각! 가룟 유다의 마음에는 예수님을 따라갔던 모든 순간에, 예수는 우리 민족을 해방시킬 수 있어, 하늘의 지혜도 있어, 새로운 나라가 펼쳐질 때 나는 예수를 통해 한몫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집니다. 싹수가 안 보입니다. 세상 끝날이 왔다고 하고, 아버지에게 간다고 하고, 십자가에서 죽는다고 하고, 최후의 만찬에서는 정말 예수가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가룟 유다의 꿈이 사라진 것입니다. 처참한 환경을 극복할 줄 알았더니 극복할 길이 안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팔아버립니다. 그 욕구가 우리에게 없다고요?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는 이미 다른 것이 담겨 있습니다. 실상은 예수를 제쳐놓고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스스로 힘을 키우고 조직하고 머리 쓰는 우리들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의지로 바뀝니까? 안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입니다. 휴대폰 하나 못 끊잖아요. 드라마 하나 못 끊잖아요. 그 중독의 성향들! 진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을 원하는 마음이 있는가?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과 긍휼함으로 넉넉하게 이겨가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깊이 일어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에필로그

영적 전쟁은 생각 전쟁입니다. 생각, 못 이깁니다. 바뀌지 않습니다. 넣어주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근거가 있습니다. 사탄은 밑그림을 보고 넣어줍니다. 가장 강력한 한 가지, 소원하셔야 합니다.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앞뒤 가리면 안 됩니다. 부담이 되겠지만 고도의 집중력도 필요합니다. 부담이 되겠지만 정말 소원하는 마음 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것 없으면 그냥 속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리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올라왔다가도 다시 내려놓습니다. 저에게 책을 세 권 뽑으라면 그 중 하나가 리처드 백스터의 《기독교 생활 지침》이라는 책을 꼽을 것입니다. 3천 쪽 정도 분량인데 3천 쪽 모두가 은혜가 됩니다.

교리 공부하면 성도들은 밝아집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판단이 그냥 됩니다.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왜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걸 한다면 반대합니다. 그 책을 읽고 공부하면 밝아지고 선명해집니다. 시원해지고 은혜가 임합니다. 그런데 시원하고 은혜가 임한 것 곱하기 두 배로 판단합니다.

전문직에 있는 친구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저에게 오면 바로 하지 말라고, 회개하라고 이야기해줍니다. 신학은 그렇게 하는 것 아니라고. 하나님 더 알아가는 좋은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공부하면 판단이 그냥 됩니다. 다 죽습니다.

무엇보다도 영적 전쟁에 능한 자가 되어,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성경 공부도 언제 해야 하는지 때가 있고 위치가 있습니다. 성경을 분석하고, 개요를 배우고, 조직신학, 구약학, 신약학, 교회사 공부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누가 배워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저는 그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이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주님 계셔서 주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니까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의 마음 볼 수 있는, 그 넉넉한 인생이 펼쳐질 수 있도록 서로 어깨동무하고 긍휼히 여기고 함께 어우러져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하늘의 아름다움이 이곳에 임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lee ss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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