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에 유행하던 퀼트라는 수예 기법이 있다. 여인들이 옷을 만들고 남은 천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그 위에 실로 인상적인 말들을 새겨 넣는 수공예이다. 당시 미국의 여인들은 이런 퀼트 공예품을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서부로 먼 길을 떠났다. 그런데 종종 그 퀼트에 성경 구절들을 새겨 선물하기도 하였다. 이어 붙인 천 조각에 새겨 넣은 성경 구절은 떠나간 이의 삶에 새겨진 은혜를 추억하게 하고 험한 길에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는 위로를 심어 주었다.
반복되지 않고 일회적이어서 머물러 있지 않은 시간을 우리 인간들도 퀼트처럼 이어 붙여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그 형형색색 삶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다 보면 누군가에게 보여 줄 만한 소품 하나가 나올까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 내 삶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들을 하나둘 이어 붙여 보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특별하지 않아 너무 특별한, 반박할 수 없는 라이프 퀼트 소품 하나가 나왔다. 인간의 삶은 지으신 이의 디자인을 버리고 욕심의 천 조각을 끊임없이 이어 붙여가는 탐욕의 퀼트라고… 그리고 주님의 디자인은 그 탐욕의 반대편 그림이라고….
몇 년 전 어느 날, 일하다 너무 피곤해 중간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 극심한 피곤 증세는 몇 주 동안 이어졌고 하루는 거울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간 없었던 주름과 피부의 노화가 그 몇 주 사이에 얼굴에 내려앉아 버렸다. 왜 그런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혈압, 당뇨, 혈중 콜레스테롤이 평균보다 조금 높았다. 하루 세끼를 잡곡으로 꼬박 챙겨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 온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 생각이 들어 더 자세히 원인을 찾아 나갔다.
내가 얼마나 탐욕스럽게 먹고살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간 하루 밥 두세 공기 거기에 과일, 과자까지 합쳐 내 나이 필요 탄수화물 기준치 2배 이상을 훨씬 초과해 섭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0년 한국 보건복지부와 한국 영양학회에서 발표한 ‘2020년 한국인 영양 섭취 기준 자료’에 의하면 한국 성인의 하루 탄수화물 일일 평균 섭취량은 307.8그램으로 하루 기본 탄수화물 100그램의 3배를 초과하는 수치라고 한다. 그래서 식사를 하루 두 끼니로 줄이고 탄수화물의 양도 줄이며 조금씩 건강이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당과, 혈압, 고지혈증을 개선할 수 있는 자연 치유법을 찾다가 식초의 효능을 알고 매일 식초를 물에 타서 섭취하기 시작했다. 소화가 촉진되고 피로도 개선이 되고 피부도 확연히 좋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며 둘 사이에 뭔가 있을 것 같아 탄수화물과 식초의 두 조각을 이어 붙여 보았다. 식초는 곡물이나 과일로 술을 빚어 만드는 과정에서 알코올을 발효시켜 만드는 조미료이다. 과다한 탄수화물 섭취로 생긴 병을 먹다 남은 탄수화물을 버리지 않고 식초를 만들어 치유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지혜는 어디서 왔을까? 적게 먹어야 하고 남은 것까지 발효시켜 먹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욕심 많은 인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원래 탄수화물 창조자의 디자인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아이디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나 같은 사람은 과잉 섭취로 병이 드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기아로 죽어 가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이런 틈은 왜 생겨났을까?” 이런 문제를 발렌틴 투른과 슈테판 크로이츠베르거가 그들의 책 왜 음식의 절반이 버려지는데 누군가는 굶어 죽는가(2011) 에서 고민하고 있다. 그들의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식량 부족의 원인은 인간의 탐욕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산업화한 농업의 대량 생산 방식 때문에 물이 부족하고, 휴경 없이 계속된 농사로 땅이 황폐되어 소출이 줄어들었고, 농업의 산업화로 온실가스의 40퍼센트를 배출하여 기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과유불급을 해결하려면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하고 공정한 분배를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또 시스템을 바꾸어 대량 생산 농법을 포기하고 자연 친화 농업을 하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대량 생산 기술을 무기로 만들어버린 욕심 많은 농업 강대국들이 포기할 수 있을까?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 바로 찾아온 것은 결핍이었다. 해가 질 때까지 일해도 풍족할 수 없었다.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지치도록 일해야 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서로 속이고 싸워 착취해왔다. 더 건설적인 대안이 농업혁명, 산업혁명이었다. 홍윤철이 지은 질병의 탄생을 보면 인간이 수렵 생활을 그만두고 농업혁명으로 곡물을 섭취하면서 면역체계가 부실해졌고 가축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가축의 병균이 인간에게 전염되었다고 한다. 이후 고도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급격히 그 전염병이 퍼져나갔다고 말한다. 또 산업혁명 이후 수질과 토질, 대기가 오염이 되어 질병이 폭발적으로 늘어갔다고 한다. 인류의 유전자가 환경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지금 인간의 몸은 환경을 버텨낼 수 없는 사망의 지경에 이르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성경 말씀대로 욕심을 버리고 땅을 7년마다 쉬어 가며 적게 생산하고 적게 먹고 나누어 먹으면 땅도 살아나고 수확도 늘어날 것이고 결국은 병도 사라지도록 하나님이 디자인해 놓으신 것을 보면 삶의 길과 사망의 길이 확연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교훈을 얻으며 먹는 것을 조절해 나가면서 조금씩 건강을 회복해 갔지만 더 노력이 필요했다. 책상에 한 번 앉으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다리에 부종도 생기고 혈전도 생겨 약도 먹으면서 운동의 강도를 높여갔다. 어느 날, 가끔 가던 식당에 가 점심 식사로 콩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쓴맛이 나 먹다 말고 그냥 나와 버렸다. 가리지 않고 잘 먹기 때문에 그 식당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얼마 안 가 깨져 버렸다. 쓴맛을 느끼는 그 빈도수가 점점 늘어나 내 건강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원인은 이랬다. 시간이 부족해 항상 쪼개어 쓰기 때문에 식후에 쉬지 않고 바로 운동하던 습관이 있었다. 심지어는 복근 운동까지 격하게 했으니 위산이 역류하여 쓴 물이 계속 올라왔다. 뭘 먹어도 쓴맛이 났던 이유가 거기 있었다. 음식 탓할 것 없구나 싶었다. 그 결과 위산이 성대를 상하여 예전의 힘차게 뽑아내던 테너 소리를 잃어버렸다.
게다가 과한 운동은 또 하나의 안 좋은 결과를 내고 말았다. 왼쪽 어깨의 힘줄이 찢어져 팔을 전혀 쓸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병원에 다니며 회복하는 데 2년 가까이 걸리고 말았다. 과식이 건강을 무너뜨리는 주범인 것처럼 과로 역시 그보다 덜하지 않았다. 욕심을 따라 절제 없이 살다가 삶이 조금씩 무너져갔고 추락하기 전에서 겨우 멈추어 설 수 있었다. 그때 멈추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도 소름이 끼칠 때가 있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듣다가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이후 아침에 차를 타고 일하러 나가면서 차 속에서 습관처럼 이 연설문을 수천 번 듣다 보니 다 외워 버리게 되었다. 그 연설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 첫 번째 이야기는 점을 잇는 것에 관한 것이다”라는 구절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의 삶에 일어난 일들을 점처럼 하나씩 이어가며 스탠퍼드 졸업생들에게 연설한다. 태어나서 입양된 이유와 돈이 없어서 콜라 캔을 팔아 밥을 사 먹어야 했고, 기숙사 방이 없어서 친구의 방바닥에서 자고 심지어는 결국 대학 생활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 사건들이 다 연결이 되어 지금의 자신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학의 필수 과목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대학을 그만두고 손으로 쓴 서체 수업을 청강으로 들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10년이 지나 보니 맥킨토시 컴퓨터 폰트 디자인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약 그 대학에서 다른 수업을 듣고, 그 서체 수업을 안 들었다면 현재의 맥킨토시의 아름다운 서체는 없었다고 말을 한다. 시간이 지나 과거의 점들을 선처럼 이어보면 순간들은 결국 이어진다고 그 연설에서 강조한다.
불교 신자인 스티브 잡스의 연설에서 ‘점 잇기’는 불교의 용어인 인연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사물이 흩어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서로 이어지고 맺어져 존재로 형성되는 것을 인연이라고 한다. 사물이 존재로 형성이 되기 위해서는 사물의 내부에 원인이 되는 씨앗이 외부의 물과 햇빛 같은 조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인연의 교리다.
인연 교리는 기독교의 섭리 교리와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란 존재를 형성할 수 있는 씨앗이 내 속에는 없고 외부의 창조주에게서 온다고 한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우리의 존재가 디자인되어 있고 사람이 그 디자인을 따라야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어 가는 것을 말한다.
올해 2023년 한국에 가서 몇 가지 건강 검진해 보았다. 안과, 이비인후과, 치과, 피부과까지 가서 내 망가진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미국의 병원비가 비싸기도 하지만 비교적 잔병 없이 살아 병원에 갈 필요를 느껴보지 못하다가 감당 못 할 정도가 되어서야 병원을 찾게 되었다. 결과는 그랬다.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는데 관리를 엉망으로 하셨습니다.” 닥터들의 말이 동일했다. 안과 의사는 심하게 나무라기까지 했다. 나는 그분들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얼마나 큰 감동이 오던지. 마치 내가 열네 살 때 여의도 광장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회개하라는 설교를 들었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이벤트의 점들을 하나로 이어보는 습관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삶에 디자인한 것들을 감상하곤 한다. 그럼 너무 신기한 것이 있다. 나는 내 삶에서 나 스스로 나를 위해서 스케치하거나 채색해 본 적이 전혀 없다. 그저 주어진 삶이라는 공간에서 주어진 일을 하며 살아왔다. 지나고 보니 대부분의 일에 대한 열심은 탐욕이었고 게으름은 그 욕망이 이루어지지 못함에 대한 포기에 가까웠다. 그래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소망을 심고 믿어지게 하고 이루어 가시는 분이 있었다. 그 자리엔 내 욕심이 끼어들 수 없었고 그 길은 결코 실패하거나 이루어지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렇게 삶의 조각들을 잇다 보면 주의 은혜와 설계가 있고 그 끝에는 주님이 있었다. 또 지금까지 이어온 점들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점에 이어보면 그럼 앞으로 주님이 내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도 짐작하게 된다. 그 길을 따라가면 과거처럼 앞으로도 소망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살다 보면 하나의 호흡도 의미가 있고 일도 쉼도 그분의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믿어지는 것은 오늘도 날마다 색다른 선물이라는 고백하고 글을 마치고 싶다. [복음기도신문]
필립정 | 필립정 목사는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BA),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MDiv), 미국 Talbot School of Theology(MA, 목회 상담)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청소년 영어 담당 사역자와 이민 1세대 교회의 목회자로 섬겼다. 현재 Go Eco Pest Control 회사 대표이며,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과 야생 동물의 관계를 연구하여 달라스 DKNET 방송국 고정 게스트와 달라스 부동산 라이프 기고자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과 벌레의 교감을 다룬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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