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0월 6일)은 이번 내전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캉폭피’ 지역을 한 번 더 다녀왔습니다. 차오&김유나 선교사가 거주하는, 그리고 제가 현재 묵고 있는 곳에서 겨우 30분 거리입니다. 오며 가며 여러 살벌한 구호들과 전투의 흔적들을 보긴 했었는데, 오늘은 특별히 택시를 빌려서라도, 제대로 현장 취재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캉폭피 지역에 들어가자, 분위기가 살벌합니다.
많은 가게의 철 셔터를 내려놓았고, 그 닫힌 철문마다 전투적인 구호들이 적혀 있습니다. 가장 많이 보인 것은 “No Peace(평화는 없다!)”였습니다.
그 외에 “우리의 전사들이 오래 살기를!”, “보상 따위는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는 구분된 주를 원한다!”, “쿠키랜드(그들이 원하는 새 영토 이름)” 등이 많이 적혀 있었습니다. “주 수상은 엿 먹어라!”, “법은 엿 먹어라!” 등 별의 별 문구가 있었는데, 특별히 자주 보인 것은 “타 차파 쿠키 차파!”라는 구호였습니다. 전통적으로 쿠키족 전사들이 적진에 뛰어들 때 외치는 구호랍니다. “나는 사나이다! 쿠키족의 사나이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쿠부루레카’라는 지역에서, 쿠키족에 의해 불에 타고 무너진 힌두교 신전 터를 보았습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힌두교 신전으로, 1927년부터 이곳에 서 있었다는데, 기독교를 믿는 쿠키족 독립군 전사들이 박살을 내놓은 것이지요. 이런 일은 쿠키족 우세 지역에서는 흔하게 일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근처 난민캠프의 한 쿠키족 가정은, 몇 달 전의 무서웠던 순간을 이야기하더군요. 자신들은 산언덕 위의 마을과 언덕 아래의 마을로 나뉘어 있었는데, 어느 날 윗마을에서 교회 스피커로 “당장 도망치세요, 메이떼이족이 처들어옵니다.”라는 경고 방송을 하더랍니다. 본인은 윗마을 사람이었는데, 경고를 받자마자 아랫 마을을 내려다보니 이미 처참하게 공격을 당하는 중이었다고 하더군요. 너무나 두려워서 집에 있던 물건을 아무것도 못 챙기고, 옷 한 벌 없이 몸만 빠져나와 도망 나왔다 합니다. 아마 그 경고 방송으로 마지막 부족민들, 성도들을 살린 교회는 지금쯤 잿더미가 되어버린 200여 쿠키족 교회 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물론 메이떼이족들이 더 많은 쿠키족 교회들을 불태웠으니, 나름 ‘공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바보짓에 바보짓을 하나 더하면, 바보짓 둘이 될 뿐이지요. 쿠키 크리스천 전사들은 복수를 원하고, 해외의 크리스천들은 편향된 정보에 의해 ‘인도 정부와 메이떼이족에게 박해받는 선량한 쿠키족을 위해 기도하자.’고 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메이떼이족도 쿠키족이 아닌 다른 종족의 교회는 불태우지 않았고, 쿠키족도 다른 종족의 힌두교 사원을 불 지르지는 않았습니다. 쌍방과실의 영토 분쟁을 종교갈등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됩니다. 메이떼이족의 짓 만큼, 쿠키족들의 행동도 부끄러운 일이고, 예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행동이니까요. 궁극적으로 모든 힌두교 신전과 우상들이 부서지고 버려지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인 이들의 자발적인 순종에 의해서여야 합니다. 자신들의 복수에 종교적 정서를 더하는 방법으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여정에서는 쿠키족 난민들만큼이나, 메이떼이족 난민들에게도 한국교회의 사랑을 배풀려 노력했던 것입니다.
취재를 마치고, 이번에는 어제 담요 200장을 공급한 후 인터뷰까지 했던 ‘행붕’지역 쿠키족의 난민캠프로 향했습니다.
바로 어제의 인터뷰에서 그들이 절실히 필요로 했던 채소 약 450kg과 계란 2100개, 그리고 특별히 어린이들을 위한 킨더조이 초콜릿 스물네 박스를 깜짝 전달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행붕 쿠키족의 룬 공주(26세)는, 난민 가정들에 영양제를 나누어 주다가, 바로 어젯밤의 인터뷰에서 말했던 게 다 도착한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양의 채소를 보는 게 몇 개월만의 처음!”이라며 기뻐하더군요. 저희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또한 놀라운 소식을 들었는데, 지난 몇 달간 내전으로 봉쇄되어 있던 ‘세나파티 – 임팔’ 도로가, 제가 온 다음 날 쿠키족 부족장 회의 결과로 다시 열렸었는데(그래서 1박 2일동안 임팔에 가서 메이떼이족 난민 캠프들을 들를 수 있었지요.) 저희가 임팔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 날 아침(즉 오늘, 10/6) 다시 봉쇄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정부의 인터넷 통제에 반발하는 시위대에 의해 막혔다는데… 딱 우리의 일정을 위해서만 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오묘했습니다.
그렇게 ‘캉폭피’의 무너진 힌두 사원을 취재하고, ‘행붕’의 쿠키족 난민캠프를 다녀온 후, 저녁에는 다시 식량과 음식을 갈무리해서, 또다시 ‘캉폭피’ 내전 지역으로 돌아갔습니다.(하루에 내전 지역을 두 번 들어갔습니다.)
또 다른 난민캠프를 들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가는 길에 오늘부터 시작된 ‘도로봉쇄’를 위해 나온 사람들에게 시비가 걸리기도 했지만, 다행히 구휼 사역팀임을 확인받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캉폭피의 난민캠프+고아원은 정말 처참했습니다. 일단 꼭 필요하다던 쌀 750kg과 계란 420개를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에게 ‘킨더조이’ 초콜릿을 하나씩 주었고, 바로 ‘오빠 김밥’의 제육볶음, 닭볶음탕, 부추전, 김밥 등을 풍성하게 차려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보다도 더욱 전투적으로 먹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이 식사가, 제가 지난 6월에 와서 먹인 후 첫 고기 식사라고 합니다. 그때 이후 4개월 동안 한 번도 고기를 먹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4개월 동안 쌀과 렌틸콩 끓인 국물(달)만 먹고 살았다는 것이지요. 그나마도 충분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에게는 늘 의문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정부에서 메이떼이족이든, 쿠키족이든 난민 캠프마다 최소한 쌀과 렌틸콩은 충분히 공급하고 있는데, 왜 이 캉폭피 난민캠프는 쌀을 요청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다른 난민 캠프는 이제 담요 등 월동장비나, 정부에서 주지 않는 야채 등을 원하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고아원장님 말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원래 고아원은 정부에서 기본적인 식료품을 챙겨주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아원들에게 식량을 주지 않고, 다만 기다리라고 한다. 넘쳐나는 난민들을 먹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게 식량지원이 끊긴 상황에서, 내전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나 난민촌에서 교육을 시키기 어려워서 맡겨오는 아이들이 더해지면서 고아원의 식량난은 더 가중이 되었다. 게다가, 우리 캉폭피 지역의 부족장(KIng)은 우리에게 무장을 명령하셨다. 그래서 없는 돈을 털어 우리 고아원도 5만 5000루피(약 90만 원)를 주고 소총을 구비해야 했다”
“요즈음에는 더 싼, 부족 자체 제작 총이 강매되고 있는데, 사진을 보여주겠다. 이름은 ‘품피(Pumpi)라 하고, 이건 1만 5000루피다. 부족에서 강매하고 있다. 더 싼 이 총이 나왔을 때 샀으면 4만 루피를 아낄 수 있었을텐데..” (그런데 사진 속 부족 자체 제작 총은 너무 조잡하고 퀄리티가 너무 낮아 보였습니다.)
“정부의 지원은 없어지고, 고아와 난민은 늘어나고, 부족에서는 총과 총알을 강매하는데 어떻게 아이들을 잘 먹일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오늘 여러분이 와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여기까지가 쿠키족 고아원 원장님의 말이었습니다.
후진국에서 전쟁이 터지면, 난민구휼에 행정력이 집중되면서, 기존의 복지 대상들에게는 더 큰 피해가 온다는 사실이 확실히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니 재난지역에 갈 때는 난민캠프도 난민캠프지만, 고아원이나 장애인 시설, 자선 병원 등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한국 음식과 고기 파티를 열어주거나 ‘킨더조이’ 초콜릿을 살 돈으로, 차라리 쌀이나 렌틸콩을 더 많이 사 갔어도 좋았겠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도 중요합니다. 4개월에 한 번이라도 고기를 실컷 먹고, 초콜릿의 달콤함과 동봉된 장난감 조립을 즐기는 기쁨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산을 쪼개서라도 둘 다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메이떼이’족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쿠키족처럼 복음화율이 높은 곳에서는 가능한 한 만화 전도 책자를 같이 나누려 합니다.
식량과 담요로 육의 필요를 채우고, 고기와 초콜릿으로 정서를 위로하는 것을 넘어, 십자가 복음으로 영의 새 창조가 시작되어야지요. 이것을 위해서라면, 코로나 감염 지대도, 내전 지역도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순종해서 위험 속으로 달려갈 때, 주님께서는 늘 온갖 기적을 통해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없는 재정도 마련해 주시고, 부족장들의 봉쇄도 풀어주셨습니다.
전봇대 하나 없는 내전 지역의 밤, 식량을 비워낸 트럭 짐칸에서 앉아 비포장도로를 달립니다. 비까지 쏟아져, 트럭의 천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귀를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간혹 차가운 빗방울이 천으로 된 지붕의 뚫린 틈으로 들어와 제 얼굴을 때립니다. 제 옆에는 차오 선교사님과 나가족 크리스천 형제들, 그리고 MK(선교사 자녀) 데이브가 있습니다. 모두가 같은 파란 조끼 유니폼을 입고, 이 땅을 치유하기 위해 달립니다.
계속해서 달리다 보면, 마침내 예수님께서 팔 벌리고 맞이하시는 하늘 문이 보이겠지요. 그 날이 오기까지, 죽도록 충성하며 이 길을 걷겠습니다.
마니푸르에서의 한 주간 일정이 마쳐졌습니다. 내일(10/7)은 다시 3000km를 이동해서 뭄바이로 돌아갑니다. 기도해 주시고 기억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복음기도신문]
원정하 | 기독교 대한감리회 소속 목사. 인도 선교사. 블로그 [원정하 목사 이야기]를 통해 복음의 진리를 전하며 열방을 섬기는 다양한 현장을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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