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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칼럼] 상상은 현실이 된다 2

▲ Easter Puppet Show 2019 사진 : 유튜브 채널 srbasham 영상 캡처

일단은 아이들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면서 전문 심리 상담사는 아니었지만, 성령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눴다.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표현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우면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도 만들었기에 매 순간 느끼는 감정은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 이유는 우리가 소중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고 전했다.

그리고 간식을 먹였다. 연습하는 시간이 즐거운 시간이었으면 했다. 결과보다 연습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마음껏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위로받았으면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연습 시간을 약속할 수 없다는 거였다. 아이들이 오는 시간, 그게 몇 시이든 그 시간이 연습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같으면 짜증이 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아이들은 연습에 오지 않는다고 해도 10가지가 넘는 이유가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시간을 알 수 있는 시계나 핸드폰은 없었지만, 할 일은 수십 가지다. 그렇기에 나는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시간을 금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열악한 상황에도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연습 시간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그림자의 길이로 시간을 예측하고 오는 아이도 있었다.

영어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아이는 잠도 자지 않고 연습하고 공부했고, 장사하는 아이는 더 열심히 뛰어다녔다.

예수님을 몰랐던 핫산에게 대본은 또 다른 복음이었다.

나는 무조건 아이들을 칭찬하고 격려하기로 했다. 연습에 늦어도. 과제를 해오지 않아도. 서툴고 못 해도. 무조건.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는, 내 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하는 일이었다. 매일 매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움 받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매일 기도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 사랑만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연극은 처음 상상했던 그림과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갔다. 대본에 충실하지 않고 애드리브를 날리는 배우들을 정말 싫어하는데, 제발 아무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입을 닫았다. 대사를 못 하는 배우라니. 나는 속이 터졌다.

과연 공연을 올릴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아이들의 실력은 늘지 않았고 A4용지도 귀한 이곳에서 인형극에 필요한 무대를 설치하고, 소품을 준비하는 게 만만치 않았다.

음향, 조명은 꿈도 꾸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아이들은 여전히 헤매고 있었다.

대사 한마디에 담긴 작가의 의도가 표현되는 건 애당초 꿈도 꾸지 않았다. 부디 부활의 의미만 잘 전달되기를 바라다가 이제는 공연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런데 도저히 올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공연 전날. 어떡해야 하나, 기도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나의 욕심과 열심을 보게 하셨다. 그리고 아이들이 나를 믿어준 만큼 나도 아이들을 믿어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노라고.

공연을 앞둔 몇 시간 전, 핫산은 자신의 이름을 기독교식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무슬림 이름으로 예수님 부활 공연을 할 수 없다는 핫산의 말에 나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무슬림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대단했던 핫산이 예수님 부활을 전하는 ‘존(요한)’이 되는 순간이었다. 핫산을 존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이 공연을 준비시키신 것이었다.

마음이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아이를 통해 먼저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경험했다.

부활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대사를 까먹은 아이들은 나의 소망대로 애드리브를 남발했고, 타이밍을 놓쳐서 순서는 엉망이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아이들은 실수에도 주눅 들지 않았으며, 아이들이 처한 위기는 오히려 아이들을 담대하게 했고, 실수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물했다.

그런데도 예수님 부활의 영광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열화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앙코르 요구도 빗발쳤다.

공부에는 의욕이 없었던 아이가 적어도 연습하고 또 연습하면 연습한 만큼의 열매는 맛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활의 의미를 몰랐던 아이들이 부활을 알게 되었고, 칭찬과 격려를 받아보지 못했던 아이들이 용기를 얻었고, ‘보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것을 비우고, 나의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겼더니, 하나님은 가장 낮고 비천하고, 보잘것없어 보였던 아이들을 통해 일하시고,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셨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처음 본 마리아처럼, 진리 가운데 죽음을 뚫고 살아난 생명을 경험하게 된 부활절이었다.

부활 공연 이후 공동체라는 주제로 또 한 번의 공연을 올렸고, 인형극단이 창설되었다. 막연하게 그려보았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내가 상상했던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으로.

누군가의 평가 대상이 되어 까이고, 헤집어져 결국에는 휴지 조각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나의 노트북 안에 잠들어있는 대본들은 나의 상처였다.

감독과 제작자와 투자자를 만나지 못한 나의 대본은 나의 꿈을 뺏고, 상처를 남긴 도둑 같은 존재가 되었다가, 또 어떤 때는 뱃속에서 끝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사산아 같은 아픔이 되기도 했다. 도둑이 되었다가 사산아가 되었던 글을 써왔던 나의 지난 시간도 위로받았다.

내 생각과 상상대로 흘러가지 않은 인생이기에 얼마나 감사한가?

가장 낮고, 가난하고, 연약한 아이들을 통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록하고 계신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작가임이 얼마나 영광인가.

하나님 찬양받으소서! <계속> [복음기도신문]

*이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작지만 피어있는 꽃들>에서 저자의 허락을 받아 발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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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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