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70주년 특별기획]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
술꾼 형님과 동무들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건강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아 병원에 제대로 가보지도 못하시던 아버지는 고생만 하시다가 83세에 작고하셨다. 어머님은 비교적 건강하게 장수하셨고 아버님보다 12년을 더 사시다가 95세에 작고하셨다.
바로 위 봉학 형님은 ‘짱’이란 별명으로 마을에서 호쾌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호주머니에 돈이 조금만 있어도 남기지 않고 몽땅 써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어쩌다 돈이 생기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시장에 가서 참외나 수박을 지게에 가득 실은 상인을 집으로 데려와 마루에 몽땅 부어놓게 했다. 한 마디로 ‘배짱 좋은 사나이’였다.
우리 6형제는 대체로 ‘술’을 좋아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술을 입에 대지도 못했다. 위로 두 형님과 바로 아래 동생은 단양에서 술꾼으로 유명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던 날도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날이 훤히 밝았는데도 술에 취해 있을 정도였다. 그날 아침에 나는 홧김에 형들이 마시던 술병을 모조리 길 밖의 도로변에 내동댕이쳤다. 선천적으로 술을 멀리 할 수 있도록 내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지금 생각해도 감사할 뿐이다.
국민학교 4학년쯤으로 기억된다. 학교 마당에서 친구들과 말타기 놀이를 하는데 나는 말 기둥에서 두 번째 역할을 맡았다. 그때 ‘이만근’이라는 친구가 멀리서 달려와 내 등에 올라타면서 오른쪽 다리를 치는 바람에 골절상을 입어 한 달 동안 석고를 감은 채 꼼짝 못하고 지낸 적도 있다. 후에 그 친구는 군청 내무과장을 지내다 1996년 폐암으로 작고했다. 나를 다치게 한 친구 만근은 학업성적은 항상 꼴찌였지만 단양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나와는 가까운 동무였고 70평생을 막역한 친구로 우정을 나누며 지냈다.
5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 만근이가 당시로는 거금인 10원을 집에서 훔쳤다. 당시 1원짜리 지폐를 ‘에헴’이라고 부를 정도로 큰돈이며 10원짜리 지폐는 구경조차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런 때였으니 어린 아이가 10원짜리를 지니고 있는 건 그 자체로 의심 받을 일이었다. 둘이서 궁리 끝에 우하교 아래서 ‘젠사이(단팥죽업)’를 운영하는 중국집 ‘왕서방’을 찾아갔다. 10원짜리를 맡기고는 음식을 먹는 대로 그 값을 까 나가기로 했다. 아무도 몰래 음식점을 드나들며 단팥죽을 배터지게 먹던 일도 기억난다. 먹을 때마다 불안해 하면서 말이다.
6학년 때 일도 기억난다. 선구 어머니가 항상 밥을 굶고 등교하는 내게 저녁밥을 먹으라고 불러주셨다. 하얀 이밥에 고등어를 구워 주셨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씹기도 전에 그냥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 뒤로도 나는 몹시 배가 고프면 염치불구하고 선구네 집에 가서 밥을 얻어먹곤 했다. 선구 어머니는 참 고마운 분이셨다. 초등학교 2학년 9살 때, 1941년 12월 8일 대동아전쟁이 발발했다. 그리고 13살 여름방학,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해방을 맞았다.
국민학교 성적은 꽤 좋았다. 요즘은 수우미양가로 성적을 구분하지만 그 당시는 갑을병으로 매겨졌다. 내 성적은 갑을 받은 과목이 85%가 될 정도로 양호한 편이었다. 키가 작은 나는 아침 조회 때 제일 앞에 서야 했다. 그때 내 짝이었던 ‘이경숙’은 꽤 오랫동안 근황을 알고 지냈다. 그 친구는 2010년 9월에 서울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급우들과도 제법 무난하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시절 내 삶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가난이었다. 그 바람에 나의 유년시절은 먹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제일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먹구름이 낮게 깔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재빨리 그릇을 가지고 앞개울로 달려가곤 했다. 골뱅이를 잘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골뱅이에 소금을 약간 쳐서 대추나무 가지로 까먹는 일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밤이 깊도록 골뱅이를 까먹다보면 손가락이 소금물에 부풀어 퉁퉁 부어오르기도 했다.
[복음기도신문]
조용학 | 1934~2013. 충남 단양 생(生). 학도병으로 6.25전쟁 참전. 삼미그룹 총무과장 정년퇴직. 서울 노원구 국가유공자수훈회 사무국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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