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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무슬림 복음 전도에서 한국교회가 알아야 할 질문과 답(4)

사진: Unsplash의Rachid Oucharia

밖에서 보는 이슬람(71)

Q-9. 이슬람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가?

A-9. 무슬림 남성들은 이구동성으로 동등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꾸란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꾸란 2장 282절에 따르면, 채무 계약서를 작성할 때를 기록하면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하지 않다는 것으로 말한다. “두 남자의 증인을 세울 것이며, 두 남자가 없을 경우는 한 남자와 두 여자를 선택하여 증인으로 세울 것이니라. (중략)”

이에 대해서 한국이슬람교(KMF)에서 제공하는 해설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증인으로써 두 명의 남자가 없으면 남자 한 명과 여자 두 명을 증인으로 세우는 이유는, 남성은 사물이나 사건을 판별할 때 감성보다는 이성에 의존하나 여성일 경우에는 이성보다 감성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엄마는 그 애의 잘못을 아버지로부터 벌을 피하게 해줌으로써 사랑을 베풀어 준다. 이로 미루어 보아서도 어떤 사건을 진술할 때 감정이 예민한 여성일 경우는 그 환경 및 질문자의 질문을 받을 때 감성에 치우치게 된다. 그러나, 두 명의 여성을 증인으로 세울 때는 한 여성이 감성에 치우쳐 그릇되게 진술했을 때 또 한 여성은 여성의 본성, 시기 및 질투로 인하여 허위로 진술하는 것을 부정하려는 심리가 강하다고 보기 때문이다”[1]

꾸란에서는 여성을 어떻게 보나?

1) 남편의 ‘소유물’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을 위한 낙원이며 밑으로 강물이 흐르고 있는 그곳에서 순결한 아내와 더불어 하나님의 기쁨을 사며 영원히 살리라.” (꾸란 3:15).

2) 부정하다고 말한다.

“여행자와 아프거나 여행 중일 때나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나 여성을 만졌을 때나 물을 발견치 못했을 때는 깨끗한 흙 위에 우두를 하고 너희 얼굴과 양손을 문질러 깨끗이 하라.” (꾸란 4:43).

3) 처벌의 대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너희 여인들 가운데 간통한 자가 있다면, 네 명의 증인을 세우고 만일 그들이 증거할 경우, 그 여인들이 죽을 때까지 혹은 하나님께서 그 여인들에게 다른 방법을 제시할 때까지 집안에 감금하라.” (꾸란 4:15).

“순결한 여성들을 비방하는 자들이 4명의 증인을 내세우지 못할 경우, 그들에게 여든 대의 가죽 채찍을 가하되, 그들의 증언도 수락해서는 아니 되나니 이들은 사악한 죄인들이라.” (꾸란 24:4).

4) 한 남성이 4명의 부인과 결혼할 수 있다.

“좋은 여성 중에서 둘 또는 셋 또는 넷과도 결혼해도 좋으니라.” (꾸란 4:3).

5) 여성은 남성의 경작할 땅이다.

“아내들은 너희들이 가꾸어야 할 경작지와 같으므로, 너희가 원할 때 경작지로 가까이 가라.” (꾸란 2:223).

성경에서 여성을 보는 관점

위의 꾸란 내용에 반해, 성경에서 여성을 보는 관점은 다음과 같다. 1) 남성과 동등하다(갈 3:28). 2) 모든 남편은 자기 몸과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엡 5:25~29). 3) 여성은 근본적으로 남성과 같은 권리를 가진다(고전 11:11). 4) 무슬림 여성들처럼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전 11:15). 5) 일부일처제를 가르친다(마 19:4~6).

지금 전 세계 무슬림 중 그 절반이 여성이다. 위에서 언급된 꾸란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무슬림 여성 대부분은 꾸란을 전혀 읽지 않아서 “설마 그런 내용이 꾸란에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거나, 혹은, 설사 읽었다 하더라도 다른 선택이나 탈출구가 없이 그냥 숙명처럼 살아가고 있다.

Q-10. 이스마일의 자손은 하나님께 저주받았나?

A-10. 그렇지 않다. 그들도 우리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손이며 주님의 계획안에서 모두 주님께로 돌아올 사람들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의 자손인, 지금의 아랍인들을 저주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지 않는다.

창세기 16장 11~12절에서는 주의 천사가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고 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는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찌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또한, 창세기 17장 2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마일에게 커다란 축복을 하신다.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증대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창세기 16~17장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난 여성은 하갈이 유일했음을 보면 이스마엘의 자손이 저주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 위에 모든 족속이 그의 씨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행 3:25)고 말씀하셨고, 오순절에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그 자리에 아랍 사람들도 있었음을 기억한다면(행 2:11) 이스마엘의 자손으로 알려진 아랍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지난 2천 년 동안 아랍 기독교인들이 아랍 무슬림들과 함께 살아왔다. 현재 이집트 인구의 15%, 레바논 인구의 39%가 기독교인이다. 또한, 아랍 기독교인 중 정교회 교인이 72%, 가톨릭 교인이 20%, 개신교인이 8%로 알려졌다. 초대교회는 기독교가 시작된 예루살렘으로부터 전 세계로 퍼져 뿌리를 내려갔다.

사도바울은 3번의 선교 여행을 시작한 수리아 안디옥(현재는 튀르키예 남동부)에서 이방 세계로 퍼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에 이르렀고, 그곳에서 사도 마가가 체류하면서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에 교회를 세웠다. 이후 7세기에 이르러서는 중동 대부분은 기독교 국가로서 비잔틴 제국으로 편입된다. 이후 그리스도 교회는 계속 성장하여 해를 거듭할수록 교회 의식과 전통을 발전시키고 서로 다른 교단을 이루었는데, 콥트 교회, 아시리아 교회, 그리스 비잔틴 교회, 그리고, 라틴 교회 등이 그것이다. 이 교회들 모두는 각기 자기 문화에 따라 고유의 예배 형태가 탄생해서 발전했다. 삼위일체가 성립된 니케아(지금의 튀르키예 이스탄불 근처) 신경 등 기독교의 기본적 진리 중 몇몇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초대교회 교부들로 형성되었다. 그리고서 그런 아랍인들에 의한 다양한 기독교 배경 속에서 다른 아랍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슬람교가 새롭게 그 땅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 아랍 무슬림들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슬람이라는 잘못된 길로 들어섰으나 결국, 하나님께로 모두 돌아와야 할 영혼들이다. 그들 모두가 다시 원래의 창조주 우리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계획하셨으며,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전도 도구가 되어 살기를 원하신다.(계속)


[1] https://www.koreaislam.org/%ec%84%b1%ea%be%b8%eb%9e%80/?pageid=12&uid=1283&mod=document

[복음기도신문]

김종일 | 장신대 신대원, 국립 이스탄불대 역사학과 석사, 박사, 前 중동선교회(MET) 본부장, 現 터키어권선교회(FOT) 대표.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 회장, ‘전방개척선교(KJFM)’ 저널 편집인, 아신대(ACTS) 중동연구원 교수. 저서: 『밖에서 본 이슬람, (1)무슬림 이해하기』 / (2022, 라비사북스). 『벌거벗은 세계사(경제편)』 공저/ (2023, 교보문고), 『밖에서 본 이슬람, (2)이슬람 이해하기(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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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일 칼럼] 무슬림 복음전도에서 한국교회가 알아야 할 질문과 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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