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군부대서 한국전 정전협정 70주년 행사…韓대사 등 200여명 참석
“반쯤 옷이 벗겨진 채 굶주린 아이를 안고 있던 지친 여성들은 조금이라도 먹을 것을 얻기 위해 트럭이나 지프, 심지어는 지나가는 군인들에게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추위와 빈곤, 질병에 신음하는 소외된 이들을 본 우리는 깊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유엔군 깃발 아래 한국전쟁에 참전한 레이몽 베르(90) 벨기에 한국전참전협회장(이하 협회장)은 27일(현지시간) 벨기에 동북부 카스테를레이에 있는 제3공수대대 연병장에서 열린 한국전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이날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용사들을 대표해 기념 연설을 한 그는 “우리는 당시 한국으로 향하는 파병 길에서 동양 국가가 가난하며, 특히 한국은 빈곤의 정도가 심하다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부산항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적을 피해 물밀듯 내려오는 피란민”과 마주한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무력한 한국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베르 협회장은 한국인들을 참혹했던 상황에서도 “마음이 따뜻하고 쾌활하며, 의사소통이 잘되고 유머 감각도 훌륭했던” 사람들로 묘사했다.
특히 어린이들은 갈색 베레모를 쓴 벨기에군을 ‘삐로기'(Pirogi)라고 불렀고, 자신들이 가는 곳마다 ‘삐로기 만세’라고 환영해줬다고 덧붙였다.
‘삐로기’라는 별칭은 당시 어린이들이 벨기에군을 ‘베루기'(벨기에인을 뜻하는 일본식 표현)라고 부르는 것에 착안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베르 협회장은 이날 벨기에 대대에 배속돼 함께 생활한 ‘한국군 전우’에 대한 감사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군은 벨기에군에게 항상 큰 힘이 돼줬다”며 “그들은 인종, 피부색 또는 어떤 우월성도 구별하지 않는 훌륭한 동료이자 전우였다”고 떠올렸다.
아울러 벨기에가 주변 열강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던 사실을 언급하며 “비슷한 운명에 의해 수 세기 동안 고난을 받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야 하는 형제와 같은 마음을 느끼게 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명분과, 참전용사로서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는 것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며 사의를 표했다.
벨기에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자원병의 해외 파병에 관한 법률까지 새로 제정해 병력을 보낸 나라다. 연인원 기준 총 3천498명이 참전했으며, 이 가운데 99명이 전사하고 336명이 다쳤다.
당시 통합부대로 편성된 벨기에·룩셈부르크 대대는 강원 ‘철의 삼각지대’ 내 김화 잣골에서 55일 연속 진지를 지키며 적의 남하를 저지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베르 협회장은 지난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도 참전 당시 처음엔 잣골에서 퇴각하라는 권고를 거부하고 두 달 가까이 중공군을 막아냈다는 일화를 소개한 바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유정현 주벨기에 한국 대사, 벨기에 및 룩셈부르크군 고위 관계자, 생존 참전용사와 유족을 포함해 200여명이 참석했다.
유 대사는 이날 기념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한의 잇따른 무력시위를 언급하면서 “현재 유럽과 아시아 양쪽에서 일어나는 일은 각국 정부가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같은 날 서울에서 열린 정부 주관 정전협정 70주년 기념행사에 벨기에 대표단 및 룩셈부르크 총리가 참석한 점을 언급하면서 “고귀한 희생에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거듭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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