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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보안법 3년] ③ ‘중국화 가속’ 퍼져나가는 체념과 상실감

▲ 홍콩 반정부 시위곡 '글로리 투 홍콩' 부르는 시위대. 2019년 10월 26일 홍콩 차터가든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글로리 투 홍콩'을 부르고 있는 시위대 모습. (홍콩 AP=연합뉴스 자료사진)

반정부 시위 노래 금지곡 추진에 “이렇게까지 반응해야 하나”
“감시 점점 심해질 듯”…”중국화하는 홍콩, 발전할 수 있을까”

언제 반정부 시위가 열렸던가 싶을 만큼 바뀐 홍콩에서 최근 시위 세력을 다시 ‘결집’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일련의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홍콩 국가(國歌)’로 잘못 연주된 반정부 시위 노래 ‘글로리 투 홍콩'(Glory to Hong Kong)에 대해 홍콩 정부가 칼을 빼 들자 홍콩 아이튠즈 ‘톱 송’ 차트 1∼10위를 해당 노래가 점령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작은 저항의 몸짓’일 뿐, 4년 전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뭉쳤던 홍콩인들 사이에서는 체념과 상실감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엘리샤와 리사라고 이름을 밝힌 30대 홍콩인 2명에게 지난 3년간 느낀 홍콩국가보안법의 영향을 물었다.

▲ 2019년 9월18일 ‘글로리 투 홍콩’을 부르는 홍콩 시위대(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 “홍콩 정부가 이렇게까지 반응해야 하나 싶어요”

엘리샤 씨는 ‘글로리 투 홍콩’의 금지곡 추진과 명보의 40년 역사 시사만화 연재 중단을 보며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정부가 과잉대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이렇게 반응해야 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글로리 투 홍콩’이 홍콩 국가로 잘못 연주된 것은 실수였잖아요. 스포츠 대회 주최 측에서 실수한 거였고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는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그 노래를 금지하겠다는 게 이해가 안 가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건데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홍콩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봐서 과잉대응하는 것 같아요.”

엘리샤 씨는 “솔직히 시위에 대해서는 이제 사람들이 많이 잊었다”면서도 “그래도 ‘글로리 투 홍콩’은 많이들 내려받았다. 그만큼 그 노래가 우리 또래들이나 시위 참가자들에 유명하고 상징적이다”고 설명했다.

앞서 홍콩 법무부는 지난 6일 선동적인 의도를 갖거나 독립을 부추기려 하는 자가 ‘글로리 투 홍콩’을 연주, 재생산하는 것을 금지해달라는 신청을 고등법원에 제기했다고 밝혔다.

‘글로리 투 홍콩’은 2019년 8월 홍콩 반정부 시위 당시 만들어진 작자 미상의 노래로 홍콩의 독립을 지지하는 내용이다. 당시 시위대의 대표 구호인 ‘광복홍콩, 시대혁명'(光復香港時代革命)이 포함돼 있다.

홍콩국가보안법 제정 후 공공장소에서 ‘글로리 투 홍콩’을 부르거나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치는 사람들이 경찰에 연행되는 등 이미 이 노래가 사실상 금지곡이 된 상황에서 당국이 공식적인 금지곡 추진에 나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아이튠즈 차트를 ‘글로리 투 홍콩’이 휩쓴 것은 많은 홍콩인이 금지곡이 되기 전에 서둘러 해당 노래를 내려받으려 몰려든 때문으로 풀이됐다.

그로부터 일주일만인 14일 아이튠즈, 스포티파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릴스 등에서 ‘글로리 투 홍콩’의 다양한 연주 버전이 사라져 플랫폼들의 자기 검열이 시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그 중 스포티파이와 음원사이트 ‘KK박스’에는 19일 다시 ‘글로리 투 홍콩’의 새로운 버전들이 올라왔다.

‘토머스 DGX & 홍콩인들’이라는 이름으로 8개의 새로운 버전을 올린 이는 페이스북을 통해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단호히 반대한다”며 “모두가 음악을 고를 수 있는 자유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을 안다.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나는 그러한 바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엘리샤 씨는 “이제 다시는 6월 4일에 빅토리아 파크에서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집회는 열리지 못할 것이다. 홍콩은 이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홍콩이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될 때 중국과 다른 체제, 자유를 보장받았잖아요. 그 덕분에 홍콩이 발전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어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이제 홍콩을 중국으로 생각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데 홍콩이 과연 발전할 수 있을까 싶어요. 저는 포기했어요.”

▲ 2020년 6월3일 홍콩 반정부 시위 현장(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홍콩, 점점 중국화…표현의 자유 줄어들어”

리사 씨 역시 최근 주변에서 ‘글로리 투 홍콩’을 다들 내려받아 저장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예상했던 일”이라며 “다들 그 노래 음원을 어느 날 구할 수 없게 될까봐 서둘러 다운로드받았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 시행 후 확실히 표현의 자유가 줄어들고 있어요. 감시도 심해지는 것 같고요. 저는 2019년 시위에 두어번 참여했지만 많이 참여했던 대학 동창 중에는 감시당하는 친구도 있고 아예 이민을 간 친구들도 있어요.”

2019년 홍콩 시위대는 ▲ 송환법 공식 철회 ▲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불기소 ▲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 5대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시위는 당국이 송환법안을 철회하도록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2020년 6월 30일 국가보안법 시행과 함께 나머지 요구는 무위로 끝났다. 시위 관련 기소·재판은 여전히 무더기로 진행 중이다.

리사 씨는 “사실 일반 사람들은 일상에서 국가보안법의 영향을 크게 느끼지는 못한다”며 “정치적인 얘기만 안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예전에는 당연하게 누렸던 표현의 자유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은 확실히 느껴진다. 다들 입을 다물고 얘기를 안 한다”고 전했다.

“어차피 뽑을 사람이 없어 선거에서 투표도 안 할 거지만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우리에게 선택지가 없어서입니다. 체념인 거죠. 친중 진영만 출마할 수 있잖아요. 이민을 안 하고 홍콩에서 계속 생활하기로 선택한 이상 홍콩이 중국화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실제로 저는 받아들였어요. 홍콩이 이전으로 돌아간다거나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안 해요.”

그는 지난달 홍콩 항공사 캐세이퍼시픽 승무원들이 영어를 못하는 중국 본토 승객을 뒤에서 조롱한 일로 해고된 사건과 관련해 “분명히 승무원들이 잘못한 일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무원들을 지지했다”며 “중국에 대한 홍콩인들의 감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사 씨는 홍콩의 상황에 대해 일찌감치 체념했다고 했지만 최근 한 대학생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로 인해 선동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너무나 놀랐다고 밝혔다.

일본의 대학에 유학 중인 위엔칭팅(23) 씨는 지난 3월 귀국했다가 출국 전날 체포돼 기소됐다. 그는 2018년부터 올해 3월까지 소셜미디어에 홍콩의 독립을 지지하는 글들을 20여건 올린 혐의를 받는다. 지난 16일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출국금지 상태다.

리사 씨는 “일반 대학생의 소셜미디어까지 감시해 체포, 기소한다는 게 충격적”이라며 “감시가 점점 더 심해질 것 같다”고 우려했다.

▲ 2019년 11월24일 홍콩 구의원 선거, 끝없는 투표 행렬(연합뉴스 자료사진)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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