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안에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 Prize Wisdom 그를 높이라 (잠4:8) -

[TGC 칼럼]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

사진: tgckorea.org 캡처

1733년, 옥스퍼드 대학에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발버둥질한 열여덟 살 먹은 신실한 학부생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뭔가가 빠진 것만 같았다. 그에게는 영적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이라는 제목의 책을 건넸고, 그 책은 그에게 돌파구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하나님께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내 소중한 친구의 손을 통해서 그 훌륭한 논문을 보내주시기 전까지, 나는 참된 종교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George Whitefield’s Journals, 46-47) 

그 학부생은 조지 휫필드였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양쪽 대륙에 걸쳐서 일어난 영적 각성을 주도하는 설교자가 될 인물이었다. 그에게 그 책을 건넨 친구는 찰스 웨슬리였으며, 그는 휫필드와 함께 부흥의 시대를 지나며 위대한 찬송 작가가 되었다. 실제로 시기는 각각 달라도 초기 복음주의 운동을 주도한 거의 모든 지도자가 이 책을 읽었고, 그 중요성을 앞다투어 간증했다.

중요한 건 이 작은 책이 복음주의 부흥의 뿌리, 바로 그 자리에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마치 위를 덮은 토양에 생명이 피어나도록 만드는 지하수와 같았다. 조지 휫필드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에게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친 이 책의 내용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헨리 스쿠걸, 개신교 신비주의자

이 책을 쓴 사람은 스물여덟 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헨리 스쿠걸이라는 스코틀랜드의 젊은 목사이다. 1677년에 익명으로 발행된 이 글은 원래 여자 친구인 레이디 길모어에게 주는 영적 지침을 담은 부드러운 편지였다. 따라서 이 글은 개인적인 서신에서 찾을 수 있는 따뜻함과 솔직함이 넘친다. 본문을 읽을 때 마치 누군가가 바로 옆에서 영적 조언을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이유이다. 

젊었지만 스쿠걸은 기독교 고전이 품은 영성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여러 교부, 토마스 아 켐피스 같은 중세 영적 저술가들, 그리고 아빌라의 테레사와 잔느 귀용처럼 비교적 최근 영성 저술가에 이르기까지, 그는 빠짐없이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가 막상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가 읽은 수많은 고전을 하나로 통합하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진리만을 뽑아냈다는 사실이다. 그는 굳이 참고한 저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손에서 신비주의자의 가르침은 수도원과 가톨릭에 제한되지 않았다. 복잡성이 제거되고 본질만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그건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사도 바울의 기본 가르침이었다. 바울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우리 모두 예외 없이 “하나님과 영혼의 연합, 신성한 본성에 대한 진정한 참여”를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쿠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사도 바울이 말씀하셨듯, ‘우리 안에서 만들어진 그것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이시다’”(44).

참된 종교가 무엇인가? 

이 책의 중요성에 대한 실마리는 이 책을 통해서 “참된 종교”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 휫필드로부터 찾을 수 있다. 모든 진지함과 규율, 모든 종교적 준수와 성실함에도 불구하고 휫필드는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에 관한 핵심적 실재를 발견하지 못했다. 종교적 의무를 종교의 본질로 간주하지 않는 스쿠걸로 인해서 휫필드는 놀랐다. 의무는 본질이 아니었다.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서 휫필드는 당시를 회상했다. 

‘세상에! 이것이 참된 종교가 아니라면, 무엇이 참된 종교이겠는가?’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내게 보여 주셨다. 몇 줄을 더 읽었다. “참된 종교는 하나님과 영혼이 결합하는 것이고,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신성한 빛의 광선이 내 영혼에 순간적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까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George Whitefield’s Journals, 47)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휫필드에게 돌파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영적 삶의 중심이라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여기서 흘러나올 뿐이다. 장 칼뱅은 기독교강요 3권 서두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성령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전까지는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우리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다.

올바른 교리, 올바른 실천, 올바른 도덕, 이 모든 것이 다 훌륭하고 좋지만, 본질 그 자체는 아니다. 기독교 또는 “참된 종교”의 본질은 영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새로운 생명 원리를 갖는 것이다. 기독교는 단순한 사상이 아니다. 스쿠걸은 이렇게 말한다. “종교의 본질을 신성한 삶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완전하게 표현하는 다른 길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44). 하나님 그분이 내 안에 거하시고 사시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생각이 책의 제목,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에 담겨있다. 

이것은 스쿠걸이 다룬 위대한 주제였다. 종교에 대한 모든 잘못된 생각을 정리한 후, 그는 이 한 가지 명령에 모든 주의를 집중했다. 그는 독자가 경험하기를 원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는 가장 진지하고 엄숙한 생각이 오로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도록 하는 데에만’ 고정되도록 만들어야 한다”(126).

내 안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서도 종교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꼭두각시도 사람이라 불릴 수 있다는 말”(48)과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면, 비로소 그분의 생명 자체가 영혼에서 촛불처럼 빛난다. 스쿠걸은 말한다. “아니, 그건 그분의 본성에 대한 참된 참여이며, 영원한 빛의 광선이며, 무한한 선하심의 대양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이다. 그리고 그것을 덧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 안에 거하신다’고, 또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형성되었다’라고 말한다”(49).

감각으로 육신의 삶을 특징짓듯, 영적 삶은 “영적인 것에 대한 일종의 감각 또는 감정적 설득”인 믿음으로 특징짓는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55)이다. 활동적인 생명 원리로서 이 신성한 생명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마음의 순결, 그리고 마음의 겸손에 있어서 우리를 더욱 그리스도처럼 만들기 위해 작용한다. 

참된 종교의 뛰어남

훌륭한 영적 고전은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려줄 뿐 아니라, 그것을 향한 열망까지 불타게 한다. 스쿠걸의 책이 가진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두 번째 부분에서, 그는 신성한(divine) 삶이 주는 아름다움을 설득력 있는 그림으로 묘사한다. 제대로 알기만 한다면, 신성한 삶이야말로 우리가 평생 진정으로 갈망하던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애초에 창조되었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은, 세상이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을 그는 심리학자 못지않게 이해하고 있다. 영혼에는 “사납고 꺼지지 않는 갈증, 즉 비물질적인 종류의 불 … 성가신 갈망이 있다”(112-13). 그리고 그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근본적으로 창조주를 향한 피조물의 갈망임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우리 시선의 방향을 돌린다. 

그는 묻는다. “하나님을 위해 만들어진 열정에 감히 맞서거나 그 열정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인간의 아름다움 또는 선함이 뭐가 있는가? 그건 한 꺼풀 벗겨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존재 전체를 다 잃어버릴 정도가 되려면 … 그분의 선하심에 나 자신이 온통 다 빠져서 삼켜질 정도가 되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나 무한한 기쁨이어야 가능할까?”(74, 78).

아, 무한한 즐거움! 하나님을 따르는 건 내가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내 젊은 시절을 기억한다. 그러나 시편 16편을 읽으면서 나는 전환점을 맞았다. “주님께서 몸소 생명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니,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이 넘칩니다”(시 16:11). 스쿠걸에 따르면, 이 구절은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자신을 존재의 창조자에게 온전히 바치고 거룩하고 헌신된 존재가 되었음을 자각하기 전까지 … 영혼은 결코 견고하고 본질적인 기쁨을 알 수 없다”(78).

하나님을 믿어서 놓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것처럼 잘못된 생각도 없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삶은 차마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큰 기쁨을 약속한다. 모든 욕망의 물줄기가 하나님과의 연합이라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며 깨끗하게 비워진다. 

실질적 인도

스쿠걸은 하나님과 연합한 생명의 유지에 관해서 실용적인 조언을 제시한다. 온 하늘이 우리를 위해서 관여하고 있으며 언제라도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왜 진정한 선과 보편적 사랑이 우리 영혼을 지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까?”(96). 우리에게는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다. “도랑에서 배회하며 전능하신 분께서 우리를 거기서 끌어내 주실 때까지 단지 기다리기만 해선 안 된다”(98).

첫 번째로, 영혼에 신성한 생명이 거하길 진정 원한다면, 죄를 피하고 유혹을 경계하라고 스쿠걸은 조언한다. 독을 마시면서 몸이 나을 거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는 우리가 영혼을 더 깊이 살피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자기 성찰 방법을 설명한다. 

또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는 기도와 묵상에 대한 조언을 제공하며, 더불어서 “숙고”하는 습관을 실천하라고 촉구한다. 배우자가 사랑하는 사람의 특성을 숙고하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완전성을 숙고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모여서 사랑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선물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숙고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친구에게서도 사랑스러운 점을 발견한다. 한번 상상해보라. 친구 속 아름다움은 고작해야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는다. 한 방울에도 이토록 달콤함이 넘친다면, 무한한 샘에는 도대체 얼마나 엄청난 달콤함이 들어있을까?”(122). 이런 사고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애정을 키울 수 있다.

이 땅의 계속되는 순례길에서 우리가 종종 절망에 빠지는 유혹을 받는다는 사실을 스쿠걸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처럼 약하고 미천한 피조물을 돕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다. 성령이 붙잡고 있는 곳이라면, 영혼 속 하나님 사랑의 가장 희미한 불꽃이라도 남은 곳이라면, 성령께서는 반드시 그 영혼을 지키신다고 그는 격려한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작은 불꽃도 결국에는 홍수도 끌 수 없는 커다란 화염으로 만들 것이다”(95). 

따라서 영적 고갈을 느낄 때면, 단순하게 기도할 수 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당신에게 지금 모습 그대로 바칩니다.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소유입니다.” 또는 스쿠걸의 조언처럼 할 수도 있다. “나를 내려놓자, 그리고 우리 자신을 그 분께 천 번을 드리자”(117).

책을 들고 읽으라

조나단 에드워즈는 인류에게 ‘참된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보다 중요한 질문은 없다며 신앙감정론이라는 위대한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스쿠걸을 읽었다. 신앙감정론을 쓸 때 과연 그 책을 생각했는지가 새삼 궁금하다.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해서 스쿠걸은 가장 훌륭하고 또 간단한 답변 중 하나를 제시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참된 종교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또 “사람의 영혼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스쿠걸의 이 작은 책은 충분히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 [복음기도신문]

원제: 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

브루스 힌드마쉬 Bruce Hindmarsh | Regent College(밴쿠버) 영성 신학 교수(James M. Houston professor)이다. Oxford University에서 철학박사 학위(DPhil)를 받았고(1993), Christ Church(Oxford)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1995-97). 초기 영국 복음주의를 주제로 한 저서 및 강연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의 책 The Spirit of Early Evangelicalism: True Religion in a Modern World는 2019 Christianity Today Book Awards의 History/Biography 분야 최고상을 받았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저작권자 ⓒ 내 손안의 하나님 나라, 진리로 세계를 열어주는 복음기도신문. 출처를 기재하고 사용하세요.> 제보 및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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