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통신]
교회 주일 학교 교사인 마마 카렌과 그녀의 세 딸이 몇 주째 예배에 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남편인 바바 카렌이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한 까닭이다.
가끔이지만 예배를 드리곤 했던 바바 카렌이 교회에서 뭔가 서운한 일이 있었는지, 가족들도 교회에 못 가게 한 것이다. 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마 카렌의 마음이 아무리 간절해도 가장(家長)인 바바 카렌의 명령 앞에서는 길에 떨어진 휴짓 조각처럼 아무 소용이 없다.
남편의 뜻을 거스르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것은 그녀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의 가족에게 합당한 지참금을 지불하고 그녀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한순간 그녀는 남편의 아내이기 전, 소유물이 되어 버린다. 가족으로서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와는 조금은 다르다.
마마 카렌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은 바바 카렌이 소유하게 되고, 바바 카렌이 바람을 피우거나, 또다시 지참금을 지불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고 해도 감히 반항하지 못하고 속만 태울 뿐이다. 행여 그렇게 남편이 떠난다고 해도 그녀는 엄마로서 묵묵히 아이들을 키워나가야 한다. 남편이 지참금을 지불한 대가이기 때문에 아내인 그녀로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뿐만 아니라 이곳의 여자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탄자니아에서 태어난 여자의 숙명이라고.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집이 많다. 부부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당연한데도 이곳에서는 귀해 보인다.
그렇게 따진다면 비록 교회는 못 다니게 하지만 일이 될 만한 것은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성실히 일해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바바 카렌은 훌륭한 남편인 셈이다.
교회의 청년 에리카가 약혼했다.
에리카의 약혼남은 에리카와 결혼하기 위해 200만 실링(한화 약 120만 원)의 지참금을 에리카 부모에게 지불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의 연봉이다. 앞으로 에리카도 마마 카렌처럼 그에게 귀속되어 살 것이다. 유치원 교사인 그녀의 월급은 모두 남편에게 상납 될 것이고 어쩌면 그녀의 신앙생활도 제약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약혼반지를 낀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이곳의 결혼문화는 마하리(Mahari)라는 지참금 문화이다. 남자가 지참금을 지불하고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참금의 액수에 따라 여자의 존재가치가 매겨진다. 돈 대신 소나 양 염소로 지참금을 대신하기도 한다.
‘그동안 예쁘게 잘 키운 딸을 나의 아내로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의미로 처가에 건네는 선물로도 해석할 수 있겠지만, 사랑과 신뢰가 아닌 지참금으로 시작하는 결혼은 많은 문제를 남긴다.
지참금 결혼문화의 피해자는 여자뿐만 아니다.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행여 연애 중 연인이 혼전임신이 되어 책임을 지고 싶어도 남자가 지참금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자신의 아이가 엄마와 함께 지참금을 지불한 남자와 결혼한다고 하더라도 아버지로서 어떤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여자 측 부모는 자기 딸이 평생 아이와 함께 단둘이 사는 한이 있더라도 지참금을 지불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게 지배적인 생각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부모들도 있겠지만.)
그동안 큰 노동력이 되어준 딸의 빈자리를 지참금으로 채워야 하는 여자 측 가족으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언젠가 받게 될 지참금을 생각하고 딸을 키워온 부모도 있을 것이다.
교회의 청년 삼손은 언젠가 만나게 될 아내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물론 결혼을 위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며 세상 모든 미혼 청년이 감당해야 할 삶의 자세이다. 하지만, 이것이 지참금 때문이라면 어쩐지 씁쓸하다.
물론 이곳의 청년들도 연애한다. 가슴 절절한 사랑을 나누며 ‘너 없이는 안 돼, 우리 영원히 함께해.’라는 약속도 나눈다. 하지만 정작 남자에게 지참금이 없다면, 모든 추억, 약속, 마음은 모래 위에 세운 탑과도 같다. 철저하게 연애 따로 결혼 따로이다.
이러한 지참금의 결혼문화는 사랑하며 한 몸 되어 천국의 모형이 되어야 할 가정의 의미를 훼손시키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의 존재가치를 왜곡시킨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뿌리 깊이 박힌 문화라는 관습은 진리를 외면하게 한다.
기도 제목을 물으면 한결같이 ‘하나님을 더 잘 믿고 더 순종하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하나님의 딸이 되고 싶다’라고 대답하는 네에마는 하나님의 사랑과 믿음으로 지참금 없이 결혼하고 싶다고 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한다.
지참금의 결혼문화는 신실한 네에마조차도 어쩔 수 없는 문제이다.
선교사는 나라가 아닌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복음을 전하기 전, 선교지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배려해야 한다. 하지만 생명이 되지 못한 복음은 문화의 대속물이 되고 만다.
복음을 왜곡하고 거스르는 문화는 복음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 문화를 선교사 나라의 문화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문화를 형성하는 이들의 세계관을 바꾸어야 한다.
능력의 복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고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바른 복음을 전하고 심어야 한다.
비록 하루아침에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더라도 복음이 들어간 청년들은 변화될 것이다.
자신들 자식에 대에서는 ‘마하리’ 대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이 가정의 바탕을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복음이 그렇게 할 것이다.
한 달 만에 마마 카렌이 세 딸과 함께 예배를 드리러 왔다.
부디, 마마 카렌의 어여쁜 세 딸, 캐서린, 카렌, 아이린은 복음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가정을 이루는 하나님의 상급이 되기를…….
김봄 | 기록하는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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