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아라비아 최초의 선교사 바울과 그의 메시지”(횃불트리니티 신학교 이슬람연구소의 <우리 형제 이스마엘> 제107호, 2011.4. 15)로 시작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주장과 아라비아 최초 선교사 바울의 메시지”(『ACTS 중동 연구』 제2권 2019)를 거쳐 [복음기도신문]에서 <대체신학 이슈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연구>로 발전되어 연재되었다(2021.10.-2022.1). 이번에 새로운 목차로 대폭 압축되고 보완되었다.
I. 서론
II. 바울과 아라비아
A. 아라비아 여행의 목적과 결과
B. 아브라함 언약(갈 3:6-29)
C. 하갈과 사라(갈 4:21-5:1)
D. 아라비아를 떠난 후부터
갈라디아서 집필 때까지
III.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과
대체신학이 아닌 확장신학
I. 서론
바울서신에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붙여졌던 ① 거룩한 백성(롬 1:7; 고전 1:2; 엡 1:1), ② 이면적인 유대인/ 참 할례당(롬 2:28ff ; 빌 3:3), ③ 아브라함의 자손(롬 4:11ff; 9:7ff ; 갈 3:7-8, 29), ④ 선택자(롬 9:33; 11:4f; 엡 1:4; 살전 1:3f; 살후 2:12-13), ⑤ 하나님의 성전(고전 3:16; 고후 6:16), 그리고 ⑥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이 언급되고 있다. 사도 바울이 이 용어들을 “하나님의 교회”(갈 1:13)를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바로 개혁/언약 신학자들이다.[1]
한편, 세대주의 신학자들은 ①부터 ⑤까지만 그렇다고 동의하고 ⑥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은 “하나님의 교회”(갈 1:13)에 붙여진 용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혈통적 후손들만이 성경 예언 성취의 주인공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운운하게 하면서 그 주인공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교회로 대체하도록 하는 신학이 바로 대체신학이라고 정의하며 비판한다.[2] 이스라엘과 교회가 서로 다른 그룹으로 서로 다른 운명을 지닌 별개의 존재이기에 교회는 결코 이스라엘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세대주의 신학의 핵심이다.[3] 다음은 “대체신학”과 더불어 표현되는 강의나 글, 또는 책의 제목들이다.
“악”, “마귀”, “허구”, “거짓”, “누룩”, “성경”, “베일”, “위험성”, “이스라엘”, “오류와 모순”, “깨어나라”, “불편한 진실”, “루터와 히틀러”, 마귀의 신학”, “사탄의 장난”, “사탄의 전략”, “회복신학으로!”, “강탈, 도둑 신학’”, “이스라엘을 열라”, “사탄의 최대의 걸작품”, “이스라엘을 못 보게 만든 신학”, “교회에 스며든 사악한 교리 중 하나”, “한마디로 웃기지도 않는 신학”.
갈라디아서는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 여러 교회를 대상으로 보낸 편지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이방인을 위한 사도직을 받았으며(1:12) 이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곧바로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지낸 사실을 매우 강조한다(1:17). 마틴 헹엘(Martin Hengel)은 바울의 초기 사역 연구를 통하여 아라비아 교회가 존재하였을 것이라 논증하였다. 그는 훗날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아 개척했던 선교지의 교회들을 재방문하였던 것처럼 수리아와 길리기아의 여러 교회를 섬기는 동안에도(갈 1:21~24; 행 15:23,41) 다메섹 교회와 아라비아의 교회들을 적어도 몇 차례 방문하였을 것이며, 특별히 그의 방문길에 바나바가 동행하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4]
갈라디아서에는 “아브라함 언약”(3:1~29)과 “하갈과 사라”(4:21~5:1)와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 등의 여러 신학적 주제가 나온다. 이 주제들의 핵심은 아브라함의 진정한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브라함의 종말론적 대가족에 속하게 된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이 주제들을 아라비아에서 처음으로 성찰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아라비아인들과 공유하였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사실을 추론하고자 한다. 물론, 그 아라비아인들은 바로 그가 개척한 아라비아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거나 속할 대상들이었다. 우리는 그가 아라비아 교회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지닌 새로운 정체성을 보편화시키는 가장 극명한 예가 되는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 주었다는 사실을 논의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갈라디아서 6:16과 그 전후 구절을 주해한다.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는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이다(갈 1:1~3). 바울은 첫 축도를 “이 규칙을 행하는 자들”(A)에게 와(καί) “하나님의 이스라엘”(B)에게 한다(갈 6:16). 헬라어 “카이”(καί)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A=B(전자) 또는 A+B(후자)이다. 두 번째 축도는 “형제들”(C)에게 한다(갈 6:18). 전자에 따르면,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가 이며, “이 규칙을 행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며, “형제들”(C)이다. 갈라디아서의 전체 문맥적으로 볼 때 전자가 옳다. 갈라디아의 여러 교회가 이 서신의 수신자이기에 그들이 바로 축도의 대상이 되어야 함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주의자들은 그들의 신학에 기초하여 전자를 대체신학이라 비판하며 후자를 주장한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의 혈통적인 후손들로 국한되지 않고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스마엘의 장자인 느바욧의 후손들로 구성된 아라비아 교회로 대표되는 모든 이방인 교회로 확장된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신학은 대체신학이 아니라 확장신학이다. 세대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대체신학”이라는 비판적 용어보다는 “확장신학”이라는 용어 등이 더 적절하다고 제안한다.
II. 바울과 아라비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게 된 그의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곧바로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지낸 사실을 강조한다(1:11~18). 그리고 “아브라함 언약”(3:1~29)과 “하갈과 사라”(4:21~5:1) 등에 대한 신학적 주제를 다룬다. 그의 아라비아 여행의 목적과 결과부터 논의하여 보자.
A. 아라비아 여행의 목적과 결과
왜 바울이 아라비아를 택하여 갔는가? 거기에서 그는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하였는가? 그 결과는 무엇인가?
1. 아라비아 여행의 목적(갈 1:15~19)
바울이 다메섹에서 아라비아를 택하여 갔던 주된 이유가 그가 소명으로 받은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소명을 확인하거나 사도직 수행을 준비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매우 많다.[5] 그들에게는 바울의 첫 선교지로서 아라비아나 그 결과로서의 아라비아 교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 그들은 아라비아 사막의 위치가 일찍이 모세와 엘리야가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었던 ‘하나님의 산 호렙’ 근처였던 점만을 주목한다(참조, 출 3:1; 왕상 19:8 참조). N.T. 라이트(Wright)는 바울이 ‘아라비아’라는 단어로써 시내산을 뜻했다고 추정하면서, 이 여행에 대해 이렇게 제시한다.
사울이 그가 받은 새로운 충격적인 계시가 모세 언약의 성취라는 것을 그 언약이 비준받은 그곳에서 확인받기 위해 시내산에 간 것이며, 그는 엘리야가 그랬듯이(왕상 19장) 새로운 왕이신 예수 메시아를 선포하는 임무를 가지고 다메섹으로 돌아왔다.[6]
김세윤은 이와 같은 라이트의 주장에 대해 “라이트는 갈라디아서 1:13~17에 ‘엘리야 이야기의 반향들이 적다’라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그 반향들이 ‘아주 밀접하고’ 의미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지적하면서[7] 다음과 같이 비평한다.
시내산으로 순례? 그러나 열왕기상 19장에는 엘리야가 ‘아라비아’로 갔다는 언급이 없다; 그는 그저 ‘광야’로 갔다(왕상 19:4), 그리고 나중에 ‘호렙산’에 갔다(왕상 19:8)고만 되어 있다. 다른 한편, 바울은 자신이 ‘시내산’이나 ‘호렙산’으로 갔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아라비아’로 갔다고 말한다. 바울이 동일한 편지에서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은 하갈이며 현재의 예루살렘에 해당한다”(갈 4:24~25)라고 부정적인 의미로 언급할 것이면서 갈라디아서 1:17에서 ‘아라비아’라는 말로서 시내산을 의미하려고 하였을까? 모세와 엘리야에게 ‘시내산’이나 ‘호렙산’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바울에게는 이 단어들은 정반대의 의미였다…[8]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그의 소명 사건과 관련된 구약의 여러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신학적 사색과 탐구의 과정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3년 내내 그 과정만 지속되었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갔던 그의 목적이 그의 소명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소명에 응답하여 이방인의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었다.[9] 사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홀연히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충격적인 만남으로 인하여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도 못하였다(행 9:11). 하지만 주님께서 그를 위해 특별히 보낸 다메섹 교회의 지도자 아나니아가 그를 만나줌으로 육신의 눈이 회복되고 강건해졌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아 영혼의 눈도 밝아졌다(행 9:17~18). 또한, 그는 주님께서 친히 아나니아에게 그의 소명에 관하여 주셨던 말씀도 전달받고 그의 사명을 더욱 객관화시킬 수가 있었을 것이다.
사실 바울은 특별한 계시를 받았던 적이 없는 시절에도 유대교에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었다(갈 1:13~14). 그의 다메섹 소명 사건과 자신의 아라비아 선교사역의 관련성에 대해서 그는 이렇게 밝힌다.
바울의 이 진술에는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갈 1:20)라는 말이 덧붙여진다. 그의 이와 같은 자신의 소명 소개(갈 1:15~16)는 일차적으로 구약의 선지자 이사야가 소개하는 여호와의 종이 소명 받은 것(사 49:1,6)과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구약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소명 받은 것(렘 1:5)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10]
김세윤은 갈라디아서 1:15~17에서 바울이 그의 소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여호와의 종의 두 번째 노래인 이사야 49장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종의 노래의 첫 번째 노래인 이사야 42장도 똑같이 그의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1] 편의상 1, 6, 11절에 주목하여 보자.
이사야가 말하는 이방인은 느바욧, 게달, 셀라의 주민 등으로 대표된다(사 42:11; 60:7 등; 창25:13 참조). 느바욧은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장자이고, 게달은 둘째 아들이다(창 25:13). 이사야 42:11의 ‘셀라’가 70인 역(LXX)에서는 반석이라는 뜻을 지닌 ‘페트라’이다.[12] 셀라의 주민들은 곧 페트라의 주민들이다. 바울의 첫 선교지인 아라비아가 곧 페트라를 수도로 하는 나바티아 왕국이라는 뜻이다. 이 왕국은 BC 2세기에 세워진 왕국으로서 다메섹 인근에서부터 히자즈(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 지역) 남방으로 펼쳐있었다.[13]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자신과 자신의 사명을 이해하는데 이사야의 여러 예언은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방인들이 하나님께서 비추시는 구원의 빛 가운데로 나아올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살펴보자.
이제 바울이 그의 이방인을 위한 사도직 수행을 먼저 아라비아로 가서 하려고 하였던 이유를 이사야 60장 7절을 통하여 살펴보자.
이 구절에 따르면, “게달의 양 무리와” “느바욧의 숫양”이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에 드려지고 하나님께 열납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집이 영화롭게 된다. 로마서 15:16을 통해서 볼 때, 바울에게 그가 다메섹 체험 후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바쳐질 제물로 소개되는 “게달의 양 무리”와 “느바욧의 숫양”의 실체와 그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의 정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다.[14] 그 제물들의 실체는 게달과 느바욧, 즉 이스마엘의 후손들이 길렀던 양떼들 정도가 아니라 바로 이스마엘의 후손들 곧 사람들이며, 그들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장은 다름 아닌 바울 자신이었다. 또한, 로마서 11:1-2를 통해서 볼 때, 사람은 동물이 죽음을 통해서 제물이 되는 것과 달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거룩한 삶 자체를 통해서 제물이 된다.[15] 또한, 사람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쳐지는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새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다(고전 3:3~17, 6:19; 고후 6:16 등).[16]
로마서 15:16에서 바울이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칭하였는데, 그 ‘일꾼이라는 말에서 나온 동사가 ‘오로지 종교적인 의식과 예식에 대해서만’ 사용되며, 신약에서 유대의 제사직과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둘 다에 사용되었다.[17]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제물로 드리는 것”, “받으실만하게 하려 하심” 등과 같이 제사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18] 바울이 자신의 직무가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고 자각하게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은혜로 말미암아”(롬 15:15)라고 밝혔던 것처럼, 곧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메섹 도상까지 그에게 친히 찾아오신 사건으로 인하여 가능하게 되었다(cf. 롬 12:3; 15:15; 고전 3:10; 갈 2:9; 엡 3:2, 7~8).
로마서 15:16의 중요한 구약성경 배경이 바로 이사야 66:20~21에 나타난 이방인들이 종말의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한다는 예언이다. 이 예언은 바로 하나님께서 온 세계 이방인들을 그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오게 하여 그의 집에서 예물을 바치게 하며 그들 가운데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인이라고 하지만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서 제사장이 결코 될 수가 없었다(롬 11:1; 빌 3:5). 그런데 그는 자신이 곧 제사장이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이사야 66장의 예언의 말씀이 진정한 성전 자체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인하여 함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교회를 통하여 성취되고 있음을 이제 그가 이방인의 사도로서 선포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사야 66:1~2의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겠다. 일찍이 바울 앞에서 그 질문을 외쳤던 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예루살렘 성전 모독죄로 체포되었던 스데반이었다(행 6:13; 7:48~49).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진정한 성전이라는 것이다(참조, 마 26:61; 27:40, 58; 막 11:12~23; 막 14:58; 15:29; 요 2:19; 고전 3:16; 고후 6:16).[19]
그로부터 약 25년이 지난 후에 바울 그 자신에게도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힌 죄로 체포되는 사건(주후 57년경)이 발생했다(행 21:28). 그때 그는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약 25년 전의 스데반의 죽임 당한 사건을 언급하였다(행 22:20). 그것은 그가 스데반이 성전 모독죄로 죽임당하기 직전 선포하였던 그의 설교를 통하여 던졌던 하나님의 질문(사 66:1~2), 즉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와 그에 대한 스데반의 답을 생생하게 기억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바울은 다메섹에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 그의 사도직 속에는 곧 제사장직도 포함되며 그가 몸을 담고 있는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며, 그의 제물은 죽은 동물들이 아니라 곧 사람들로서 특별히 이방인들이다. 그들이 제물이 되는 것은 죽음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 자체를 통해서 된다. 바울은 그의 제사장적 사도직을 아브라함의 서자 이스마엘의 후손들인 아라비아인들, 즉 나바티아 왕국의 백성들을 상대로 수행하기 위하여 갔다.
2. 아라비아 여행의 결과(고후 11:32~33; 행 9:23~25)
바울은 고린도후서 10장에서 그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11장에서 자신과 거짓 사도들을 비교하고(1~15), 그가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견뎌온 고난의 긴 목록을 나열하다가(16~30),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느니라”(31)라고 고백한 후에 아레다 왕으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았던 이야기로 그의 고난의 긴 목록을 마무리한다(32~33).
이 구절의 아레다 왕은 아레다 4세로 나바티안 왕국의 왕이다(주전 9년~주후 40년).[20] 요세푸스(Josephus)에 따르면, 나바티안인들은 이스마엘의 첫째 아들 느바욧의 후예들을 비롯한 여러 이스마엘의 후손들이다.[21] 신약성경의 아라비아인들로서 오순절 날 성령 강림으로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설교하였던 현장의 “아라비아인들”(행 2:11)도 곧 나바티아 왕국의 백성들이다.[22] 한편, 바울의 제자 누가는 다메섹에서 바울을 죽이려고 하였던 자들이 유대인들이라고 밝히며 그때 그를 도와 탈출할 수 있도록 하였던 자들이 바로 그의 제자들이라고 밝힌다.
바울의 고백(고후 11:32~33)과 누가의 보도(행 9:23~25)를 통합하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① “여러 날”(행 9:23)은 곧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사도직을 수행하였던 “삼 년”이다(갈 1:18). ② 바울의 사도직 수행을 통하여 가시적이고 역동적인 아라비아 교회 공동체가 탄생되었다. ③ 이 교회 공동체를 통해 거듭나게 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그들이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④ 이에 대해 아레다 왕이 심기가 불편하게 되어 바울을 체포하려고 하자 그가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철수하였다. ⑤ 이를 아레다 왕이 다메섹 주재 그의 고관에게 통보하자 그 고관이 유대교의 변절자가 된 그에 대해 증오심을 품고 있던 유대인들을 합세시켜 그를 체포하도록 하였다. ⑥ 그때 그를 도와 예루살렘으로 피신하도록 하였던 자들이 바로 그의 제자들이었다(행 9:23~25). 이는 그가 다메섹 교회 공동체와 더불어 아라비아에서 그의 사도직 수행을 3년 동안에 걸쳐 신실하게 수행하였다는 증거이다. ⑦ 그의 제자들은 그의 아라비아 사역 현장에 단기 또는 장기로 동역하였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⑧ 그의 제자들은 그가 다메섹 사건과 아라비아에서 사역하며 축적한 그의 신학적 통찰들에 대한 이해가 컸을 것이다.
바울이 다메섹 사건의 결과로[23] 그리고 아라비아 3년 사역의 결과로 축적한 그의 신학적 통찰들이 매우 많았을 것이다.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아라비아 또는 아라비아인들과 관련해서 추론할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고자 한다. 그것은 곧 “아브라함 언약”(갈 3:1~29), ”“사라와 하갈”(갈 4:21~5:1), “하나님의 이스라엘”(갈 6:16)이다. <계속> [복음기도신문]
[1] 이한수, 『바울신학 연구』, (서울: 총신대학출판부, 1993), 92.
[2] Craig A. Blaising, “The Future of Israel as a Theological Question,”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44:3 (2001): 435.
[3] Benjamin L. Cladd, 『하나님 백성 신학』, 전광규 역 (부흥과 개혁사, 2021), 11.
[4] Martin Hengel, “Paul in Arabia”, Bulletin for Bilblical Research 12. (2002). 65-66. 이 Hengel 박사에 대해 N.T. 라이트는 무인도에서 단 한 명의 동반자를 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은 곧바로 Hengel 박사를 지목하겠고 하였다(필자가 유튜브를 통해 들은 그의 강의에서).
[5] J. B. Lightfoot, E. J. Goodspeed, Burton, H. Ridderbos, H. C. Kee, A. Deissmann, N. Taylor, Charles C. Ryrie, James Montgomery Boice, John R. W. Stott, Charles R. Swindoll, N. T. Wright 등.
[6] N.T. Wright, Paul: A Biography, (Sanfransico: HaprerOne, 2018), 63-64.
[7] 김세윤, 『칭의와 하나님의 나라』, (서울: 두란노, 2020). 202. 이 책 부록으로 <N. T. Wright, Paul: A Biography에 대한 논평>이 실려있다. 이 논평은 2018년 11월 6일 미국 휴스턴(Houston) 소재 레니어 도서관 (Lanier Theological Library)에서 패널 토론회 때 발표된 것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zg9Yb6zRTfs).
[8] 김세윤, 『칭의와 하나님의 나라』, 202.
[9] O. Betz, G. Bornkamm, M. Hengel, Maria Schwemer, John B. Polhill, F. F. Bruce, John Pollock, Jacob van Bruggen, John McRay, Udo Schnelle, Howard Marshall, Ian Paul, Rorbert Raymond, 김세윤 등.
[10] 김세윤, 『바울신학과 새 관점』, 169-210.
[11] 김세윤, 『바울신학과 새 관점』, 171.
[12] 김세윤은 자신이 이사야 42장의 MT와 칠십인역 본문을 비교하면서 그의 생각들을 피력했을 때, 칠십인 역 이사야 42:1에 나오는 페트라를 먼저 발견해 낸 사람은 사실상 O Betz 교수이며, 그 후에 Hengel 교수 역시 여기에 제시된 견해가 상당히 그럴듯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바울신학과 새 관점』, 175. 현재 이 페트라는 요르단의 최대 명소로 유네스코가 공인한 세계문화유산이다(1985년).
[13] Martin Hengel and Anna M. Schwemer, Paul between Damascus and Antioch: The Unknown Years, trans. by John Bowden (London: SCM Press, 1997), 386, Anchor Bible Dictionary, vol 4, 970-73.
[14]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한국신약학회/NTSK 신약논단 2009년 봄호(1호) www.iktinos.org/seminar/upfile/070920김철홍.pdf, 3-8.
[15]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7.
[16]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2-3.
[17] John Sott. 『로마서 강해』, 정옥배 역 (서울: IVP. 1996). 506.
[18] John Sott. 『로마서 강해』, 506-507, 김철홍 3. James D. G. Dun. Romans 9-16, World Biblical Commentary 38B. (Waco: Word, 1998) 867-868.
[19] 김철홍.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까닭은?”, 6.
[20] 아레다 IV 왕은 다메섹 동남쪽 아라비아 지방 중심으로 펼쳐졌던 나바티안 왕국의 왕으로서 헤롯 안디바의 장인이기도 하였다. 로마 황제 갈리굴라는 다메섹을 아레다 IV 왕에게 주었다.
[21] 김세윤, 『바울신학과 새 관점』, 175.
[22] Josephus, Ant. 1.220-21; cf. Hengel and Schwemer, Paulus, 190. Martin Hengel, “Paul in Arabia”, 50. 재인용.
[23]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던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소개하였다(고후 4:4; 골 1:15; 참조, 빌 2:6). 김세윤은 그의 박사학위논문/책 “바울 복음의 기원”에서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독특한 그리스도관, 즉 형상-기독론을 갖게 되었으며, 바울의 형상-기독론은 그의 아담-기독론의 근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또한, 바울의 형상-기독론이 그의 아담- 기독론의 근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변화-구원론의 기초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정형남 | 전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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