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화민족 부흥’에 열광했지만, 코로나 거치며 실망감 분출
방역 완화에도 더딘 경제 회복과 취업난 가중으로 인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창한 ‘중화민족 부흥’에 열띤 호응을 보냈던 중국 젊은이들의 애국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고도 경제 성장의 성과를 누리며 자란 중국의 20∼30대는 과거 고난의 세월을 겪었던 그 어느 세대보다 중화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민족주의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전쟁을 대승한 것으로 묘사한 2021년 개봉 영화 ‘장진호’의 중국 역대 최고 흥행 기록에 이어 속편인 ‘장진호 수문교’와 중국의 ‘우주 굴기’를 다룬 ‘유랑지구2’ 등의 애국주의 영화가 잇따라 흥행에 성공한 데는 주력 소비층이자 애국심이 충만한 젊은 층 관객들이 대거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첨예한 가운데 중국을 견제하는 서방에 대해 비판하고 애국주의 여론을 조성하며 국론 통일의 전위대 역할을 해 온 것도 중국의 젊은 층이다.
신장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거나 신장에서 생산한 면화 사용을 중단했다는 이유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 아디다스 제품 불매운동을 주도한 것은 공산당 청년 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었다.
중국 젊은 층이 이에 적극 호응하면서 불매 운동 대상이 된 서방 기업들의 중국 내 매출이 급감했고, 일부 업체는 중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애국주의에 열광했던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일 공청단 중앙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공청단원은 7천358만명으로, 1년 전보다 13만2천명이 감소했다.
주력군인 학생단원(4천16만3천명)이 전년보다 8.3% 급감했기 때문이다.
기업과 지역사회 단원들은 증가했지만, 유독 학생 단원만 감소한 것도 이례적이다.
19명의 사상자를 낸 작년 11월의 신장 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발해 일어난 ‘백지 시위’를 주도한 것도 대학생들 중심의 젊은 층이었다.
지난 3년간 반복된 코로나19 확산과 엄격한 방역 통제에 따른 경제 침체와 실직·취업난, 방역 완화 이후에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제 상황에 실망한 젊은 층이 공산당에 등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베이징 등 대도시들이 걸핏하면 전면 봉쇄되고, 부동산·사교육·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에 대한 고강도 규제 등으로 관련 기업들이 대대적인 감원에 나서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의욕을 잃은 청년들 사이에 ‘탕핑'(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탕핑족이 생겨났고, 문호 루쉰의 소설 ‘공을기'(쿵이지)에서 따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고 체념하는 ‘쿵이지 문학’이 유행했다.
올해 4월 청년 실업률은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인 20.4%까지 치솟았다.
2018년 10.1%였던 데서 4년 새 두 배로 증가한 것이다.
방역 완화 이후 경제가 회복돼 취업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던 기대와 달리 일자리를 찾지 못한 대학 졸업생들은 노점에 좌판을 벌이거나 허드렛일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작년 11월 허난성 한 국유 기업 담배공장이 신규 채용한 생산직의 30%가 석사 학력자였고, 지난 2월 산둥성의 한 국유 기업이 1천명을 모집하는데 10만명이 몰려 비좁은 취업 문을 실감하게 했다.
이런 실정인데도 당국은 코로나19로 곤경에 처한 서민들의 민생고 해결이나 경제 회복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전 국민에게 코로나19 재난 지원금을 지원해 소비를 진작시킬 것을 건의했지만, 중앙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지방정부들이 산발적·제한적으로 코로나19 지원금을 방출한 것이 고작이었다.
최근 딩쉐샹 부총리까지 나서 청년층 취업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지만, 당국이 내놓는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구호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국이 내놓은 관영 기관·국영 기업 고용 확대, 신규 채용 민간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원, 청년 창업 자금 금리 우대 혜택 등이 그렇다.
이런 와중에 당국이 농촌행을 독려하고 나선 것이 청년층의 실망감을 더 키우고 있다.
광둥성은 2025년 말까지 대졸자 30만명을 농촌으로 보내 풀뿌리 간부·자원봉사자로 일하게 하는 계획을 세웠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지난 29일 보도했다.
취업난이 심화할 때마다 당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했던 젊은이들의 귀향과 농촌 구직활동 독려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이는 중국 당국이 문화대혁명(1966∼1976년) 때 마오쩌둥이 노동을 통해 학습하고 농촌에서 배우라는 취지로 지식인과 학생들을 강제로 농촌으로 대거 보냈던 ‘하방(下放)’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실업과 취업난 해결을 위해 당국이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하방뿐”이라거나 “농촌으로 가는 것은 정부가 도와주지 않아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비판의 글이 올라온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30일 “실업과 취업난 문제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중국 경제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일자리를 잃거나 구하지 못한 청년층이 분노하게 되면 당국에 큰 악몽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홍콩 힌리치 재단의 전문가 앨릭스 카프리는 중앙통신사에 “백지 시위가 의미하는 것은 중국의 도시에서 분출된 분노”라며 “잘 교육받은 청년층이 들고일어난다면 공산당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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