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믿음의 글] 그리스도 안의 삶

사진: Jeongim Kwon on Unsplash

인생에서 최상의 축복은 주님께 속한 삶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은 주님께 속하지 않거나, 주님께 속함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은 소속으로 이루어집니다. 큰 나라, 귀족 집안, 유명 도시 사람이 되거나, 명문대 출신이 되고, 번듯한 기업 직원이 되거나, 현명한 아내가 있고, 번성한 교회를 다니고, 뜻깊은 사회사업을 하는 것을 사람들은 기뻐하고 자랑거리로 여깁니다. 이렇게 소속되어 사는 것이 사람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나 잘못된 생각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주님께 속한 삶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놀라우신 분에게 속해 있습니다. 물론 다른 것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께 속함’이 핵심입니다. ‘주님께 속함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의무를 망각하고 흐리멍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결혼식장을 나오는 신랑 신부가 어째서 더없이 기뻐하고 즐거울까요? 그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속함이 최고의 기쁨을 줄 때, 사람은 서로에 대해 만족을 느낍니다. ‘주님께 속함’은 가장 높은 차원의 속함입니다. 모든 사람의 결속은 ‘주님께 속함’에 종속됩니다.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께 속함’입니다. ‘주님께 속함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한순간의 경험이 아닙니다. ‘주님께 속함’은 일생토록 끊임없이 이어지며, 일생토록 충족감을 주는 경험입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이 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주님께 속하는가?

주님과 어떤 속함의 관계를 맺느냐에 대한 대답을 보면, 신앙생활을 잘하는지 어떤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다가 두 사람이 친해지는 것과 같은 순전히 외적인 관계로 ‘주님께 속함’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속함은 성경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주님께 속함’을 이보다 훨씬 친밀한 관계로 생각하지만, ‘주님께 속함’이 사람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께 속함’을 유지하려면, 사람이 신실하거나 사람이 주님을 꼭 붙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난간에서 떨어지는데, 힘센 사람이 팔을 뻗어 아이를 건지려 하면, 아이가 작은 손가락에 온 힘을 주고 그 사람의 손을 잡아야 하나요? 아니면 그 사람이 아이의 손을 힘껏 잡아야 할까요? 전자라면, 아이의 안전은 아이의 힘에 달려 있으니, 아이는 위험해질 것입니다. 후자라면, 아이의 안전은 아이를 잡는 사람의 힘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형편으로 볼 때, 어느 쪽이 성경적일까요?

아무도 내 손에서 저희를 빼앗지 못하느니라”, “아버지 손에서 저희를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8,29)

하지만 이것도 속함의 참된 실상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 언약에 의하면, 우리는 단순히 주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있습니다.

I — N = l-dentificatio-N
(안에 있음 = 하나가 됨)

이 작은 ‘안에(in)’란 말은 신약성서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단어라고 주장할 만합니다. ‘안에(in)’란 단어의 의미를 모른다면, 새 언약의 가장 중심된 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구주와 믿는 자 사이에 비밀스러운 생명적인 결속을 맺어주십니다. 그리고 ‘안에’라는 작은 말은 이 결속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안에’라는 것이 어떤 의미입니까?

‘그리스도 안에’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으로 읽으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을 보며 말을 바꾸어 읽어보십시오. 에베소서 1~3장도 말을 바꾸어 읽어보십시오. 요한복음 15장의 ‘안에’는 예수님이 사용하신 것인데, 에베소서에서 사도 바울은 ‘안에’를 최상위의 개념으로 사용했습니다.

In(안에 있음)이라는 단어를 I-n-d-e-n-t-i-f-i-c-a-t-i-o-n(하나가 됨)이라는 단어로 늘여 보면, ‘안에(in)’의 참된 의미가 드러납니다. ‘안에’가 ‘하나 됨’의 의미를 가지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 결과입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속함의 의미입니다.

다시 앞서 말씀드린 예화로 돌아가 봅시다. 구원자의 손이 우리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지체인 손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께 속하면 이렇게 됩니다.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들어 올려서 당신의 일부가 되게 하십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은 성육신하심으로 우리의 수준으로 내려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영광의 보좌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당신의 영을 우리 심령에 부으심으로, 우리를 주님 자신과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성품과 생명은 주님의 것입니다. 그 결과적인 관계를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2장 12〜27절에서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이같이 우리는 ‘주님 안에’ 있고 우리는 주님과 온전히 하나입니다.

하나 됨의 세 가지 비유

이 시점에서 성경의 가장 깊은 진리가 나옵니다. 이 진리가 너무도 중요하므로, 주님은 모든 사람이 이를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스승이신 성령님은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이 진리를 가르치실 때, 직설적이고 일반적인 진술로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하면 너무 어렵고 난해하여, 우리가 그 말씀의 능력을 힘입기는커녕, 의미 파악도 못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을 비유로 하여, 진리를 보이셨습니다. 비유가 빛을 들이는 창문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익히 알고 보이는 것을 비유로 사용하여, 우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성령님은 포도나무와 가지, 머리와 몸, 신랑과 신부의 비유를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십니다. 우리는 가지입니다.
주님은 머리이십니다. 우리는 몸입니다.
주님은 신랑이십니다. 우리는 신부입니다.

이 비유는 연속성이 있는, 삶의 세 영역을 보여줍니다. 즉 식물, 몸, 그리고 사회적 관계입니다. 이 관계들은 각각 온전히 하나 됨과, 완전한 연합을 총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주님께 속함은 피할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 없는 가지는 없습니다.
머리 없는 몸은 없습니다
신랑 없는 신부는 없습니다.

하나 됨과 속함이 없으면, 신앙생활이 되지 않습니다. 전혀 불가능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속해 있듯이, 우리도 주님께 속해 있습니다. 몸이 머리에 속해 있듯이, 우리도 주님께 속해 있습니다. 신부가 신랑에게 속해 있듯이, 우리도 주님께 속해 있습니다. <Norman B. Harrison – 룻선교회 제공>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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