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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글] 보좌로 가는 길을 막는 대적들

▲ 사진: Pablo Heimplatz on unsplash

내가 앞 장에서 쓴 것을 이제 다시 뒤엎는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보좌로 가는 길이 쉽다고 했는데, 이제 여기서 나는 그 길에 너무나 큰 어려움이 가득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비할 수 없이 아름답고 풍요로운 땅입니다. 그 땅을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수 1:3)

하나님은 하늘에서 확정하신 칙령을 선포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들어가서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말씀으로 인치신 하나님의 선물은 이스라엘의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워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을 요새에서 몰아내어야 합니다. 아낙의 장대한 자손들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여리고를 포위하고 견고한 성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수천의 철병거를 부수고, 싸움에 능한 용사들을 진멸해야 합니다. 싸워야 한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싸우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여호수아처럼 일어나서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갈렙은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라고 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겁먹고 두려워서 물러갈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갈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요단은 갈라지고, 여리고는 무너지고, 그 땅의 장대한 족속들은 내쫓기고, 왕들은 굴과 숨은 곳에서 끌려 나와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왕들의 목에 발을 얹어야 합니다. 우리는 들어가서 땅을 취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우리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대로, 보좌는 우리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좌는 그리스도의 것이며, 엄청난 대가를 치르시고 사신 우리도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들어 올려, 주님과 함께 하늘에 앉혀졌습니다.

참으로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은 쉽고도 어렵습니다. 이겨야 할 장대한 족속이 있습니다. 보좌로 가는 길에서 우리는 정사와 권세자들과 싸워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에서 우리에게 상기시켰듯이, 이것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한 것입니다. 에베소서의 핵심 주제는 교회가 누리는 보좌의 특권입니다. 그러니 전쟁을 선포하는 말씀으로 에베소서가 끝맺음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1,13)

에베소서는 우리를 놀라운 은혜로 주신 보좌 앞의 삶으로 초청하는 서신서입니다. 그러니 에베소서가 이렇게 끝맺음을 하는 것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왜 전쟁이 있을까요? 왜 평화가 아니라 싸움일까요? 왜 말할 수 없는 기름과 충만한 영광이 아닐까요?

그 이유는 너무도 단순합니다. 사탄과 그 추종자를 가장 분노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이 보좌 앞에 자리 잡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믿는 이가 보좌 앞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수만의 마귀를 동원해서 전쟁을 벌입니다.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주권자이신 주님을 모시고 보좌 앞의 삶을 살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옷 입게 됩니다. 그러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이 우리 앞에 서지 못합니다. 보좌 앞에 사는 그리스도인은 대적을 능히 이기는 권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말하면, 대적 마귀의 억압은 산과 같을지라도 뽑혀서 바다에 던져집니다.

그러므로 믿는 이가 보좌 앞에 사는 권리와 보좌 앞의 특권을 가지지 못하도록, 사탄은 지옥 전체를 동원하여 대적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다루겠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요지는 이것입니다. 믿는 이는 능력으로 부활 승천하신 구주와 하나 되어 보좌 앞에 살기로 결단하고, 자신을 주님께 드리며, 믿음의 첫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명히 시험과 불확실함과 갈등입니다.

처음에는 형편이 이전보다 더 나빠졌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더 밝은 빛을 누리기는커녕, 칠흑과 같은 어둠에 짓눌릴 수 있습니다. 비난의 홍수가 쏟아져 올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위치에 자리 잡기도 전에, 의심만 가득해집니다. 악한 자로부터 화전의 공격을 받다 보니, 존재의 근원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요단강 반대편에 머물고 싶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선하게 풀립니다. 교회의 위대한 선진들이 흔히 말하듯이, 믿는 이는 철저하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만을 모든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믿는 이는 주님 때문에 주님 사랑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육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자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칼로 무엇보다 자만하는 마음을 베어버려야 합니다. 믿음의 시험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사자가 포효하여도, 보좌 앞의 삶에서 기대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아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순전한 믿음으로 보좌를 붙들어야 합니다. 강력한 여리고 군대가 잠복하고 있어도 순전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보좌 앞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또 수만의 상황과 느낌이 요동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할지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사실이라고 믿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면 폭풍우를 뚫고 하늘의 밝은 햇살 속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조종사처럼, 믿는 이는 모든 것을 지나 그 모습을 들추어내게 됩니다. 이때, 믿는 이는 이전에 알지 못하던 영적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믿는 이는 이전의 억압적인 환경을 발 아래 둘 것입니다. 믿는 이의 삶을 차지하고 짓누르던 모든 대적은 전장에서 도망갈 것입니다. 믿는 이는 도무지 가능하리라 꿈도 꾸지 못한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새로운 우주가 나타난 것입니다.

당연하지만 보좌의 은혜 없이는, 보좌 앞에 사는 권리와 보좌 앞의 권세를 소유하지 못합니다. 이제 한층 높은 차원의 싸움이 있을 것입니다.

요단을 건너기 전에는 육을 인한 투덜거림과 패배가 있었고, 자아에 사로잡힌 연고로 유리방황함이 있었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그칩니다. 영은 자유함을 얻습니다. 육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을 뿐 아니라, 지금도 못 박혀 있습니다.

앤드류 머레이가 말한 ‘소멸케 하는 십자가의 권능’으로 계속 처리하지 않으면 보좌 앞의 삶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육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인의 증거와 섬김과 사역은 수천 배의 효력을 가질 것입니다(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역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위기가 한 번 지나갔다고 해서, 위기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리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은 보좌 앞의 삶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보좌 앞의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마귀는 반드시 다시 나옵니다. 마귀는 할 수 있는 온갖 짓을 다합니다.

마귀의 권위를 정말 위협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유일하게 보좌 앞의 삶이 갖는 권위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육의 영향권 아래 깨어있지 못하여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보다는 거짓된 모습으로 사는 경우가 수없이 많아도, 보좌 앞의 삶은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보좌 앞의 삶이 갖는 권위는 마귀의 권위에 정말 위협이 됩니다. 마귀는 이것을 알기 때문에, 보좌 앞의 삶을 막기 위해 모든 군사력을 동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하늘에 예비 된 보좌에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보좌 앞의 삶을 누렸더라도(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이의 전형인), 이스라엘 백성이 기브온 족속에게 속은 것처럼 심각한 패배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갈보리의 빛을 새롭게 받아들여야, 육이 죽습니다. 갈보리의 처리와 보좌의 권능은 항상 함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좌 앞의 삶은 손상됩니다. 그러면 보좌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영혼의 그릇’이라는 육신으로 내려앉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움켜쥐기 위해서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은데, 우리가 육신으로 내려앉으면 시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요한 사도는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이 일찍 죽임을 당하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린 양과 자세를 같이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보좌의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F. J. Huegel – 룻선교회 제공>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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