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던 갈렙”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여호와를 온전히 좇는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갈렙이 등장하는 두 번의 사건을 통해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던 12명의 정탐꾼들은 동일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땅이 좋은 땅인 것을 보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두려운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그 땅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 했고, 나머지 10명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민 13:30-31). 소란은 계속되었고, 심지어 백성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였습니다(민 14:1-4). 그 때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말합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있어서 갈렙이 걱정했던 것은 그곳에 사는 거대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백성들이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고 그 땅을 주시지 않으실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참 신이신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면 전쟁은 어차피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의 사건을 통해서도 증명되었고 광야에서 보여주신 이적을 통해서 재차 확증되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워야할 적이 아니라, 그들의 편에 서 계신 여호와께 그들이 순종하고 있는가였습니다. 즉, 그들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르고 있는가였습니다. 여호와와 다른 것을 놓고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만을 따르는 것이 언약의 백성인 그들에게 요구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갈렙은 그렇게 했습니다(민 32:11-12).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강력한 적군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에 대한 그런 믿음이 있었던 자였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후 헤브론 산지 앞에서도 그의 믿음은 동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고(수 14:9), 이제 그 약속에 기초해서 헤브론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의 믿음은 여호와의 말씀에,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말씀을 하신 여호와에게 있었습니다. 처한 상황이 변했고 자기 자신도 사실 많이 변했겠지만, 그는 여전히 여호와를 온전히 좇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약속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다는 것은 그저 그렇게 고백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어떤 감정적인 결단도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이며 그에 따르는 매일의 삶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온전히 따르겠다고 찬양하며 나를 써달라고 울부짖으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께서 부르시면 죽음도 각오하고 나아가겠다고 하면서, 옆에 있는 아내나 남편, 친구의 잘못은 죽어도 용서하지 못하겠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갈렙과 같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외치면서,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영역에서 있는 영적 전쟁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좇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에 따라 하루를, 한 시간을, 일 분을, 이 순간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좇는 것입니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을 좇고 계십니까? [복음기도신문]
최종혁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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