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250여 만 명의 외국인, 그중에서도 30여만 명의 무슬림들을 이웃으로 맞이하고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들은 왜 약 5000년 가까이 단일민족으로 살아왔던 우리나라에 오게 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민족을 사용해 잃어버린 이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라고 김종일 교수(아신대학교(ACTS) 중동연구원)는 말한다.
김종일 교회는 최근 <밖에서 본 이슬람, 무슬림 이해하기>를 출간했다.
김 교수는 근본주의적인 이슬람에서 벗어나 세속주의 이슬람을 지향하는 튀르키예에 오랜 기간을 체류하면서 깨닫게 된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책을 통해 제시, 이미 우리의 이웃이 돼 있는 무슬림들을 이해하고 다가가는 데 도움을 준다.
김 교수는 절대 쉽지 않은 해외 이슬람권 선교 현장이 지금 우리 국내로 옮겨졌다며, 지금 이웃으로 살아가는 무슬림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꼭 필요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무슬림들에게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있어 비록 우리가 옳고, 저들이 옳지 않다고 해서 저들을 존중하지 않고 하대하거나, 심지어 이들을 자극하면서 우리의 진리를 전하려는 노력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무슬림들은 살아 계신 주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하는데, 그것을 위한 첫 단계는 먼저 변화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라면서 아무쪼록 많은 그리스도인이 겸손히 섬기는 자세로 무슬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저자 김종일 교수는 1988년부터 터키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시작해서 20년 가까이 체류하면서 귀국 전까지 터키 국립 앙카라대 교수로 재직했다. 귀국 후에는 현재 한국외대 겸임교수와 아신대 (ACTS) 중동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귀국 후에는 현재까지 저널 『전방개척선교 (KJFM)』 편집인과 국내 유일의 중동 전문 기독교 학술 논총집 『ACTS 중동연구 』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본지 ‘복음기도신문’에 ‘이슬람’과 ‘무슬림’을 키워드로 “김종일 칼럼”을 연재 중이다. 또 국내 난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KWMA 에서 난민위원회 코디네이터로 섬겼으며, 국내 난민 신청자들을 위해 법원 난민통역으로도 봉사하고 있다. 현재, 120여명이 모여 있는 ‘국내 이슬람권 선교사 네트워크 (M NET KOREA)’ 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저서(역서 포함 )로는 ‘터키군의 6·25 참전사’(2010, 터키어역 /보훈처), ‘국가대표 터키어 완전 첫걸음’(2012, 부커스베르겐 ), ‘터키어회화사전’(2015, 문예림 ), ‘하루에 쪼갠다’(2021, 부크크 ), ‘누구나 알파벳 터키어 그림책’(2022, 부크크 ), ‘당신의 최애 터키어 한마디는 무엇입니까?’(2022, 부크크 ) 등이 있으며, ‘오스만제국 내 기독교인에 관한 정책연구’, ‘한국 교회의 국내 난민선교 연구’, ‘최근 중동 이슬람 종파 갈등 연구’, ‘최근 터키의 쿠데타 시도 실패에서 드러난 페툴라귤렌의 포스트모던 이슬람 연구’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 본문 중에서-
그의 이름은 M이다. 많은 분의 기도 가운데 M이 주님께 돌아왔다. M은 삶의 진정한 주인을 얻었지만, 세상에서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직장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실직당했으며, 가족으로부터의 냉대와 사회로부터 외면을 감수해야 했다. 실직당하고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M을 위해 우리는 조그마한 가게를 하나 마련해 주었고 매달 월급을 지급했다. 그러던 중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M의 어머니가 매우 격앙된 어조로 전화를 주었다.
“우리 아들 데려다 예수 믿게 하고, 인생을 망쳐놓고 직장도 잃게 하더니, 어떻게 한 푼의 월급도 안 주고 일 년이나 부려 먹을 수 있나요?”
우리는 당장 M을 불렀고, 그동안 매월 지급했던 월급을 어머니께 왜 한 푼도 안 갖다 드렸냐고 물었다. 그때, M이 들려준 사연이다.
“사실 우리 동네에 팔순이 넘은 무슬림 노인이 살고 계시는데, 이 노인이 너무 가난해서 병이 나도 약 살 돈이 없고, 아파도 병원에조차 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제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일 년 동안 제 필요한 용돈만 빼고 월급 전부를 그분께 드리느라고 어머니께 갖다 드릴 수가 없었어요.”
사정도 모르고 M을 혼내려 했던 우리 생각이 오히려 부끄러울 정도였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이 노인이 가족의 부축을 받아 우리 가정 교회를 찾아와서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팔십 평생을 단 한 번도 알라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그분의 명령대로 살아온 사람이라네. 그런데, 오늘 저 M이 내게 그동안 보여준 그 사랑이 기독교의 사랑이라면 나는 오늘부터 기독교인이 되어 살고 싶다네.”
진지하고도 확고한 노인의 표정에서 확신이 선 우리는 곧바로 복음을 구체적으로 전하였고, 그 노인은 전혀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였다. 다음 주일 노인이 자기 가족을 데리고 우리 가정 교회를 찾아왔다. 그 주일 우리 가정 교회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우리 가정 교회 형제들의 수보다도 많은 노인의 가족이 방문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이제 갓 믿은 우리 형제 모두가 동원되어 예수 믿겠다고 찾아온 그들의 머리와 어깨에 손을 얹고 영접 기도를 도왔다. 노인의 가정 전체가 구원받는 순간이었다(행 16:31).
무슬림 선교에 대한 그때까지의 내 생각은 이런 것들이었다. “이슬람의 벽은 두껍다” “무슬림 전도는 난공불락이다” “이슬람권 선교는 문이 꽉 닫혔다” “수년이 흘러도 무슬림 회심자 한두 명이 나오면 성공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틀렸다. 정말 두꺼웠던 것은 이슬람의 벽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가가기를 거부했던 내 마음의 벽이었다. 정말 난공불락은 저들이 아니라 오해와 편견으로 일관된 내 자신이었다. [복음기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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