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높이라 Prize Wisdom 잠 4:8

[이아침 칼럼] 제대로, 처리할 것 처리하기!

사진: Lisa Pellegrini on Unsplash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잠언 23:26)

마음의 처소를 제대로 정해야 합니다. 제대로 마음을 정하는 걸 방해하는 결정적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마음이 어디에 거해야 하는가, 그것이 정확할 때만 우리의 눈은 주의 길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인생이 되어야겠다는 의지가 있어도 그렇게 되지 못합니다. 마음이 먼저 그렇게 되어야 가능합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 내가 종교적 열심이 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라고 착각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8)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으면 증인이 되는 것으로 열매가 나타납니다.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령 은사, 성령 사역 하시는 분들의 열매는 반드시 증인의 삶으로 결론 맺어야 합니다. 과시가 아닙니다. 존재감이 아닙니다. 증인이 되는 것이 열매입니다. 제가 호되게 당했습니다. 당신의 권능이 임했을 때 귀신이 떠나가고 기적이 일어나면서 제가 큰코다친 사람입니다. 권능을 받으면 반드시 증인의 삶으로 드러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세상에서 복이라고 말하는 그 복을 빌어주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은 주님이 승천하기 직전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제 내가 승천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갈 거야, 너희는 성령을 기다리면서 기도해야 해, 성령이 세례를 베풀 거야, 성령으로 채워질 거야, 성령이 너희를 점령할 거야, 너희 마음에는 나의 마음으로 가득해질 거야, 유대를 떠나면 안 되고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 돼.”

그러자 제자들이 묻습니다. “와! 성령을 베푸신대!” 그리고 뭐라고 묻습니까? “주님! 그럼 이스라엘의 회복이 이때입니까?” 그것이 사도행전 1장 6절입니다. 그 물음을 듣고 예수님께서 1장 8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는 예수님의 아픈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직도 제자들이 증인 되지 못하고, 그들 마음의 관심사는 온통 이스라엘의 회복에 가 있는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훈련을 마쳤습니다. 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주님의 가치, 주님의 생각, 주님의 뜻, 하나님 나라의 의에 대해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사랑에 대해 배웠습니다. 발 닦아주는 인생, 세족식의 의미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훈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마음으로 동의되어야 하니까, 십자가를 통과하고 부활까지 경험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이제 성령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제자들의 마음에는 그들의 필요, 이스라엘의 회복, 가정의 회복, 건강의 회복, 그래서 이때가 그때입니까, 하고 묻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받고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했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향방을 읽지 못하면 사도행전 1장 8절의 제자들처럼 이스라엘의 해방이 이때냐고 묻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잠언 23:26)

내 아들아! 저는 이 말씀의 어감이 참 좋습니다. 사랑의 느낌이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안타까운 주님의 마음도 있지만 깊은 사랑이 그 밑에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 우리 마음을 온전히 주지 않았음에도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개운한 마음도 듭니다. 주님께서 마음을 달라고 하십니다. 아, 그렇다면 주님께 마음을 드릴 수 있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드리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구나! 즉, 내 마음을 드릴 것인가 하는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영광스러운 말씀이지만 떨림과 두려움도 있습니다. 내 마음은 드릴 수도 있지만 내 마음은 피해가고 도망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려고 지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을 보면 주님께서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 속에 당신이 거하실 것이고, 우리가 당신 안에 거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4:18, 20)

마음이 주님께 가 있다는 것은 주님이 내 마음을 채웠다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이 사랑의 마음이 너무 실감납니다. 이 사랑을 몰라서 너무 많이 헤맸기 때문입니다. 다스림이 주는 느낌은 약간 억압, 자유가 제한되는 느낌, 뭔가 절제하고 하지 않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하면 중압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사랑이 밀려올 때 이 ‘다스림’이 달라졌습니다. 주님의 다스림은 꽃밭의 향기 같습니다. 주님의 다스림 안으로 들어가면 꽃밭에 들어간 것처럼 향기에 취합니다.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꽃 향기에 취하게 만듭니다. 주님의 다스림은 그런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면 꽃밭의 향기에 취하는 것처럼 당신으로 취하게 하십니다. 하나가 되는 것이 연합입니다. 당신에게 취한 우리를 당신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너희들 마음에 내가 있다면, 너희가 나에게 취하게 될 거야, 봄날 햇살처럼 꽃밭 향기처럼! 그것을 경험하게 될 거야.’ 그래서 당신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어떤 경계선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어떤 분위기에 이르면 노력하지 않아도 그 분위기에 취하게 됩니다. 예배당 본당에 아름다운 음악이 울리면 마음도 영향을 받습니다. 집이 팔리지 않을 때 집에서 빵을 구워 빵 굽는 냄새가 나게 하면 집 보러 오는 사람이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주님과의 만남도 어느 경계선을 넘어가면 무언가 노력하지 않아도 취하게 되는 그 지점이 있습니다. 영적 기류입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주님의 임재 안에 있게 됩니다. 이것을 영 의식이라고 합니다. 식탁에서도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보통은 같이 먹는 사람을 의식합니다. 신경쓰고 있고,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영 의식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그런 사람만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흔들렸다 하더라도 돌이킬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주님을 바라봅니다. 스스로 정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 경계선까지 올라가려면 노력과 애씀이 필요합니다. 말씀이 흘러가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심지어 피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하십니다.

언제 그 경계로부터 멀어지고 그 지점에서 떨어질까요? 죄와 게으름입니다. 그래서 죄는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죄는 죄라고 말해야 합니다. 내가 죄 가운데 있더라도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동성애는 동성애입니다. 성소수자라는 말로 부르며 죄를 죄로 인정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의 사랑이 일깨워지면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은 여전히 시끄럽고, 여전히 괴로워했습니다. 참 이해가 안 돼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더 화가 나고 질투가 났습니다. 다윗은 보기도 싫었습니다. 그런데 다윗도 똑같은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 흡족해 하셨던 다윗도 조건이 갖추어지니 죄를 짓습니다. 그런 다윗은 온 우주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봤다고 합니다. 저는 그 영광을 본다는 것이 실감이 안 났습니다. 다윗의 심장에 대해서도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는 다윗처럼 온 우주만물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이 실감이 안 나죠? 저도 그 사랑 알고 싶어요, 하나님!” 오랜 시간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짧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면 보인단다’ 마음이 확 터졌습니다. 주님과의 사랑이 실제가 되고 실감이 나면 알게 됩니다. 염려와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도가 많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더 알게 해달라는 기도가 가장 큰 기도 제목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서 온 우주에 가득한 주님 영광이 실제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네 마음이 나에게 온다면 온 우주에 가득한 나의 영광을 볼 수 있단다!’ 영이 맑으면 예쁘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열쇠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열쇠입니다. 주님의 마음뿐만 아니라 주님의 일하심을 보는 열쇠입니다.

너의 마음을 내게 준다는 말씀은 아직 마음을 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마음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어딘가에 주면 그곳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그것이 깊어지면 마음이 점령당합니다. 돈에 마음을 주면 마음을 빼앗기고 반드시 돈으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주님보다 더 확고한 믿음이 돈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돈 없으면 죽는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마지막까지 싸우는 것이 물신입니다. 화폐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데, 왜 그렇게 돈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을까요? 우리가 돈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으면 인정 못 받아, 돈이 없으면 패배자야. 돈 없으면 죽어, 돈 없으면 낙오자야.”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에게 마음을 주면, 원수로부터 영향을 받습니다. “저걸 어떻게 죽여, 어떻게 함정을 놓지, 어떻게 골탕먹이지?” 다 마음 빼앗기는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가면 반드시 영향을 받습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내 아들아’ 하고 부르시며 ‘너의 마음은 나에게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 뜻을 이해하고 하나님 뜻을 기뻐하고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려고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하나님의 크기입니다. 수백조 원이 있어도 만족되지 않습니다. 마음에는 오직 주님이 계셔야만 만족됩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것이 영광입니다. 1등이 영광 아닙니다. 삶의 자리에서 1등 했다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지 않으십니다. 국가대항전에서 1등 했다고 영광 아닙니다. 1등보다 주님이 내 마음에서 더 크고 더 가득한 것이 영광입니다. 주님이 우리 마음에 가득 채워졌기에 주님께서 주님 뜻대로 우리를 이끌어가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점심 식사를 못하게 됐습니다. 행정명령입니다. 너무 쉽게 결정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났습니다.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시원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선한 뜻을 구한다고 했지만 마음에는 그런 문제들로 가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가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식사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그 이유 때문입니다. 주님이 가득하면 사랑의 음성을 듣는 것인데, 마음이 불편하니까, 밥을 먹지 않고 덕을 세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분별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보다 내 마음에 주님이 채워져 있느냐, 그것이 분별점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 우리는 선과 악에 대해 분명해졌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주님이 분명했는데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선과 악에 대해 민감해졌습니다. 선악에 민감한 것은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제 동성애는 선하다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타락한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분별은 ‘마음에 주님이 계신가?’ 하는 것으로 됩니다. 그것이 영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당신에게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을 알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 마음은 당신께서 거하시려고 만드셨다고 하십니다. 그때 우리의 열매가, 우리의 본분이, 우리의 행복과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꽃밭의 향기같은 봄날의 햇살 같은 주님의 다스림과 실제 역사가 무엇인지 아는 영광을 알게 됩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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