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4일, 나는 의왕시 교회 연합회 주최로 <광복절 77주년 기념 대회>의 강사로 갔다. 그곳에는 국회의원, 시장, 도의원들 그리고 성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나는 설교를 했다. 나는 메시지를 시작하기 전에, “모두가 광복절만 말하고 <건국절>은 왜 말하지 않느냐?”라고 서두를 꺼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미국이 일본에 원폭투하로 연합국이 승리하여 우리나라는 일제 36년간의 고통 속에 있다가 <해방>과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광복 후 우리나라는 <박헌영>이란 골수 공산주의자에 의해 나라가 거의 공산화 될 뻔했다. 3년의 군정 기간 중에도, 좌우의 대결은 참으로 아슬아슬 했다. 그런데 1948년 8월 15일 리승만 박사에 의해서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이 탄생 되었다. 그날 New York Time 지의 머리기사에는 「리승만 박사에 의해서 Republic of Korea가 탄생 되었고, 3년간의 군정을 청산하고 자유 대한민국이 출범 했다.」고 썼다. 당시 미국 특파원 기자 Johnston은 특별히 영어 발음으로 「Tae Han Min Kook」이 출범했다고 썼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대한민국의 <건국절>이 없어졌다.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생일이 없는 사생아 나라가 된 것이다. 문 정권 때는 유독 대한민국이 1919년 임시 정부 때가 우리의 건국절이라고 우겼다. 물론 그때도 SyngMan Rhee가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임시 정부는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 자들>이 대결하면서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문 정권은 상해 임시 정부의 정통성은 강조하면서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절>은 없애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김일성이 세운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찬양하게 만들었다. 지난번 8월 15일, 정부 어느 기관에서도 <건국절>을 말하지 않았고, KBS, MBC, SBS, YTN 어느 방송에서도 대한민국 <건국절>에 대해 침묵했다. 그나마 ‘8.15일은 광복절인 동시에 <건국절>이다!’라고 언급한 분은, 박찬종 전 의원 뿐이었다. 어쩌다 이 나라가 뿌리도 없고, 생일도 없는 나라가 되었는가!
그동안 북한의 세작들에 의해서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아야 할 나라>라고 세뇌시키고, 리승만은 <독재자>요, <남북분단의 원흉>이라고 비꼬았고, 리승만의 장기집권이 4.19가 일어난 원인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그동안 여야정치가들, 대학교수, 언론인들은 리승만을 비판하고, 저주해야 지식인, 지성인으로 행세해 왔다. 또한 과거 종북 정부들은 항상 북쪽의 프레임대로 <우리 민족끼리>, <남북화해>, <미군 철수>, <평화>를 앞세워 <종북이 바로 애국>으로 둔갑해 북을 달래고, 북에 퍼주면서 <건국절>도 없애고, 국부(國父)이신 리승만을 지우고, 죽이는데 올인 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친일파로 몰고, 친미파로 몰아가면서 우리 민족끼리에 리승만은 걸림돌로 생각하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운 나라가 되었는데, 그것은 자유대한민국의 설계자인 리승만 박사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은 국내용이라면, 리승만은 태평양 넘어 미 대륙을 바라보고 한·미동맹을 만들어 낸 선견자였다.
지난 8월 24일 나는 L.A 지저스 힐링교회에서 <이승만과 칼빈주의 세계관>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사람들은 리승만이 배제학당을 졸업하고, 하와이에서 감리교를 세우고 정동교회 장로 일도 했는데, 무슨 칼빈주의자냐고 할지 모르지만, 리승만이 한성감옥에서 종신형 죄수로 있다가 감형받아 출옥한 후에 요양한 곳은 평양의 <남궁혁>씨 댁이었다. 남궁혁은 후일 평양장로회 신학교 한국인 최초의 교수였다. 그리고 1905년 조지 워싱턴 대학 재학 중에는 워싱턴의 언약교회에 출석했다. 언약교회는 스코틀랜드 언약도(Covenanters)들이 미국에 와서 세운 정통 장로교회였다. 그리고 언약교회 목사님은 4월 23일 리승만에게 세례를 주고 신앙 지도를 했다. 그 교회 담임 목사인 햄린(L. Hamlin)목사는 하버드 대학교의 이사장 겸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이사였다. 리승만은 조지 워싱턴대와 하버드대를 마치고 프린스턴 대학으로 왔다.
그러나 그는 먼저 프린스턴 신학교에 적을 두고, 신학 공부에 주력했다. 그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의 대표적 학자는 세계 3대 칼빈주의 학자인 비.비 워필드(B.B Warfield) 박사였다. 워필드는 네덜란드의 대 칼빈주의 신학자, 대정치가요, 언론인이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박사를 초청해서 <칼빈주의 특강>을 들었다. 그의 사상은 하나님의 주권은 교회당 울타리 안에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학문>, <법률> 등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높이는 세계관이었다. 1900~1910년의 프린스턴 신학교의 세계관은 이런 칼빈주의 세계관이 절정에 이르렀다. 이런 분위기 속에 어학의 천재인 리승만은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배우고,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그린(Greene) 박사로부터 <기독교 변증학>을 공부했고, 챨스 어드만(Ch. Eerdman) 박사에게 <바울신학>으로 학점을 땄다. 그리고 그는 성경 신학의 아버지 게할두스 보스 박사의 영향, 당시 전임강사 그레샴 메이첸에게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이른바 리승만의 <기독교 입국론>은 칼빈주의 사상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을 설계한 리승만 박사의 천재적 두뇌, 외교의 귀재,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 바치고, 확실한 하나님의 중심의 칼빈주의적 세계관 위에 세웠던 자유대한민국을 지키자! 이제 그가 세운 자유대한민국은 세계 초일류 국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독재자를 못내 그리워하는 자들이 있다면, 도대체 그들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간단 말인가? [복음기도신문]
정성구 박사 | 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40여년간 목회자, 설교자로 활동해왔으며, 최근 다양한 국내외 시사를 기독교 세계관으로 조명한 칼럼으로 시대를 깨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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