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대로 합력하기! (로마서 8:28~29)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8~29)
올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사랑의 대상은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 주님! 사랑의 대상은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하늘에 뿌리를 두고 사는 인생이 크리스천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이 땅에서 거뜬히 살아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것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협력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부부가 협력했더니, 가정이 협력했더니, 국가가 협력했더니, 온 인류가 협력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합력의 의미가 실제로 다가올 때 기쁨과 고민이 시작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면, 합력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 선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온 인류가 뭉쳐서 연합하고, 일치단결해서 협력했을 때, 역사적으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경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교회 공동체에서 협력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합력해서 선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합력할 때 선이 더 쉽게 발견됩니다. 선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 히브리어로 ‘토브’입니다. 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일어납니다.
교회를 개척한 뒤 제가 자주 이야기했던 내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히 아는데,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잘 몰랐습니다. 마음으로는 알겠는데 실제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라고 딱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실제로 드러내 보여줄 수 없다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성도들에게 드러내 보여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참 오랜 시간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주님 앞에서 머물며,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일깨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여러분은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거할 수 있습니까? 막연하면 안 됩니다. 사랑은 실제로 표시가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명확하게 압니다. 사랑하면 말이 많아집니다. 의사소통이 일어납니다. 즐겁습니다.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특별히 ‘말 안 해도 잘 알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회사에서 상사들도 그런다고 하는데, 말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사랑하면 말을 하는 것입니다. 표현하는 것입니다. 말한다는 것은 사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말씀도 주시지만 책망의 말씀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명확하게 압니다. 말씀이 생각납니다. 좋든지 싫든지 생각이 납니다. 말씀에는 책망도 있고 격려도 있습니다. 허튼 마음이 있다면, 허튼 마음이 풀릴 때까지 짓눌립니다. 답답합니다. ‘너무 무겁다, 너무 짜증스럽다’ 하는 마음이 많을 때에도, 마음이 답답할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주님, 제가 항상 기뻐할게요! 기뻐할 거예요!” 하는 마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기뻐하라고 했잖아. 이 녀석아” 하는 말씀도 떠오르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하신 시편 말씀처럼, ‘네가 기뻐해야 네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잖아’ 하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관계는 그렇게 됩니다. 명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회복될 때까지 버티게 되고, 기어이 회복될 때까지 말씀하시는 사랑의 속삭임! 책망의 두려움도 선명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날마다 주신 말씀을 떠올리는 것은 사랑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귐의 관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선포된 공적인 말씀을 서로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시편 말씀을 다시 새기고, 믿음의 선진들 이야기를 보며,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국에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마음에 와 있습니다. 사랑하면 마음에 채워져 있습니다. 사랑이 성립되지 않으면 아픕니다. 사랑이 성립되면 기쁩니다. 사랑하면 마음에 꽉 채워져 있습니다. 말씀으로 그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사랑이 성립되면 그 사랑 때문에 슬프지 않고 기쁩니다. 고통스럽지 않고, 어떤 다른 고통도 녹아져 내립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셋방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많이 타락해서 35평도 모자라게 됩니까? 아닙니다. 사랑이 성립되면 기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니? 그것 때문에 기쁘니?” “예, 주님! 제가 주님을 기뻐합니다.” “아니, 그건 기쁨이 아닐걸?” 하고 비유를 보여주셨습니다.
옆집 아이가 고3이고, 우리집 아이도 고3입니다. 옆집 아이가 명문대에 수석 합격했다고 합니다. 그럼 부럽습니다. 그런데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옆집 아이 수석 합격한 것이 왜 기뻐?’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것 때문에 왜 기쁘냐고 반문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랑은 기뻐하는 겁니다. 주님께서 그걸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면 기쁜 마음이 있을 거야.” 옆집 아저씨가 회사 본부장 된 것이 한없이 부러우면, 이웃이 60평짜리 아파트 산 것이 한없이 부럽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왜 기쁩니까? 믿음 안에 들어와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이 이야기가 이해됩니다. “그게 왜 기뻐? 나는 주님을 사랑하는데!”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합력해 선을 이룬다고 하십니다.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주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 지금 이 자리로 나를 부르셨는지 따지지 말고, 내가 먼저 주님을 사랑하는지를 보십시오. 그럼 지금 있는 이 자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예배하는 자리에 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르심으로 왔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설교하는지 몇 번을 살펴보고 점검합니다. 제가 주님의 부르심 없이 설교하면 거짓말쟁이고 또 주님을 속이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을 가장 먼저 점검하게 하십니다.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찔리지만 기쁘게 들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 오셨습니다.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대다수는 내 뜻대로 부르심을 받고 왔을 것입니다. 예배드리는 목적이 있고, 원하는 것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 여러분의 뜻일 것입니다. 심지어 예배를 안 드리면 마음에 걸린다는 그 마음마저도 우리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용당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하나님을 이용하러 왔다가 변화되는 사람도 있지만 많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구원의 자리니까, 은혜의 자리니까, 그 자리에 있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도 맞지만,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끝까지 하나님을 이용하려다가 끝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점검하셔야 합니다. 내가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는지!
부흥이 목적이라면, 부흥은 원래 주님의 마음으로 돌아가 주님의 마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부흥은 성장일 것입니다. 성장이 목적이라면, 교회가 외형적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부흥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아니라면, 그 성장은 부흥이 아니라는 것! 이것은 너무나 선명한 것입니다.
나름대로 선한 의지를 갖고, 이렇게 하면 기뻐할 거야, 이렇게 하면 성도들이 행복할 것이고, 많은 성도들이 회복될 거야! 저는 그런 생각을 오래 했고, 그렇게 공부도 오래 했고, 실제로 그런 회복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옆집 아저씨가 승진해도 왜 그게 부러워, 옆집 자녀가 수석 합격해도 왜 그게 부러워’ 하는 실제 믿음의 걸음을 걸어가기를 축복합니다. [복음기도신문]
이아침 목사 | 하나님이보시기에참좋았더라교회 담임. 다음세대를 위해 토브원형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도들이 삶에서 믿음의 실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있다. 저서로 주께서 피워내시는대로(토브원형출판사, 2020), 예, 주님 제가 순종의 전문가입니다(토브원형출판사,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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