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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사회정의(1): 사회정의와 복음

사진: unsplash

세상의 정부는 법을 집행하기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니 성도는 그들의 권세에 복종할 것을 성서는 가르친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13:1~4) 그러나 역사상 꾸준히 정의를 행하는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실제로 바울이 이 명령의 편지를 썼을 때 로마의 황제는 세계 무대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극도로 부당하고 부도덕하며 잔인한 네로였다.

성도로서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 5:19) 그러므로 세상의 권력 구조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어느 정도 조직적으로 부당하다.

미국조차 “모든 사람은 몇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 받았으며”라는 건국 교훈의 기초에 모순되는 수많은 이들의 삶의 혜택과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를 앗아간 강제 노예 제도를 유지했다. 그러므로 많은 세대의 아프리카계 민족은 법적으로 (그러나 비도덕적으로) 인간 이하의 격하를 당했다. 링컨이 노예 해방 선언을 선포한 1860년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사백만 명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었다.

남북전쟁과 노예 제도 금지가 자동적으로 부당함을 종속시킨 것은 아니다. 연방 정부가 공공장소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만인 평등의 민권을 옹호하는 법률 제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백 년이 걸렸다. 그때까지 남부 여러 주의 자유화된 노예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피부 색깔로 인해 문자 그대로 법에 따라 버스의 뒤쪽에 앉도록 분류되거나 종종 멸시와 무례한 취급을 당했다.

나는 괴롭힘과 차별을 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1960년대 미국의 남부지방에서 약간의 경험을 했다. 나는 친구이자 잘 알려진 복음 지도자인 존 퍼킨스와 함께 미시시피 근교를 여행하며 차별 분리된 아프리카계 고등학교에 복음을 전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여행 중, 우리는 흙길을 운전해 가고 있었다. 영화 ‘밤의 열기 속으로’(in the heat of the night)에서 나오는 공공연히 편협함을 드러내는 등장인물과 같은 보안관이 나를 경찰서로 데려가 감옥에 넣은 후, 치안 방해의 혐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나의 소지금 전액을 압수했다. 결국, 그는 나를 기소하지 않고 석방했다. 아마도 나에게서 몰수해 간 돈을 그가 반대하는 일을 하는 데 대한 적절한 벌금으로 여겼지 않은가 싶다.

그 당시는 상고한다고 한들 헛된 것일 뿐 아니라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는 그의 반감을 사지 않는 것뿐이었다.

나는 멤피스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암살당한 1968년 4월에 또다시 존 퍼킨스와 흑인교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미시시피에서 사역하고 있었다. 우리 그룹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 미시시피 NAACP(미국 흑인 지위 향상 협회)의 지부장 찰스 에버스였다. (그의 남동생 메드가는 1963년 KKK에 의해 살해됐다.) 닥터 킹의 살해 소식을 듣고 우리는 멤피스로 향했다. 그리고 킹 목사가 암살당한 몇 시간 이내에 그가 총탄을 맞은 로레인 모텔 발코니에 우리는 서 있었다. 제임스 얼 레이가 변기 위에 총을 쏘기 위해 올라갔던 장소 또한 우리는 보았다.

나는 인종차별이 낳는 모든 잔혹함과 분쟁을 개탄한다. 모든 유형의 민족적 적대감의 장기적인 해결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집단 사이의 장애물과 장벽은 무너지며 반목은 폐지되고 다른 문화와 민족은 한 새 사람들로 지어진다.(에베소서 2:14-15) 시민 평등권 운동 기간 함께 사역한 그 흑인 지도자들과 나는 이와 같은 신념을 공유했다.

오늘날 가장 소리 높여 “사회 정의”를 외쳐대는 복음주의자들은 너무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정 민족에게 회개와 그들의 선조가 상대방에게 범한 죄에 대한 배상금을 그 민족으로부터 강요하는 그들의 미사여구는 확실히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복음이 아니라 법률 용어다.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닌 세속적 정치적 어법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민족으로 형성된 성도들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후, 민족 간의 분열을 선택한다는 것은 놀랄 만한 아이러니다. 그들은 육적 분쟁을 선호하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진정한 영적 결합을 거부한다.

복음주의가 발견한 새로운 집착 “사회 정의”에 대한 개념은 중대한 변화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사람(중요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포함해)을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며 다른 많은 운동과 교파들이 취한 적이 있는 영적 재난의 결과로 향하는 변화임을 나는 확신한다.

나는 수년간 복음을 위협하는 다수의 견해와 싸워 왔다. 그중에서도 “사회 정의”를 탐색하는 이 최근(놀랍게도 갑작스러운)의 우회를 가장 교묘하고 위험한 위협이라 생각한다. 오는 2주간 블로그 게시를 통한 연재에서 나는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명확하고 정확하게 복음에 초점의 중심을 두기 위해 우리가 이제까지 맞서 왔던 투쟁 일부를 검토해 보려 한다. 성경적 정의가 세속적 자유 사상인 “사회 정의”와 공유하는 바가 거의 없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복음적 화해의 큰 위협이 되는 민족 간의 갈등과 경제 불균형과 같은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이러한 움직임의 추세가 복음의 중점적 요건의 자세를 취하는 이유를 분석하려 한다.

나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2)임을 독자들이 발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모략과 그리스도 나라의 확장을 이야기할 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복음기도신문]

출처: www.gty.org/blog/B180813

존 맥아더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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