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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오순절이 없다면, 우리는 영적 고아다

사진: 유튜브 채널 Rei Ven 캡처

“아들의 떠남은 성령의 오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오순절은 이 땅에서 우리가 영적 고아로 버려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4시간만 뉴스를 듣는다고 생각해 보자. 그 사이에 깊은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명의 상실, 정의의 상실, 존엄성의 상실, 희망의 상실이 우리 목전에 널려 있다. 내 삶과 나와 교류하는 사람들만 보아도 이런 현실이 나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에게서 끝임 없이 일어나고 있는 엄연한 현실임을 알 수 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들에게 비극과 질병, 트라우마, 죽음이 닥친다. 이 슬픔에서 다음 슬픔으로 비틀거리며 넘어가는 삶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런 상실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신과 체포로 이어지는 몇 시간 동안 강렬하게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기도 하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을 떠날 것이고 자신이 가는 길에 제자들은 함께 할 수 없다는 폭탄을 터뜨리셨다.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들은 3년을 동고동락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가족과 직장을 버린 제자도 있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예수님에게 걸었다.

따라서 그들이 느낀 감정은 믿었던 CEO가 회사를 떠난다는 소식에 슬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고 예수님은 약속하셨다(요 14:18). 이것은 동료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 느끼는 슬픔이 아니다. 이것은 부모를 잃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그들이 느꼈던 두려움은 버림받는 것과 같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은 분리가 주는 깊은 상실감이었다. 제자들이 그토록 힘들어한 것은 그래서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의 괴로운 마음

우리의 마음도 종종 괴로움에 고통스러워한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제자들과 똑같지 않다. 우리는 예수님과 3년을 동고동락하지도 않았고, 우리를 떠나는 예수님을 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수님의 육체적 부재를 의식한다. 이 땅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이 진짜로 계신지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삶의 어려움은 하나님이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지 않아서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버겁게만 느껴진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 소중한 약속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는 게 아니다. 예수님은 떠나실 것이다. 예수님의 약속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다.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하실 것이다. 그는 진리의 영이시다”(요 14:16-17). 예수님은 성령을 약속하셨다. 아들의 떠남은 성령의 오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오순절은 단지 권능을 받는 분수령이 아니었다. 오순절은 위로이기도 했다. 오순절은 이 땅에서 우리가 영적 고아로 버려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영

예수님이 가장 먼저 강조하시는 것은 성령이 인격이시라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성령을 ‘그것’이 아니라 ‘그’라고 하신다. 신약 성경의 다른 구절들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처럼 성령은 결코 비인격적인 영적 물품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기 위해 성령이 오셨다고 말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해도, 우리는 이 놀라운 성령이 얼마나 인격적인가 하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요점은 예수님이 약속하시는 그가 어떤 분인가이다. 예수님은 성령을 ‘또 다른 보혜사’(요 14:16)라고 묘사하신다. 다시 말해서, 성령은 제자들에게 또 다른 예수님이다. 그는 어떤 면에서 예수님을 대신하고 계승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는 정말로 예수님과 동일한 영이다. 바울은 그를 ‘그리스도의 영’(롬 8:9)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성령은 담임 선생님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과 스타일, 우선순위를 가지고 오시는 대리 교사가 아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다.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바로 이 사실을 설명한다. “나는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성령의 선물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직접, 육체적으로는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 점은 예수님이 강조한 두 번째 포인트로 이어진다.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임재

성령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임재를 누린다. 예수님은 성령이 우리 삶에서 어떻게 임재할지를 강조하신다. “너희는 그를 안다. 그것은, 그가 너희와 함께 계시고, 또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요 14:17)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우리는 한순간도 혼자일 수 없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20).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성령을 통해서다.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이것은 그 자체로 놀랍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많은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성령을 단지 충실한 보안요원처럼 가까이 두는 게 아니라 아예 우리 안에 거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속에 친히 거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리하면 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요, 내 아버지와 나는 그 사람에게로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다”(요 14:23).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하시는 성전이다(고전 6:19).

하나님의 성전과 우리의 위로

몇 년 전 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통곡의 벽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헤롯 대왕이 세운 이 벽은 그리스도와 동시대에 있었던 구조물인데 아직까지 남아 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가장 성스럽게 여기면서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들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성전과 또한 성전 자체가 의미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애통하고 또한 그 복원을 위해서 기도한다. 따라서 이 벽의 오랜 별명은 ‘통곡의 벽’이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유대인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 열심히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근처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예수님, 단지 성전을 약속하시는 게 아니라 아예 우리와 하나가 되겠다고 하신 예수님을 묵상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순전히 성령의 은사로 인해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 자신이 진정한 성전이시다.

성경은 이 세상이 주는 깊은 상실과 트라우마라는 현실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그러한 상실로부터 면제가 된다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대신 성경은 이 모든 상실 가운데서도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귀중하고 그 자체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약속한다. 바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이다.

성령의 오심으로 우리는 영적 고아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버림받지 않았다. 예수님의 영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뿐 아니라 영원히 우리 안에 거하신다. [복음기도신문]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우리는 한순간도 혼자일 수 없다.”

샘 올베리(Sam Allberry) | 샘 올베리는 Ravi Zacharias International Ministries의 국제 강사로 섬기며 미국 TGC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Is God Anti-Gay?’ 등이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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