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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이신칭의, 바로 알고 제대로 누리기 (2)

사진 : cgrape on Pixabay

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 갈라디아서 3장 6-9절

우리는 ‘이신칭의’(믿음(신)으로써(이) 의롭다 함(칭)을 얻는다), 바르게 알고 제대로 누리기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말씀을 나누고 있다. 사도 바울이 같은 문제로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유대 형제들과 논쟁했을 때, 베드로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우리는 그들이(이방인)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행 15:11).

하지만 갈라디아 교회는 바울이 은혜의 복음, 바른 복음을 전파한 뒤 몇 년 만에 ‘다른 복음’, ‘행위의 복음’으로 돌아섰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라고 한탄하며 그들을 이 편지를 통해 책망했고 바른 복음으로 돌이켰다.

우리는 갈라디아 사람들처럼 미련하지 않다고 착각할 때가 많다. 적어도 구원이 오직 ‘믿음’으로 된다는 걸 굳게 믿고 있지 않는가? 율법을 지켜 의를 얻으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지난번 우리는 갈라디아서 3장 1-5절에서 바울이 강조한 구원의 주체, 삼위일체 하나님이 전적으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살펴봤다. 성자께서 우리 모든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히 치르셨다(1절). 성령께서 매일 죄와 싸우는 우리를 이기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다(2-4절). 성부께서 택하신 우리를 반드시 영화롭게 하신다(5절). 죄에서 완벽한 자유를 누리게 하신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온전히 이루신 구원을 믿음을 통해 값없이(은혜로) 얻은 우리가 마치 그것이 부족한 것처럼 우리 행위를 더하려한다면 이는 참으로 미련하고 무례한 일이다.

바울의 두 번째 논지는 6-9절에 이어지는데, 그는 여기서 이스라엘의 시조, 아브라함을 언급하며 ‘족보’를 말한다. 두 가지 질문을 먼저 던져보자.

첫째, 아브라함은 신화적 인물인가? 역사적 인물인가? 보통 우리 민족의 시조를 단군이라고 말한다. 단군은 역사적으로 존재했지만, 신화적으로 포장된 인물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단군 할아버지의 후손 즉 한 민족이란 의미 정도는 찾을 수 있어도, 기업이나 특권 등 실제로 얻는 복은 없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다르다. 하나님은 그를 이방 민족 중에서 택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로 삼으셨다(증표-할례).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땅을 약속하셨고, 아브라함을 통해 결국 열두 지파 많은 자손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후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창 15장; 22장).

둘째, 왜 아브라함인가? 갈라디아 성도들이 모세의 율법에 매였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모세보다 수 세기 전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시기 몇백 년 전에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다. 무엇을 통해서? 믿음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창 15:6). 율법의 행위가 있기 훨씬 전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 자손, 복은 그의 행위로 취득한 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후손이라고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7절).

8절은 굉장히 흥미롭다. 이 구절을 집중해서 관찰해 보자.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먼저, 주어는 “성경”이다. 성경이 두 가지 일을 했는데 첫째, 미리 알았고(프로-유앙겔리조마이), 둘째, 미리 복음을 전했다(프로-오라오). 무엇을 미리 알았는가?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것을 정하셨다(작정하신 뜻). 그 뜻을 미리 안 성경이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한 복음은 무엇인가?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라는 복음이다(“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 12:3).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뜻이 달라지겠는가? 성경이 전하는 복음이 달라지겠는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바울은 9절에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왜 주어가 성경일까? 성경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삼상 15:29). 하나님은 작정하신 뜻을 그대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내셨다. 그리고 갈라디아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대로 아브라함이 미리 들은 복음을 똑같이 들었다. 하나님의 뜻은 결코 변함이 없다.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복을 받는다.

그러면,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 데인 오틀런드는 그리스도의 가장 본능적인 속성을 다룬 책 <온유하고 겸손하니>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타락 이후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우리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애쓰고, 두려움에 지배되며, 초조함을 느끼고, 늘 득실을 따지며, 신경과민적인 통제를 일삼고, 불안감에서 비롯한 어리석음에 이끌리는 성향이 있다. 이런 성향은 단지 우리의 말이나 생각이 아닌 존재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개혁된실천사, 235p)

특히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자란 경우, 우리는 이런 어리석음에 이끌리는 성향을 가지고 마땅히 누려야 할 은혜의 방편으로 자기 의를 내세우거나 초조함을 느끼고, 통제하려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판단하거나 시기하는 등 각종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믿음’에서 ‘율법의 행위’로 갈아타는 것이다.

매일 성경 읽기를 하루 빠졌을 때 심한 좌절감을 느낀다. 이것으로 한 달을 완벽하게 참여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예배에 나오지 못한(않은) 누군가를 정죄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선순위가 잘 못 됐군.

전반적으로 교회에서 착실한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에 내 영적 상태나 성숙도가 괜찮다고 여겨진다. 몇몇 성도가 나에게 신실하다는 칭찬도 했다.

공동체가 함께 추구하려는 목표나 활동에 소극적인 구성원을 보며 판단한다. 잠깐 시간 내서 이거 하나 못 해주나?

전반적으로 나보다 더 착실하게 교회에서 생활하는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나보다 더 괜찮은 성도라고 생각된다. 저 친구에 비해서 나는 형편없어. 때론 저 친구의 흠을 찾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하고 안심하고 싶어.

우리에겐 모두 이와 같은 미련한 성향이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온전히 이루신 은혜의 구원을 믿음으로 받지 못하고 자기 행위를 조금이라도 끼워 넣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 읽기나 예배, 교회 행사에 마음대로 빠지고 교회에서 불성실한 성도가 되는 건 괜찮은가? 그보단 위에 언급된 예시가 조금 더 낫지 않을까? 아니다.

두 경우 모두 은혜의 복음, 믿음으로 얻는 복으로 돌아가야 한다. 방종하는 신자는 자신이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잊은 자다. 그 은혜를 제대로 안다면, 그렇게 행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미련하게 자기 행위로 의를 얻으려 애쓰는 신자도 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어떠함과 상관없이(어떠함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은혜를 베푸셔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오직 믿음으로 우리가 그 구원의 넘치는 은혜를 얻는다는 사실에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래야 모든 행위가 은혜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은혜를 얻은 자의 마땅한 반응으로 흘러나온다. [복음기도신문]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조정의 | 그레이스투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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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K 칼럼] 이신칭의, 바로 알고 제대로 누리기 (1)

GTK칼럼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성경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미국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의 존 맥아더 목사와 GTK 협력 목회자와 성도들이 기고하는 커뮤니티인 Grace to Korea(gracetokorea.org)의 콘텐츠로, 본지와 협약을 맺어 게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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