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깨너머로 주변 사람들과 (또는 우리가 화면을 통해 보는 사람들과) 우리 삶을 비교하라는 유혹이 몰려 올 때, 우리는 눈을 그리스도께 돌리고 그를 힘써 따라야 한다 ”
내가 떨쳐버리지 않는다면 마치 시계추처럼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 있다. ‘넌 뒤쳐져 있어.’
온라인에서 거대한 사업을 하고 있거나, 결점 없는 깨끗한 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5단계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거나, 음식을 해서 한 달 전에 미리 냉동시켜 두는 여성들을 본다. 거기에 비해 내 주변을 둘러보면 장난감들은 바닥에 널려 있고 아이들 교과서는 식탁 위에 널브러져 있고, 나는 오늘 당장 식구들 저녁식사로 무얼 만들지도 모른다.
바로 그 때, 내가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원수가 거짓말을 속삭인다. ‘너는 뒤쳐졌어. 네 인생의 이 시점이면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어야지. 너는 돈을 더 벌어야 했어. 사업도 더 번성해야 했고, 좀 달린다고 할 수 있으려면 (10킬로미터는 몰라도) 최소한 5킬로미터는 달려야지.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몇 광년이나 앞서 있어, 그러니 너는 절대 따라잡지 못할 거야.’
어떤 날엔 그런 거짓말에 맞서지 못하고 점점 커져가는 감정의 구멍으로 빠져들곤 한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맞서 싸울 때, 이러한 생각들은 거짓말임이 그대로 인정된다. 이런 거짓말은 나를 달려가고 있는 경주에서 낙심에 빠뜨리고 다른 이들의 경주를 바라보도록 한다.
다음은 내가 어떻게 남과 비교하는 것과 싸워 왔고, 뒤처져 있다고 잔소리를 듣는 느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 안에서 걸어가는 법을 배워 왔는지에 대해서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초점을 맞추라
나는 내 두 아이가 평생 같은 직업은 고사하고 좋아하는 색이 같을 것이라고도 기대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내 친구들이 모두 같은 종류의 음식을 즐기거나 같은 수의 자녀를 원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내 인생은 직업에서나 가족, 소명에서 주변 사람들의 인생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성경에서 우리는 베드로도 비교하는 것과 씨름했던 것을 본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한 후에 예수님은 그를 회복시키시며 그가 순교할 것을 예고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요 21:19)는 단순한 명령을 주셨다. 베드로의 대답은 어깨너머로 요한을 쳐다보면서 그는 어떻게 될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베드로가 이 제자를 보고서, 예수께 물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요 21:21-22).
예수님은 베드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고 요한의 삶을 베드로의 삶에 비교하지도 않으셨다. 그 대신 예수님은 베드로가 해야 할 일이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따르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우리의 소명이기도 하다. 어깨너머로 주변 사람들과 (또는 우리가 화면을 통해 보는 사람들과) 우리 삶을 비교하라는 유혹이 몰려 올 때, 우리는 눈을 그리스도께 돌리고 그를 힘써 따라야 한다. 우리는 눈을 다른 사람들에게 향하기보다는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데로 마음을 향해야 한다. 우리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목표에 도달했는지에 눈길을 줄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우리의 가치와 유용성을 확인해야 한다. (엡 2:4-10이 좋은 출발점이다.)
그리스도의 몸임을 기억하고 섬기는 삶을 살라
이러한 비교는 나의 능력과 성취를 다른 사람의 그것들과 경쟁시켜 내 인생에 대한 좁은 관점을 갖게 만든다. 나는 어떻게 저 사람보다 더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저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저 사람이 인생에서 이루어가고 있는 지점을 생각하면 나는 내 인생에서 뒤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진실은 나의 자질과 재능과 성취는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보다 훨씬 큰 무엇, 곧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인 것이다.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자의 고유한 소명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의 나라에서 우리가 사역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적 은사를 주셨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그들보다 뒤처져 있지나 않은지 염려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사역을 더디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함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방해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당합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요, 따로 따로는 지체들입니다(고전 12: 26-27).
뒤처진다는 걱정을 없애는 한 가지 해독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더 큰 몸의 부분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서 그것이 필요한 다른 지체들을 섬겨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외부를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주의를 기울일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교회와 세상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
판단은 주께 맡기라
내가 주변 사람들에 비해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때, 나는 그들의 관점에서 나 자신의 성취, 나 자신의 삶을 궁극적으로 판단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을 제대로 판단하는 것은 고사하고 나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것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자신의 판단과 다른 사람의 판단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다.
내가 여러분에게서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나는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내가 의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고전 4:3-4).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판단하신다(롬 14:4).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을 어떻게 따라잡았는지를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이 주신 “달란트”로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우리를 판단하실 것이다(마 25:14-30).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은 우리의 행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심에 근거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완전함의 기준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사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 삶에서 끊임없이 “뒤처져” 있다. 그러나 우리 구주의 보배로운 피와 십자가의 속죄 사역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하고 구원 받을 수 있게 한다(벧전 1:18-19, 요일 2: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7).
우리가 인생에서 뒤처진다고 걱정할 때, 우리는 성취와 나아갈 길을 위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대신에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를 붙들며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판단을 주님께 맡길 때 우리는 원수의 거짓말을 이기고 두려움과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복음기도신문]
“ 뒤처진다는 걱정을 없애는 한 가지 해독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더 큰 몸의 부분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
Ann Swindell | 저자이며 강사인 앤 스윈들은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MFA)를 소유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Still Waiting: Hope for When God Doesn’t Give You What You Want가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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