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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C 칼럼] 목사 자녀로서 내가 배운 다섯 가지

사진: ⓒ jeremy-kuehn on Unsplash

“ 목사 자녀(PK)의 눈으로 교회 내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또한 동시에 목사 자녀처럼 가족과 직업과 사역의 경계가 모호한 삶을 경험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PK의 삶은 놀랍고도 고통스러우며 독특한 여정이다. ”

아버지를 목사로 둔 사람의 삶은 흥미롭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교회 문 앞에 걸린 이 오래된 말은 사실일 뿐 아니라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기도 하다. 목사 자녀(PK)의 눈으로 교회 내부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또한 동시에 목사 자녀처럼 가족과 직업과 사역의 경계가 모호한 삶을 경험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PK의 삶은 놀랍고도 고통스러우며 독특한 여정이다.

PK마다 다 이야기가 다르다. 내 아버지의 경우, 십일조 헌금이 없을 때에도 예수님과 가족을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에 항상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다른 간증거리를 가진 PK 친구들과 또래들을 알고 있다. 사역의 성공을 위한 제단 위에서 희생된 결혼, 외로움을 스승으로 삼고 자란 이야기 등등.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이와 같으시다.

PK마다 가진 각각의 이야기는 다 독립된 이야기로 들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PK로 자라면서 배운 다섯 가지 교훈을 이야기하겠다.

1. 목사도 사람이다

목회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피로와 유혹과 좌절과 외로움에 덜 취약하다는, 또 다른 사람들보다 회복력에서 더 월등하다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부르심에 대한 끊임없는 감정적 긴장 때문에 목회자는 이런 모든 것에 특히 더 취약하다. 우리는 영적 삶과 소명이 목회자처럼 겹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의식적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모든 복음주의 교회를 향해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목회자에게 아낌없는 휴식의 시간을 주라는 것이다. 목회자가 자리를 비우면 엉망이 되는 교회라면, 이런 사실조차도 목회자의 휴식을 제한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런 현실이야말로 그 교회의 문화를 진지하게 재고해 보아야 할 이유가 될 뿐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과 가족을 돌보는 것과 교회 사역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고 느끼는 목사가 있다면, 그 목사는 이미 영적 소진 또는 그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길목에 선 것이다.

2. 교회 출석을 잘 한다고 해서 죄와 불신앙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 출석을 강요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아이들이 반항하는 탕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여기 쉽게 만나는 두 가지 오해가 있다. (1) 아이들이 알아서 정기적으로 교회를 나가면 괜찮지만, (2) 함께 가자고 요구하면 반항을 불러올 것이라는 오해이다. 이 두 개념 모두 다 복음주의 교회를 다니는 다양한 교인들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다 틀렸다.

복음주의자들은 복음을 감기 걸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내 처남은 말하곤 한다. 복음이라는 감기에 감염된 교인 주변에 있는 사람은 결국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응급실에 가는 것으로 식이요법과 운동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청소년 사역도 가정 제자훈련을 대신할 수 있다. 만약에 가정에서 기도하기, 성경 읽기,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의 제자훈련이 진행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다 “괜찮아” 보이는 경우, 그건 경계경보가 울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많은 부모들이 열네 살 사춘기 아이가 행여 교회에 반감을 가질까 두려워 교회에 가자며 아침에 억지로 깨우지 않았음을 소심하게 인정한다. 사람의 성숙과 발달이 청소년기에 멈춘다면, 부모의 이런 우려는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십대 시절이 뒤돌아보면 누구나 다 부모가 가정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쉽게 떠올린다.

3. PK가 아버지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속속들이 알 필요는 없다

내 아버지가 지금도 후회하는 부분이 바로 이거다. 노련한 성도들은 십대보다 교회 정치와 비즈니스 또는 권징과 같은 실망스러운 사건을 처리하는 데 훨씬 더 능숙하다. 아이들이 교회를 원망하거나 않거나를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아이들이 교회의 아름다움을 미처 맛보기도 전에 교회에서 생기는 각종 사건들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녀를 가진 목회자를 위한 실용적인 팁이 있다. 당신 부부의 갈등을 자녀가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자녀가 교회 안의 분쟁과 도덕적 실패를 보고 듣는 것이 그와 비슷하다. 당신 부부가 짓는 모든 죄를 자녀가 모르면 좋겠지만, 전혀 모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이들이 알게 되었을 때 대부분의 부모는 그 상황을 그냥 방치하기보다는 그 문제를 놓고 자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것이다. 이와 똑같은 논리를 교회 생활의 어두운 면에 적용하라. 될 수 있으면 PK가 교회의 싸움 현장에 근접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일단은 그게 우선이다. 그러나 그들도 알아야 할 때가 된다면, 그냥 방치하지 말고 그들이 제대로 반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4. PK가 가장 큰 자유를 느낄 때는 부모가 그들을 PK로 보지 않을 때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아버지는 내가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기를 원했고, 그리고 그 부르심이 반드시 사역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자녀에게 자신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압력을 가하는 사역자는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무의식적으로 자녀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애초 의도와 관계없이 직업과 진정한 영성이 일치해야 한다는, 그러니까 목회만이 진정한 영성을 추구하는 길이라는 것일 수도 있다.

어쩌다 이런 식의 메시지가 전해지는 걸까? 한 가지는 단지 아버지가 목사라는 이유만으로 PK에게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경우이다. 물론 그게 답답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 목회가 일반 직장보다 더 천국에 가깝다는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5. PK는 신학자 이상의 아버지를 필요로 한다

내가 자라면서 들은 아버지의 설교 중에서 기억하는 건 몇 개 되지 않지만, 밀크셰이크를 먹으며 또 공놀이를 하면서 아버지와 나눈 수십 번의 대화와 추억은 다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한 가장 좋은 추억의 하나는 십 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다는 눈보라가 치던 날, 인디애나 어느 호텔에서 함께 슈퍼볼을 시청한 것이다. 우리가 나중에 함께 참석한 회의도 괜찮았지만, 그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와 함께한 그날 밤을 완벽하게 기억한다.

찰스 스펄전은 신학생들에게 한 강의에서 그들에게 별다른 특징 없는 사역 기계가 아닌 정상적인 사람이 되라고 촉구했다.

나는 오늘날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목사들을 멀리하는 한 가지 이유로 그들이 목사들이 보이는 인위적이고 남자답지 못한 방식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강단 위에서나, 강단에서 내려가서나 진짜 남자처럼 행동하고 정직하게 자연스럽게 말하는 우리를 본다면, 그들은 우리 곁으로 올 것입니다. 따라서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익숙한 어조와 표현의 부족은 우리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큰 결점으로 작용한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우리가 매우 조심스럽게 수정해야 한다.” 사역자의 모습이 복음에 투영될 때, 사역은 해를 끼칩니다. 대중의 마음을 얻으려면 우리에게는 경건성과 함께 인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위적으로 꾸민 말을 꿰뚫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로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형제들이여, 죽마를 타고 걷지 말고, 여러분의 두 발로 걸어가십시오.

이게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면, 목회자의 자녀에게는 더더욱 해당된다. 가령, 그럴 리야 없겠지만, ‘정치 분야 책은 안 돼’라는 식으로, 어떤 정해 놓은 경계 안에서만 자녀와 소통하려는 목회자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 사랑은 관심이다. 자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목사-아버지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목사 자녀’에게가 아니라 그냥 ‘자녀’에게. [복음기도신문]

“ 내가 자라면서 들은 아버지의 설교 중에서 기억하는 건 몇 개 되지 않지만, 밀크셰이크를 먹으며 또 공놀이를 하면서 아버지와 나눈 수십 번의 대화와 추억은 다 기억하고 있다 ”

사무엘 제임스(Samuel James) | 크로스웨이 출판사 편집자이자 Insights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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