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I. 들어가는 말
II. “온 이스라엘”(롬 11:26)에 대한 네 가지 해석
III. 교회 공동체로서 “온 이스라엘”(롬 11:26)과 대체신학 이슈
- 종말의 메시아와 바울의 메시아 왕국에 대한 이해
- 유대인을 위한 전무후무한 구원의 시대?
1) 톰 라이트의 해석
2) 팔마 로벗슨의 해석
(1) “현재”
(2) “편견과 오해”
(3) “더러는”
(4) “까지”
(5) “그리하여” - “이방인의 충만한 수”(롬 11:25)의 반대 짝과 대체신학 이슈에 대한 응답
- 구원자가 시온에 오심
- 후회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
IV. 나가는 말
2) 팔마 로버슨의 해석
유대인을 위한 전무후무한 구원의 시대가 언젠가 있으리라는 해석의 그릇됨에 대하여 로버슨은 크게 두 가지 사실을 들어 설명한다. 하나는 로마서 11장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현재” 계획을 다룬다는 증거이다. 또 하나는 로마서 11장에서 특별히 이스라엘의 미래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언급된다고 여겨지는 여러 구절이다.[1] 그 두 가지 사실에 대하여, “현재”, “편견과 오해”, “더러는”, “까지”, “그리하여”라는 단어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1) “현재”(롬 11:1~24, 30~31)
로버슨은 로마서 11장 1~24절(세 문단: 1~10, 11~16, 17~24)과 30~31절이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현재 계획을 다루는 증거 본문으로 해석한다.[2]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롬 11:1a)라고 질문한 후에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현재 실현되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을 그 증거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3]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 11:1하).
또한 바울은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라고 증언한다. 이 구절의 ‘이제도’와 앞의 구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11:1a)는 로마서 11장의 첫 번째 문단(1~10)이 “현재”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로버슨은 “바울이 구속사를 통해 보존되어왔던 남은 자 문제를 논의하면서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에 대해 그의 독자들의 관심을 고조시키려 하고 있다”라고 한다.[4]
바울은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롬 11:13~14)라고 한다. 바울은 그의 이방인 사역의 결과로 유대인들의 ‘시기’가 일어날 것과 그 ‘시기’를 통하여 그의 동족 유대인들의 ‘구원’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그 ‘시기’는 바로 다음 절의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롬 11:15).
‘시기’와 ‘구원’과 ‘받아들이는 것’이 모두 다 미래적 사건이 아니요, 바울 당시의 사건이다.[5] 로마서 11장의 세 번째 문단(17~24)에서도 복음이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이스라엘의 적극적인 현재적 반응이 기대되고 있다. 이 문단은 접붙임에 대한 말씀으로 “접붙임을 받는 때”가 이방인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모두에게 현재적 사건이지 미래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6]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단원인 “이방인의 충만한 수(롬 11:25)의 반대 짝과 대체 신학 이슈에 대한 응답”에서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2) “편견과 오해”(롬 11:1)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26a)라는 말씀이 유대인을 위한 전무후무한 구원의 역사가 “언젠가” 도래함으로 성취될 것이라는 여러 학자의 주장 속의 그 “언젠가”는 바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라고 밝혀진다. 그러나 로버슨은 이들 모두는 그들이 갖는 “편견”으로 인하여 비성경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7] 그들이 바울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롬 11:1)라는 질문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미래에 대한 특별한 계획과 관련하여 그들을 버리셨는가?”라는 의미로 고쳐서 이해한다는 것이다.[8] 그리고 그들은 바울의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b)라는 답이 곧 이스라엘을 위한 전무후무한 구원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그들의 그릇된 주장에 대한 답으로 확정한다는 것이다.
로벗슨은 바울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롬 11:1a)라는 질문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과격한 질문이라고 해석한다. 그 질문 속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구원 목적과 관련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다 버리셨는가”와 같은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롬 11:1b)라는 답을 통해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계심을 선언하고 확증하기 위하여 바로 자신을 증인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롬 11:1c).[9] 존 칼빈도 “바울이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자기 자신을 예로 들어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완전히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증명한다”라고 해석한다.[10] 바울은 선지자 엘리야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7,000명의 신실한 성도들을 남겨두셨듯이 그 자신의 시대에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라고 선언하였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완악함에 대한 이슈를 통해서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다룬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완악하게 되어 구원받지 못하게 되자 구원의 은총이 이방인들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하여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도록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두 주제에 대한 바른 이해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함께 구원하시려는 계획이 담긴 비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롬 11:25). 바울은 그 비밀을 그의 다메섹 사건을 통하여 깨달았다. 그는 그 비밀을 로마서의 수신자인 로마 교회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 비밀의 내용이 유대인을 위한 전무후무한 구원의 시대가 장차 펼쳐지게 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그 비밀을 터득하도록 한 것은 그를 비롯한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그의 골로새서 1:24~27을 통해 확인하였다.
바울은 그의 동족 유대인 중의 “더러”(일부)가 완악함으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는 곧 유대인들의 또 다른 “더러”(일부)는 “남은 자들”로서 이방인들처럼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구원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울은 그의 생애 동안 이방인들을 위해 부름을 받은 사도로서 그들의 구원을 위한 사역에 헌신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동족 이스라엘로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의 얼마가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사역에도 최선을 다하였다(롬 11:13~14). 그러나, 바울이 마치 유대인들에 대한 구원의 역사가 그 당대에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단정하고, 그들을 위한 전무후무한 구원의 역사가 언젠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처럼 오해하는 자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 심히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로벗슨은 지적한다.[11]
(3) “더러는”(롬 11:25)
유대인을 위한 전무후무한 구원의 시대가 언젠가 진행될 것이라 주장하는 자들 가운데 “더러”(롬 11:25)라는 단어가 ‘일부분’이 아니라 ‘당분간’이라는 시간적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다.[12] 다시 말해서, ‘당분간’ 이스라엘에 완악함이 발생하였다. 세대주의자들은 특히 “당분간”이 다름 아닌 교회 시대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위한 교회 시대를 끝내시고 유대인 시대를 시작하셔서 유대인들을 위한 구원 행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신다고 주장한다.[13] 그러나 그 단어는 당분간이 아니라 우리말 개역 성경이나 여러 영어 성경에서처럼 “더러”(일부)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울이 이스라엘 안에 완악하게 되어 구원받지 못한 “이스라엘의 ‘더러’”에 대하여 “그들의 ‘넘어짐’”이나 “그들의 ‘실패’”라고 언급한 가운데 구원받지 못할 자들(롬 11:12a)로 선언하였던 점을 통해서 확증된다.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바울은 그들의 완악함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 유대인들의 “더러”(일부)와 달리 이방인들의 구원 사건으로 인하여 시기심을 갖게 될 유대인들의 또 다른 “더러”(일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유발시킨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바울이 생산적인 시기심을 상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14] 그리고 바울은 그 시기심을 갖게 된 유대인들이 “완악하지 않아 구원받게 될 것이며, 그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질 것을 기대한 가운데 그들에 대하여 그들의 ‘충만함’”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롬 11:12b)라고 로벗슨은 해석하며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는 유대인들이 현재 받아들여지고 계속해서 숫자가 불어나는 동일 과정에 의하여 실현될 것이다… “남은 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완성된 “남은 자”는 정확히 말해 이스라엘의 ‘충만’이다.[15]
바울은 완악하지 않아 구원받게 될 “이스라엘의 더러”가 “이방인의 충만한 수”처럼 “이스라엘의 충만함”(롬 11:12)으로 발전될 것을 선언하였다.[16] 로마서 11장 2절의 유대인들의 “충만함”과 11:25의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각각 헬라어로 “플레로마”로 같은 단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유대인들의 충만한 수”와 “이방인의 충만한 수”(롬 11:25)가 함께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시작되고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메시아 왕국의 백성들의 “총 수”,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자들의 “총 수”를 선언한 셈이다(롬 11:12).[17] 그리고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의 직책 수행을 통해 구원받아 “총 수”가 될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롬 11:13-14) <계속> [복음기도신문]
[1] O. Palmer Robertson, 『하나님의 이스라엘』, 195-222.
[2] 위의 책, 197.
[3] 위의 책, 195-222.
[4] 위의 책, 197.
[5] 의의 책, 197. Tom Wright, 『로마서』, 523.
[6] O. Palmer Robertson, 『하나님의 이스라엘』, 198. Tom Wright, 『로마서』 523.
[7] O. Palmer Robertson, 『하나님의 이스라엘』, 200.
[8] 위의 책, 200
[9] 위의 책, 200-201.
[10] John Calvin, 『존 칼빈 주석 로마서』 340.
[11] 위의 책, 199-201.
[12] William F. Amdt and F. Wilbur Gingrich,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507.
[13] O. Palmer Robertson, 『하나님의 이스라엘』, 205.
[14] John Stott, 『로마서 강해 』, 정옥배 역, (서울: IVP, 1994), 393.
[15] O. Palmer Robertson, 『하나님의 이스라엘』, 204.
[16] William Hendriksen, 『로마서 상』, 100.
[17] 위의 책, 204.
정형남 | 아신대학교(ACTS) 선교대학원 교수 및 GMS 아랍권 선교사(천안장로교회 파송. since 1989). 그의 책으로 『이슬람과 메시아 왕국』CLC, 2009)과 아랍권 및 이슬람권 선교와 관련된 여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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