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중심으로 도는 이 우주는 자유를 약속한다. 마침내 스스로를 정의하고,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아란 그 가능성이 무한하기에 그런 발견은 오로지 더 큰 불안만 줄 뿐이다
케이디 록스(Kady Rox)는 파리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놓칠 상황에 처했다. 그러나 아직 탑승 중이라는 문자를 친구로부터 받은 케이디는 서둘러 공항으로 달려왔고, 다행히도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에 터미널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 두 명은 앞쪽 자리에 앉아 있었고, 케이디는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비행기 한참 뒷좌석에 배정되었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 세 친구가 해변으로 가자고 문자를 보냈지만, 시차 때문에 힘들었던 케이디는 그냥 그 문자를 무시했다.
그리고 일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이틀 후, 케이디는 같은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기억하는 미국행 비행기는 완전히 달랐다. 케이디는 비행기 앞좌석에 앉아 있던 두 친구를 보았는데, 이 친구들은 자기네는 비행기를 놓쳤다고 한다. 또 세 친구 중 누구도 자기에게 해변에 가자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시차 때문에 기억이 헝클어졌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케이디는 하나의 급진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케이디는 타임라인을 바꿨다! 케이디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평행현실(parallel realities) 속에서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무한한 타임라인이 있는 다중우주에 살고 있다. 케이디의 원래 타임라인에서 그날 사건은 케이디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비행 후 어느 시점에서 케이디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타임라인으로 가는 포털에 들어갔는데, 거기는 바로 케이디의 친구들이 비행기를 놓친 평행현실이었던 것이다.
케이디는 틱톡에 이 이야기를 공유했고, 이 이야기는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다. 케이디는 전환(shift) 이후 자신의 삶이 어떻게 좋아졌는지 계속 설명했다. 케이디는 인생의 대부분을 앞뒤가 맞지 않고 되는 일이 없는 잘못된 타임라인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지금 케이디는 올바른 타임라인에서 최고의 삶을 살고 있다.
케이디는 타임라인을 변경하는 간단한 방법을 제공하는 틱톡의 영향력 있는 그룹에 합류했다. 그 방법은 샤워를 하는 것이다. 먼저 뜨거운 물로 스스로를 제한하는 믿음에서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찬물로 긍정적인 생각을 주입함으로 올바른 타임라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외부인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그러나 내부자에게 이 방법은 삶의 완전한 변화를 약속하는 새로운 복음이다.
이건 내게 질문을 던지게 한다. 도대체 이런 새로운 유형의 새로운 사고(New Thought)는 어디에서 왔으며, 왜 그렇게 매력적인 걸까?
마블의 멀티버스 상상
틱톡 유명인사가 다중우주의 개념을 발명한 게 아니다. 이 개념은 이론물리학에서 나왔다. 다중우주 이론은 우리가 아는 우주가 단순히 많은 평행우주 중 하나라고 가정한다. 현실은 평생 동안 미세 조정되는 건 아니다. 단지 확률법칙 덕분에 우리 우주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론이 운을 띄우고 상상력이 나래를 펼치는 곳이다.
만약에 다중우주가 있다면 그 우주 속으로 무한대로 나를 만들어서 공급할 수 있다는 창의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TV 쇼, 책, 비디오 게임, 심지어 어린이 영화까지 생산하는 가내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만큼 이 아이디어를 주류 속으로 받아들인 프랜차이즈는 없다. 디즈니 플러스(Disney+)의 ‘로키’(Loki)에서 안티 히어로는 자신이 수많은 로키 중 하나일 뿐임을 알게 된다. TVA(Time Variance Authority)라고 불리는 레트로 기술관료 조직은 스스로에게 진실함으로 TVA가 미리 정해 놓은 스크립트에 균열을 일으키는 “변종”(variants)을 제거함으로, 다중우주의 모든 타임라인이 계획에 따라 진행되도록 관리한다. 주권적 능력을 가진 관료들이 마음대로 세상을 휘두른다는 사실에 반기를 든 로키는 TVA를 혼란에 빠뜨리고, 자신이 최고의 로키가 될 수 있는 새로운 타임라인을 만든다.
이번에 나온 ‘스파이더맨’은 다중우주 싸움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반응은 폭발적이다. 관람권이 판매된 날, 이어지는 다중우주에 대한 온라인 수요는 디지털 박스 오피스를 붕괴시킬 정도였다.
마블과 케이디 록스는 둘 다 비슷한 이야기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지금의 현실은 우리 삶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으며, 다른 현실로 뚫고 들어가는 것만이 우리 삶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예수님의 이 기도는 이런 이야기에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디즈니와 틱톡의 타임라인 시프터는 이 기도를 기괴하고, 환멸을 일으키며, 나 중심적이고, 인간의 능력과 사이비 과학에 근거한 대안 복음으로 변형시킨다.
나 중심의 멀티버스
가톨릭 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에 따르면, 근대 사회 이전에는 사람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할애한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건 내부에서 찾을 수 있는 답이 아니라, 외부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의미로 가득한 매혹적인 우주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답인 것이다.
과거에 수도사의 존재 목적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대표하여 거룩해지는 것이었다. 농민인 경우, 삶의 의미는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와 식량생산에 있었다. 영주의 목적은 사회를 질서 있게 만들고, 모든 사람을 부양하고,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었다. 당신의 목적은 매혹적이고 의미로 가득한 우주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지금의 위치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그러나 현대인은 우주마저 무의미하고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있는, 환멸의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는 우리 밖을 봄으로써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발견한다. 나를 중심으로 도는 이 우주는 자유를 약속한다. 마침내 스스로를 정의하고,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아(selfhood)란 그 가능성이 무한하기에, 그런 발견은 오로지 더 큰 불안만 줄 뿐이다. 나를 정의하는 창조주 하나님이 없이, 되어야 할 바른 나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게다가 내가 잘못 선택한 경우라면?
초신성이 하나의 별을 수조 개의 성운 입자로 폭발시키는 것처럼, 환멸의 세계는 인간의 마음을 끝없는 불안을 유발하는 대안적 자아의 성운으로 폭발시킨다. 다중우주를 제안하기 위해 굳이 이론물리학자가 필요하지 않다. 현대인의 마음은 이미 다중우주 중 하나에 살고 있다.
마블의 멀티버스는 단지 현대적 자아에 CGI 의상을 입힌 것이다. ‘스파이더맨’과 ‘로키’는 우리 시대의 실존적 곤경에 직면해 있다. 스파이더맨은 가능한 많은 스파이더맨 중에서 올바른 스파이더맨을 선택해야 한다. 로키는 가능한 많은 버전 중에서 올바른 로키를 선택해야 한다. 모든 서사 속 드라마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불안에 중점을 둔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잘못 선택하면 어떻게 될까?
누가 우리를 정의하는가?
그러나 진리는 이것이다. 실존주의적 불안은 결코 내면을 들여다보아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부서진 현실을 깨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에서 오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천국을 이 땅에 가져오려면 예수님이 필요하다(계 21:2).
현재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외부를 통해 우리의 목적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공동체(교회)를 주셨다(엡 2:8-22). 자기발견이든 자기표현이든, 그게 뭐가 되었든 내면화된 인간의 노력은 결코 내가 진짜 ‘나’가 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롬 1:22-23). 오직 예수님만이 나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자유를 줄 수 있다. 그 결과 마침내 나는 애초 목적에 맞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요 8:31-38) [복음기도신문]
혼란스러운 우리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 부서진 현실을 깨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에서 오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천국을 이 땅에 가져오려면 예수님이 필요하다
패트릭 밀러(Patrick Miller) | 더크로싱 교회에서 디지털 사역을 담당하는 목사. 그는 ‘Truth over tribe’라는 팟캐스트를 통하여서 그리스도인 사상가들과 우리 문화 현상에 대한 대담을 나누고 있으며, 십분성경이야기(Ten Minute Bible Talks)를 나누고 있다.
이 칼럼은 개혁주의적 신학과 복음중심적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2005년 미국에서 설립된 The Gospel Coalition(복음연합)의 컨텐츠로, 본지와 협약에 따라 게재되고 있습니다. www.tgc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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